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덕트 디자이너의 프론트엔드 개발자 이해 도전기
프론트엔드 개발을 마스터하기 위한 도전기는 아닙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가장 긴밀히 협업하는 프론트 개발자를 이해하기 위한 도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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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 후 나는 주니어 프론트엔드 개발자들과 긴밀하게 협업했다. 이전 글에서 편의상 그들을 '주니어 개발자'라고 말했지만, 사실 나는 시니어/주니어의 호칭이 붙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많은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스타트업 안에서 우리는 정말 다양한 일들을 한다. 그중엔 개발자들도, 나도 하기 싫은 업무가 있지만 "하고 싶은 한 가지 일을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아홉 가지 일은 기꺼이 해내겠다"란 마음으로 임한다. 사실, 하고 싶은 일 하나를 위해서라면 하기 싫은 아홉 가지는 백 번도 더 할 수 있다.
그런 환경 안에선 필연적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밖에 없다. 많은 걸 배우고, 많은 걸 경험한다. 그런 나와 그들을 단지 경력이 짧다고 해서 '주니어'로 묶는 건 서로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두가 길었지만, 결론은 이 글에서 이야기할 개발자는 N이라고 부르려 한다.
N은 사실상 내가 같이 '협업했다'라고 할 수 있는 첫 개발자다. 1년 조금 넘게 같이 일했는데,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하나 있다. 바로 폰트 대격돌... N과 폰트가 대격돌한 사건이다.
당시 우리는 스포카 한 산스를 국문 폰트로 사용하고 있었다. 폰트 대격돌 D-1, 나는 국문 CTA가 들어간 화면을 만든 후 CTA 옆에 이렇게 코멘트를 남기고 퇴근했다.
다음 날 출근을 해보니 초췌한 얼굴의 N이 앉아 있었다. 어젯밤 야근을 하면서 CTA의 1px를 고쳐보려고 엄청나게 시간을 쏟았다고 했다. (N은 원래 매일 야근을 한다. 내 코멘트 때문이 아니다.. 그냥 그날의 야근을 거의 전부 거기에 쓴 거다.) 이런저런 이유로 안된다고 장황하게 설명을 해줬는데 잘 기억이 안 난다. 1년도 더 지난 일이라 지금의 N에게 물어봐도 왜 안되었던 건지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N의 폰트 대격돌은 그날로 끝나지 않았다. 며칠을 더 골머리 싸맨 후에야 본인이 만족할만한 솔루션을 찾은 듯했다. (사실 그것도 썩 마음에 들어 보이진 않았다. 어느 정도 셀프 네고를 한 것 같았다.) N이 폰트와 대격돌을 하는 동안 내가 한 말은 "왜 안 될까..." "그래요..?" "그렇군요..." 정도였다. 내가 관여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는 그때를 회상하며 가슴팍을 내리친다. 너무 답답해서다. 요즘은 프리탠다드처럼 line height를 신경 써서 보정한 폰트가 있기 때문에 별 고민 없이 그걸 쓰면 된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폰트들은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 지금 같으면 아마 이렇게 했을 거다.
Line height를 줄여서 버튼 텍스트에만 사용하도록 text style을 지정하는 것이다. 이러면 서로가 정말 깔끔하고 간결하게 일할 수 있다.
AS-IS
디자이너: 설령 텍스트를 1px 올린 버튼을 컴포넌트화 해둬도 위아래 마진이 다른 버튼들을 볼 때마다 속상하다.
개발자: 피그마대로 위아래 마진을 다르게 설정할 순 있겠지만 코드를 볼 때마다 속상하다. (물론 합리적인 나만의 가설일 뿐이다)
TO-BE
디자이너: 버튼을 만들 때 해당 text style만 사용하면 된다. 깔끔!
개발자: 버튼에 해당 text style만 적용하면 된다. 깔끔!
그러면 (너무나 일반화지만) 이럴 일도 없다.
디자이너: 넘 좋은데 헤더 1px만 올리면 안 될까여
개발자: 아 불가능한 건 아닌데 그럼 css에 20px(넘 아름다운 숫자) 대신 19px(넘 못생긴 숫자)를 넣어야 되여 넘 슬프지 않아여?
디자이너: 아 핵공감 언더스탠더블. 계속하시죠.
최근 N에게 이 솔루션을 이야기하자 N은 "근데 폰트 자체가 해결해주는 게 베스트예요!"라고 말했다. 나 같으면 이런 생각을 못할 것 같은데(아마 그냥 불평 조금 하고 있는 대로 사용할 거다), 내가 아는 개발자들은 보통 근본적인 해결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것 같다.
솔직히 이미 존재하는 시스템을 바꾸는 건 절대적으로 안된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개발자가 뭔가 대단한 걸 만들어주기 전까진 그랬다. 다음 글엔 그 개발자가 만들어준 대단한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