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인생의 은행나무길을 걷고 있는그대에게.

그렇게 매일, 조금씩, 함께, 나아가는 중입니다.

by 나다움

가을철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가로수길은 아름답습니다. 그 노란 은행잎의 아름다움을 가까이서 보면 더 아름답기도 하지만, 복병을 만나기도 합니다. 무수히 떨어져 나뒹구는 '은행열매'가 그것입니다.


으깨진 은행은 코를 찌르는 고약한 냄새가 나기에 그것을 밟지 않고자 이리저리 피해보려고 해 봅니다. 까치발을 들고 피해보기도 하고, 도움닫기를 해서 폴짝 건너뛰어보기도 합니다. 그것도 안되면 은행을 피해, 위험하더라도 잠시 차도로 걸을까도 생각합니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은행나무길은 한동안 쭉 이어져있을 때는 더욱 난감합니다. 이쯤 되면, 멀리서 감탄했던 샛노란 은행나무잎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오로지 시선은 땅 밑에 고정되어 떨어진 은행 폭탄을 피하기 바쁩니다.



심리상담을 한다는 것은 이 은행나무길을 누군가와 함께 걷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이 아파 심리상담을 받는다 하면, 우울한 표정에 축 처진 어깨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오히려 반대입니다. 은행나무를 멀리서 보면 샛노란 예쁜 은행잎이 먼저 눈에 들어오듯, 우울에 잠긴 마음은 저 아래에 두고 밝은 모습만을 타인에게는 보여줍니다. 냄새나는 은행은 가까이 다가가야 바닥에 보이듯, 그 사람의 어두운 모습은 상담처럼 그 사람의 마음을 꺼내놓아야만 볼 수 있는 거죠.


또한 끝없이 펼쳐진 은행나무길을 걷다 보면 힘이 들기도 합니다. 심리상담은 이 길을 함께 걸으며 그 냄새나는 은행을 최대한 피하며 걷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은행을 밟아가며 버텨보기를 권하기도 합니다. 지독한 은행을 피하려 위험한 차도로 나를 내몰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 말이죠.


저는 지금 떨어진 은행들이 잔인한 냄새를 풍기는 그 은행나무길에 있습니다. 은행잎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보다는, 은행열매와 싸워가며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괴롭지만은 않은 것은 그 끝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앞이 깜깜할 때도 있지만, 내가 가는 모든 길이 은행나무길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조금 더 버텨봅니다. 가을의 은행나무길이 냄새나는 은행열매가 있더라도 아름다운 것은 변함없고,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시간도 한정적입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이 아픈이의 삶도 가치가 있고, 그 고통의 길에 끝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은행나무길을 다 지나왔다고 생각한 순간, 한걸음 더 내 디니 다시 새로운 은행나무길이 보입니다. 하지만 처음 은행나무길에 들어섰을 때와는 다릅니다. 지금 내 옆에는 나와 함께 걷는 이들이 있기에 조금 더 과감히 용기를 내봅니다. 동시에 자연스레 바닥의 으깨진 은행열매보다는 찬란한 은행나무잎을 더 자주 보게 됩니다. 그렇게 천천히,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중입니다.


인생의 은행나무길을 걸을 때 힘이 든다면, 누군가와 함께 걷기를 추천합니다.

그 누군가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그 길을 얼마나 잘 이겨낼지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중요한 건 누군가와 함께 가는 것이 혼자 갈 때보다 앞으로 나아가기 쉽다는 것입니다. 매일매일이 전진은 아니라도, 돌아보면 출발선보다 조금이라도 앞에 와있을 겁니다.

오늘도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걷고 있는 저 자신에게, 용기를 더 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매주 만나는 '심리상담 선생님'을 비롯하여,

제 곁에서 저의 아픔을 함께 하는 '심리 지지자'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 끝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함께 가는 이들이 있음을 아는 한 포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인생의 은행나무길을 오늘도 한걸음 내디뎌 봅니다.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다. 자신의 약한 부분에 눈감지 않고 마주한 것,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은 대단히 강하고 용감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치료자를 찾은 당신은 애초에 강한 사람이었다. 약점과 아픔을 더 파고드는, 힘든 상담 과정을 거치며 더 강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준 상처가 당장 사라지지 않았음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당신은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가치 있는 과정을 밟아가고 있다.

- '어쩌다 정신과 의사' 中, 김지용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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