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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ng Feb 25. 2023

[여행] 어디 가세요?

허세와 실용 사이,

사회에 첫 발을 내딘 이후부터 꾸준히 마일리지 카드를 쓰고 있다.

그 덕분에 마일리지를 이용해 비지니스를 종종 탈 수 있었고, 혼자가 된 뒤에는 자리만 있다면 고민 없이 비지니스를 탄다.


난 나만의 논리로 이런 나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1. 마일리지를 모았다가 갑작스레 급사라도 하면 이건 허공으로 사라질텐데, 있을 때 어떻게든 써야한다.

2. 여행의 시작은 공항부터인데 수속 줄을 그나마 짧게 서고, 라운지를 이용하고 싶다.

3. 완벽한 여행을 위해 시차적응, 비행기에서 푹 자는건 필수인데 비지니스석은 그나마 그걸 도와 준다.

4. 대접 받고 싶다. 이렇게라도 내가 대단한 사람인양 느껴보고 싶다.


나보다 부유하고 여행 좀 다녀본 친구들 중 의외로 비지니스를 안 타본 이들이 많은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아마 그들은 이런 논리로 나의 생각을 반박하겠지.


1. 마일리지를 위해 비싼 비행기를 타는 것보다 그 때 그 때 가장 저렴한 비행기를 타는 것이 더 합리적인 소비 행위다. 카드 혜택은 다른 걸로 받으면 된다.

2. 요즘은 셀프 백드랍도 많다.

3. 시차는 이러나 저러나 답 없다. 비행기 타기 전에 피곤하면 어차피 비행기 뜨자마자 골아 떨어진다.

4. 본질이 변하냐, 천민자본주의 같은 발상이다.



다 맞는 말이다.

뭐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예전보다 인생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는데라는 생각이 더욱 강해서, 포인트나 마일리지 같은게 쌓여 있는 꼴을 보기 힘들다.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니까 일단 쓰고 봐야 한다. 미래의 나에게 지금 부채를 만들어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만, 그건 그 때 가서 생각하자. 그렇다고 내가 재산을 탕진하는건 아니지 않은가? 고작 부수입인 마일리지나 포인트다.



두시간째 라운지를 이용하다 보니, 궁금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비지니스를 탄다고? 다들 나처럼 한푼두푼 카드 포인트를 모은걸까? 아님 스스럼없이 티켓을 사는걸까? 이 이는 어디 가고 저 이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결국 난 아무런 궁금증도 해결하지 못 하겠지.

하긴 마일리지 개악에 전국민적 공분이 일어나는걸 보면 나 같은 사람이 많은 것 같기도 하다.



끊임 없이 정처 없는 상념에 잠기다 끄적거리는 지금,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순간 마저, 미지의 여행이 시작되고 있다.

무사히 돌아오자,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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