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 들어갈 때, 레벨 테스트를 하는 학원이 많다. 학원에서 레벨 테스트를 하는 이유는, 아이의 수준을 고려하여 적절한 수업을 받게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력이 형편없는데 너무 어려운 수업을 받게 하거나, 실력이 좋은데 너무 쉬운 수업을 받게 하는 건 아이들의 교육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런 이유로, 아니 나는 그런 이유가 아닌가? 나는 일대일 수업을 하기 때문에 그런 이유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의 수준을 알아야 설명의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예전에는 나도 레벨 테스트를 해보는 편이었다.
몇년전, 내게 세명의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이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름 레벨 테스트를 함으로써 뭔가 전문적으로 보이고 싶었었나 보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 내용의 유인물을 한장씩 나눠주고 테스트를 해보았다.
테스트 결과, 두명은 거의 다 맞았고, 한명은 약간 떨어지는 편이었다. 내가 만든 그 유인물은 학교 내신대비용으로 만든 것으로써, 지금까지의 경험에 따르면 보통 전교 등수에 들었던 아이의 경우가 다 맞거나 하나 정도 틀릴 정도의 난이도였다. 그런대 거의 다 맞았으니 둘 다 엄청난 실력자란 말이 아닌가. 나머지 한명도 그 정도면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아이들 셋이 엄청난 실력자라고 착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두둥!
그래서 어머님들에게 최초 상담전화를 하면서도 꽤 괜찮은 전망이 보인다고 말했던 것이었다...
그. 런. 데.
뭔가 수업을 해가면서 자꾸 이상한 어긋남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내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 가장 첫번째 목표로 잡는 것은 이해력이다. 내 설명을 듣고 이해하는가, 혹은 어떤 글을 읽고 이해하는가 이런 거다.
이때 중요한 것은 지식을 설명하려는 방식 자체가 합리적인가, 혹은 납득 가능한 수준인가 이다. 어떤 분들은 수학 지식을 설명할 때, 공식 위주로 설명을 하시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되면 아이들은 수학을 공부할 때 자신의 타고난 이해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나는 아이들의 타고난 이해력을 알아보기 위하여, 수학지식을 설명하는 내 방식을 초등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단순화시켰다. 그래야만 아이들이 평상시의 능력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세명의 아이들은 내가 하는 설명을 이해하지 못 했다. 보통 나는 아이들에게 설명할 때 처음에 설명하는 수준은 보통 수준의 학생들을 기준으로 설명하는 편이다. 만약 그 수준으로 알아듣지 못 한다면, 좀 더 쉽게, 그렇게 해서도 이해를 못 한다면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좀 더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내가 몇번 설명을 거듭한 결과, 내 판단은...
평균적인 수준보다 아이들의 이해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아이들은 어떻게 레벨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던 것일까. 아이들과 몇번의 문답 끝에 나는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별거 아니었다.
그냥 문제집 여러권을 풀면서 문제 유형을 다 외워버린 것이다.
사실 그런 아이들을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 예전에 가르쳤던 아이들 중에도 여럿 있었는데, 그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자.
이 경험 이후로, 나는 레벨 테스트를 하면서 설레발을 치지 않기로 결심했다. 레벨 테스트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말 그대로 그 시험을 보았을 때 예상되는 점수이다. 결코 아이들의 이해력이나, 머리까지 측정해 주지는 못 한다.
물론 레벨 테스트에 따라 반 결과가 배정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보통 레벨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는 것은 이미 어떤 방식으로든 아이들이 그만큼 공부를 꾸준하게 해왔다는 것이고, 그 수업에서 다룰 문제들의 난이도에도 익숙해져 있다는 말이니까. 이런 아이들을 낮은 수준의 수업에 보내버리면, 당연한 말이지만 그 수업에 만족하지 못 한다.
하지만 내 교육방침상, 내 교육을 받는 아이들은 기본적인 이해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냥 수학문제를 잘 풀고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은 내게 큰 감흥을 주지 못 한다. 나는 아이들을 점수로 판단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지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부모님들이 싫어하실지는 모르겠으나, 내 수학교육의 목적은 수학시험점수를 잘 맞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부족한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명의 아이들은 내 기준에선 우등생이 아니라, 아직 가야할 길이 한참 남은 아이들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내가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내 수학교육이론의 샘플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