그녀들의 날

"여성"이었던 그녀들을 추억하며

by JJ

어제는, 3.8 국제 여성의 날이었다.

위키피디아의 설명에 따르면, "국제 여성의 날은 여성의 정치, 경제, 사회적 업적을 범세계적으로 기리는 날이다. 1910년 알렉산드라와 클라라에 의해 세계적 기념일로 제안되었으며, 1975년 유엔에 의하여 매년 3월 8일이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되었다....... 그러나, 몇몇 국가에서는 원래의 정치적 색채를 잃고, 밸런타인데이나 어버이날처럼 남성의 여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행사로 전락하기도 했다"

행사로 전락해버린 국제 여성의 날.

물론 아직도 그 처음 정신을 잃지 않고 여성의 여러 업적을 기리는 곳도 있겠지만, 내가 살면서 직접 느꼈던 부분은 행사적으로 전락해 버린 여성의 날이 더 가까웠다. (행사로 전락해 버린 것이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원래의 의도에 관심이 전무했던 내가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


2017-03-07 113521.jpg 상해 위안부 박물관이 있는 건물 일층에 있던 국제 여성의 날 관련 행사 포스터


2017.03.08 어제는.

국제 여성의 날이었을 뿐만 아니라 89세로 향년을 마감하신, 중국 위안부 할머님 "符美菊”께서 세상을 떠나신 날이다.

많은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꽃이나 보석 등의 선물을 받으며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파티 분위기에 휩싸여 있을 때, 중국에 남은 17명의 위안부 할머니 중 한 분이셨던 "符美菊”께서는 집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나셨다. 여전히 그들의 사과는 듣지 못하신 채로.

b915c842-d4eb-479c-9832-59bc2aeef874_zsize_jpg.jpg 2016.03.16 중국 다큐멘터리 <<국가 범죄>>팀과 符美菊의 단체사진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는 기사로 끊임없이 나오고 있고, 관련 영화도 많이 만들어졌다.

많은 사람의 꾸준한 노력이 있었기에 누군가에게는 감추고 싶었던 이야기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고, 조금씩 그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일 때문에 잠시 상해에 갔었다. 돌아오는 날, 오전 시간에 별다른 일정이 없었기에 상해에 있다는 소녀상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상해사범대학교 안에 설치되어있다고 해서 우선 상해 사범대학으로 향했다. 블로그들을 검색해 보니, 동쪽 캠퍼스 내에 있다고 하여 길을 헤매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상해 사범대는 여러 곳에 있는데, 桂林路에 있는 상해 사범대 캠퍼스중 동쪽 캠퍼스에 소녀상과 위안부 박물관이 있다.)

상사대 지도.jpg 상해 사범대 위치
제목 없음(복구됨).jpg 상해 사범대 文苑楼를 찾으면 된다. 지도에는 빨간 1 로 표시 되어 있음


날씨는 화창했고, 새 학기를 시작하는 대학생들은 밝고 힘찼다.

잔디밭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도 있었고, 상해에 참 많이 돌아다니는 길고양이들과 노는 학생들도 있었다. 따뜻했고, 밝았다.

2017-03-07 112800.jpg 위안부 박물관이 있는 文苑楼 건물. 소녀상은 오른쪽 나무 근처에 있다.

건물 근처까지 다 와서도 소녀상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근처에 계신 할아버지께 소녀상 사진을 보여드리며 길을 물어보니, 바로 저 앞에 있다며 손으로 가르쳐 주셨다.

2017-03-07 112856.jpg 두손을 움켜쥔 한국과 중국 소녀상
2017-03-07 113115.jpg "we can forgive, but we can never forget"
2017-03-07 113000.jpg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과 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두 소녀상에게는 사이좋게 분홍 목도리가 둘러져 있었고,

미처 발뒤꿈치를 땅에 대지 못한 발 옆에는 따뜻한 털 실내화가 놓여 있었다.

그녀들이 발 뒤꿈치를 땅에 대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해방 후 고향에 돌아왔지만 사람들의 시선과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고향에 제대로 발을 붙일 수 없었던 것을 표현한 것이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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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을 둘러본 후, 위안부 박물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2017-03-07 113556.jpg 건물 일층에 안내 표지판이 있다. 이것을 지나 엘레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가면 된다.

이미 많은 사람이 다녀 갔던지, 지나가던 사람에게 위안부 박물관이 어디냐 물으니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가면 된다고 안내를 해 준다.

2017-03-07 113808.jpg 2층 위안부 박물관 입구
2017-03-07 113913.jpg 방명록

박물관에 들어가, 가방을 맡겨 놓고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허락을 받은 후 방명록을 작성했다.

놀라웠던 것은, 일본 학생들이 다녀갔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일본인에 대한 적대감만 많았던 어린 시절, 중국 유학 처음 룸메가 일본인인 것에 처음에는 많이 당황스러웠지만, 곧 "일본"인 으로서의 요오꼬가 아니라 "나의 룸메"로서의 요오꼬와 좋은 관계를 맺게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국가의 교육에 대한 발표를 하는 중에, 이차대전 당시 저질렀던 많은 일들을 가르치지 않고 역사를 왜곡하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어 화가 났고, 또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일본인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턱대고 "일본인"을 미워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2017-03-07 114214.jpg 박물관입구
2017-03-07 114458.jpg 꽃다운 나이, 아름답던 그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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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7 115222.jpg 중국 많은 여성들은 여가 시간에 한땀 한땀 신발 밑창을 수놓고는 한다.

여러 전시품들 중에 눈에 띄었던 것은, 위안부 할머님들께서 수놓으신 신발 밑창이었다.

중국 여성분들이 여가시간에 많이들 하시는 일들인데, 나중에 더 설명을 들어보니, 위안부 시절 당시에도, 할머님들은, 낮에 남는 시간에 신발 밑창을 수놓아 생활비를 벌기 위해 팔기도 하셨다고 한다.

자유를 얻은 세상에서 수를 놓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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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에 있던 위안부.

상해에만 170곳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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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할머님들의 증언을 기록해 놓은 곳이 있었다.

이분은 위안부 시절 임신을 하셔서 몇몇 친구들과 도망을 치셨다고 한다.

다행히 성공적으로 도망을 치셨지만, 그 와중에 뱃속에 태아는 사망을 하였고, 자궁 적출 수술을 받으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고향에 돌아와 결혼을 하셨지만, 남편이 죽을 때까지 위안부에 있었던 사실을 비밀로 하였고, 아들을 입양하여 살고 계셨었다.

위안부 연구소 위원회 사람들이 처음 할머님을 찾아갔을 때 할머님은, 가족들에게 이 사실이 밝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고 증언도 할 수 없다며 그들을 쫓아내셨다고 한다.

그러나 위원회 사람들은 왜 증언을 부탁드리는지 할머님께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드리며 할머님을 설득했고, 마침내 할머님은 그들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정말 내 억울함을 씻어내는 그 날이 올까요? 몇십 년 동안 나는 죄인처럼 살았는데, 아무에게도 나 자신의 과거를 말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몇 번이나 일본인들이 내 목에 긴 칼을 갖다 대는 악몽에서 깨어나 하루를 시작했답니다. 자손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나, 이제 나는 늙었지요. 이제라도 말하지 않으면 나는 영원히 억울함을 씻을 기회가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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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위안부 문제는 20세기 90년대 초에 민간 조직들에 의해서 제기되었고, 1999년에 상해사범대에 정식으로 중국 위안부 연구소가 설립되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연구했고 찾아다녔으며, 문제를 제기하고, 그녀들을 위로했다.


누군가는, 이것을 부인하고 덮으려 한다.

그러나 또 다른 누군가는 이 일을 위해 자신의 일생의 커다란 일부를 내어 놓기도 한다.


자신의 고통을 용감하게 다시 꺼내 주신 할머님들과.

그녀들의 고통을 타인의 고통이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며 관심 갖고 연구해 주신 분들과.

각자의 자리에서 기억하고 관심 갖고 있는 많은 분들 덕분에.


왜곡되었던 역사를 배웠던 그들이 진실을 보게 되었고

죄인이 아님에도 죄인처럼 살고 계셨던 할머님들의 억울함이 조금이나마 씻어지고 있다.


국제 여성의 날.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많은 업적을 남긴 수많은 여성들이 있겠지만.

올해는, 그녀들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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