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 학문

인체를 통해 보는 하나님 나라

by JJ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면서부터 끊임없이 공부하고 공부하고 공부한다. "공부"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이라고 나와있다. 아이가 태어나 생존을 위하여 저절로 (물론 저절로는 아니다. 매 순간순간 숨을 쉬고 심장이 뛰는 것들이 의식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끔찍하게 힘이 들까? 다행히도 하나님께서 설계해 놓으신 엄청나게 복잡하고 정교한 시스템이, 우리가 의식하고 노력하지 않아도 심장을 뛰게 하고 호흡을 하게 한다.) 되는 몇 가지 일들 말고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배우고 익히게 된다. 누워만 있던 아가들이 뒤집기를 배우게 되고, 배밀이를 하기 시작하며 더 나아가서는 일어나 걷고 뛴다. 이런 기술들을 익혀 나가는 것을 시작으로 각자의 모국어를 습득하게 되고,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등의 교육 과정을 거치면서 10년 이상을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살아간다. 물론 이 긴 시간의 교육과정을 끝내도 "공부"는 끝나지 않는다. 무엇을 위하여 이렇게 "공부"를 하는 것일까?


예전에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어른들께서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다. "배워서 남 주냐???". 어느 날 나에게 엄마가 지인분께서 자신의 아들에게 "배워서 남 줘라"라고 말씀하신다며 감동을 받으셨다고 이야기하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 아마도 수많은 어르신들께서 이야기하신 "배워서 남 주냐?"의 깊은 의미는, 배워서 나만 갖고 남에게 주지 말으라는 말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유익이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공부가 나에게 유익이 되어서, 내가 모든 면에서 건강한 한 인간이 된다면, 그것은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건강하고 선한 영향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공부"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갖다 주는 것일까? 수많은 공부가 주는 유익을 짧은 브런치 글 안에 적어 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더 큰 문제는 나도 아직 "공부"의 유익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느냐는 것인데, 그래서 그냥, "욕구"라는 관점으로 공부의 유익을 작은 한 부분만이라도 생각해 보기로 했다.


Abraham H. Maslow라는 미국 심리학자가 주장한 여러 가지 이론들 중 "욕구 단계 이론"이 있다. 인간에게는 5가지 욕구가 있다는 것인데, 그것을 보자면 아래와 같다.


Maslow.png 생리적 욕구 -> 안전의 욕구 -> 애정과 소속감의 욕구 -> 존경의 욕구 -> 자아 실현욕구

"공부"는 이 여러 가지 단계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예를 들면, 여러 가지 지식의 습득과 사용으로 돈을 벌면서 음식, 물 등을 구입하여 가장 하위 단계인 "생리 욕구"를 만족시키기도 하고, 많은 지식의 습득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존경의 욕구를 채우기도 하고, 순수한 학문 연구를 통하여 자아를 실현하기도 한다.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가 곳 싶은 것 한 가지는, Maslow는 인본주의 심리학자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럼 인본주의는 무엇일까? 생명의 말씀사에서 출판한 교회용어 사전에 보면 신 중심의 세계관과 반대되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라고 나와있다. (이 외의 자세한 것은 아래에 링크해 놓았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377742&cid=50762&categoryId=51366

그럼, 메슬로의 5가지 욕구에 대한 이론은, 인본주의 심리학자가 만든 인본주의적 이론이기 때문에 배척해야 하는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된다. "인본주의"라는 단어의 해석에 보면 '인간의 가치를 주된 관심사로 삼는 주의'라고 설명되기도 하는데, '주된 관심사'가 '인간의 가치'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문제이지, '인간의 가치'에 관심을 갖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치'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올바르게 찾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공부'가 우리의 '욕구'를 채울 수 있다는 부분으로 다시 돌아와 보자. 우리의 '욕구'를 올바른 방법으로 채워 줄 수 있는 것은 분명 우리에게 유익이 된다. 그럼 여러 가지 욕구 중에 가장 높은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를 "공부"가 어떻게 채워 줄 수 있을까?


두산 백과에서 "자아실현"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잠재되어 있던 자아의 본질을 완전히 실현하는 일"이라고 요약한다. 그리고 자아실현에 대한 자세한 설명 중에, "또한 그리스도교 관념주의자들 가운데는 신의 의지가 구현되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중략)...... 자아실현은 개체의 목적과 본질을 중시하는 교육사상가들이 교육의 궁극적 목적을 표현하는 것으로 사용하는 개념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습득하면서, 우리 자신의 본질을 완전히 실현하는 일을 통해 최고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공부를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공부의 목적이 우리의 욕구 충족이라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하면서 얻어지는 여러 가지 장점들 중, 욕구 충족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럼 우리의 본질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소요리 문답 1번을 보면, 인간의 목적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A. Man's chief end is to glorify God, and to enjoy him forever.)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즐거워하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되어야 하는 것은 (그분이 부어주시는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가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이라는 것은 당연하고,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려 하는 것이다) 그분을 알아야 한다.

알지 못하는 분을 어떻게 영화롭게 하며 즐거워할 것인가? 알아야 한다. 힘써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부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즐거워하는 것이 시작될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본질도 찾을 수 있다.

호세아는 외친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세아 6:3)".

최고의 부를 누리고 최고의 지혜로운 사람이라 불렸던 솔로몬이,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는 이야기 마지막에 이렇게 이야기한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도서 12:13)"

그 당시 세상적인 잣대로 자랑할 만한 것이 많았던 바울은 말한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빌립보서 3:5-9)

(다시 한번 강조하기 원하는 것은, 나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알며, 인간을 지으신 그 목적을 쫓아 살아갈 때, 욕구도 채워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의대에서 공부하기 시작하며 깨달았던 것 중 한 가지는, 인체에 대하여 배우면 배울수록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 개인이 새롭게 깨달은 진리도 아니고, 나 혼자 한 사람 만이 깨달은 진리도 아니다. 의대 캠퍼스 모임에서 간사로 섬기던 언니도 세포생물학을 배우면서,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부분까지 완벽하게 설계되었다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부정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었다.

세상에 있는 많은 학문들을 깊게 공부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심어 놓으신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바이며, 학문과 신앙을 분리시키지 않고 통합시키려는 노력들은 지금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여러 가지 그러한 노력들을 찾아보았다.


‘사랑·겸손·봉사’이라는 학훈을 갖고 있는 한동대학에 "학문과 신앙 연구소"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의 설립 목적은 " 연구소는 한동대학교의 소명을 그리스도 중심의 학문 연구와 실천을 통한 학문 진흥과 인재 양성으로 이해하고 이 소명에 부합한 능동적인 학문 사역을 감당하기 위하여 하기의 주요 사업을 수행한다"이다.

한국 연구재단 등재학술지 중에 "신앙과 학문"이라는 학술지가 있는데, 오랫동안 꾸준히, 각자 전문 분야의 지식들과 신앙을 통합하는 논문들이 기재되고 있다.

KC대학교, 백석 대학교 등 여러 대학에서도 "신앙과 학문"이라는 강의들도 진행되어지고 (각 대학별로 강의 제목은 다를지 모르겠으나), IVF에서도 꾸준히 신앙과 학문을 통합하고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학문을 연구하자는 노력과 격려는 계속되고 있다.


의학계에서도 많은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성경" "의학"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면, "성경 속 의학 이야기" "성경과 의학의 만남"등의 서적을 찾아볼 수 있다.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꼭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다.


그래서 나도, 공부하는 중에 그리고 병원에서 일하는 중에 깨닫게 되었던 몇 가지 아이디어들을 더 생각해 보고 정리해 보고 브런치 공간에 글로 옮겨보고자 한다.

개인적인 공간인 노트에 적어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공개적인 공간에 글을 쓰는 것이, 많은 단점들과 (짧은 표현력으로 인한 오해의 소지들, 이제 의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햇 병아리인 내가 무엇을 적어 낸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 누군가 공감해 주고 칭찬해 주었을 때 교만해질 수밖에 없는 나 자신 등등 ) 어려운 점들이 있을 테지만.

내가 깨달은 것들로 누군가 공감하고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더 알 수 있다면.

그것을 통해 그분께서 조금이나마 기뻐하실 수 있다면.


그래서 시작해 보기로 했다.

"인체를 통한 하나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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