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도 없이
욕실 바닥에 갑자기 검은 얼룩 하나가 생겼다.
며칠 전에 청소했을 땐 분명히 없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크게 번져있는 얼룩이 눈에 들어왔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지만
왠지 잘 안 지워질 것 같아서 건드리기가 싫었다.
그렇게 욕실 구석에 생긴 얼룩을 며칠 동안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욕실 청소할 때 쓰는 독한 세제로 지워야 하나 생각만 하면서.
그러다 어제 그냥 지워보자 싶어서
충동적으로 작은 솔로 문질렀다.
그랬더니 얼룩이 금세 사라졌다.
...며칠 동안 지켜보기만 했던 게 허무해지는 순간이었다.
밀려오던 허무함이 사라지고 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 인생에 이런 얼룩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막상 지워보면 별 것도 아닌 그런 얼룩들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 것도 아닌 흔적들에
걱정하고 불안해하며 울었던 시간들이
참 많고도 길었다.
물론 지금에서야 별 거 아닌 일이었지만
그땐 그게 왜 그렇게 무겁고 깊어 보였는지 모르겠다.
앞으로는 솔질 한 번에 흩어질 얼룩 같은 일들에
너무 마음 쓰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검은 얼룩이 사라진 바닥은
무언가가 있었던 흔적도 없이 깨끗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