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주, 제주 청소년들의 인문학 배움 공동체
안녕하세요. 제주 볍씨학교에서 교사로 지내고 있는 김동희입니다. 볍씨학교는 초중등 대안학교로 2001년, <생명이 소중한 세상, 생명이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며 광명에 문을 열었습니다. 1학년부터 8학년까지는 광명 옥길동 학교에서 지내고 중3 과정 아이들은 주체적 삶을 위해 제주로 내려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중3 과정과 포스트 중등 과정 아이들 12명, 교사 2명이 함께 일하고 배우며 치열하게 지내고 있어요. 제주볍씨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은 여기에 잠깐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제주볍씨는 정해진 교육과목이 없습니다. 매년 새롭게 찾아오는 만남과 배움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며 최선을 다해 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제주학사 교육과정의 중요한 핵심 중 하나입니다. 올해는 조한혜정 선생님께서 광주의 삶디자인센터, 서울의 크리킨디센터 하자작업장학교와 함께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읽기>를 주제로 인문학 수업을 해보자는 제안을 하셨고 5월부터 배움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주볍씨가 있는 선흘 마을은 코로나의 영향을 체감하기 어려운 곳입니다. 광명을 벗어난 아이들은 제주에서 더 자유롭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인문학의 주제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읽기>는 아이들에게 한 발자국 떨어져 앞으로 코로나가 던져줄 변화의 시대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 시선을 혼자가 아닌 낯선 이들과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지요.
볍씨에서는 모든 학년이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고, 청소년과정인 6학년 때부터 컴퓨터사용을 하는 약속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휴대폰과 TV, 컴퓨터 앞이 아니라 산에서 뛰어놀고 나무를 타고 오르고 흙공을 만들며 자연과 가깝게 지내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과 관계 안에 배움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정해진 약속입니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처음 경험해보는 원격수업 시스템을 낯설어했습니다. 눈을 마주치고, 손짓과 몸짓을 보며 사람을 만나고 관계 맺던 아이들은 화면 속 낯선 사람과 인사 나누고 대화를 주고받았고 첫 시간이 힘들고 어색하다고 이야기했었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낯설었던 시스템들을 이해하고 능숙하게 다루며 화면 속의 낯선 이들은 친근해져갔고 점점 수업 방식에 익숙해져 갔습니다. 함께 책(영상)을 보고, 생각을 정리하고, 문제의식을 꺼내어 다 같이 생각들을 나누고, 다시 자신의 생각을 기록, 정리하는 이번 인문학 수업의 방식은 볍씨의 방식과 같습니다. 하지만 책 한 권을 함께 낭독하며 요리조리 꼭꼭 씹어 먹는 볍씨의 방식과는 차이가 있었고, 온라인과 미디어의 활용, 낯선 이들과 함께함이 더 추가되었지요. 아이들은 새로운 배움의 방식을 익히며 앞으로 배움이라고 하는 의미의 확장과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볍씨 아이들은 인문학 수업에서 만난 사람들과 화면 속에서 벗어나 직접 만나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관계의 물꼬를 텄다면 이제 진정한 만남과 소통을 위해선 손 맞잡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가 필요합니다. 시대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만남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앞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읽기 시즌2>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비록 지금은 시국이 시국인지라 만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시즌2 말미에는 코로나가 잦아들기를 기도하며 서울, 광주, 제주 어딘가에서 함께 만나 재미난 꿍꿍이를 상상하는 기회가 오기를 바랍니다.
작성자
김동희
볍씨에서 5년째 교사로 지내고 있고, 올 해 3월 제주에 내려와 아이들과 함께 일하고 배우며 지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