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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ng Aug 31. 2020

[Invest] 은전 한 닢,

30대 직장인의 투자 일기

1. 소소한 직장인이자 투자자였다.


대기업 금융계 백오피스의 평범한 직장인, 지극히,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이다. 연봉도 남들만큼 받고, 혹은 적을 수도 혹은 많을 수도 있는 딱 그정도. 투자금액은 3천 이상으로 잘 늘어나지도 않았다. 워낙 소심하여 투자금을 늘리기에 망설임이 많았고, 만약 늘리려면 마이너스 통장에서 꺼냈어야 했으며, 가치투자라는 철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게 벌지는 못했지만 잃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투자금이 워낙 작았기에 수익도 작았고, "재테크"라기 보다는 직장인의 소소한 취미 생활 정도였다. 남들은 주식 투자로 성공해서 차도 사고 집도 산다는데...1~2천 가치투자로는 늘어봤자 몇백 왔다갔다...그리고 수익 실현을 잘 하지 않으니 손에 쥐는건 딱히 없었다.



2. 마침내 연봉 1억, 꿈같던 시간에 10년만에 다다랐다.


10년째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다. 공채로 입사하여 이직한다, 그만둔다를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그저 그런 직장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회사를, 같은 부서에 계속 있는 지극히 안정지향적인 직장인. (그래서 몸에 살마저 디룩디룩 붙는거겠지ㅠ) 

그러다 두 아들 육아도 어느 정도 수월해지고 야근, 주말 출근이 잦아지면서 일도 몰리고 조직에서 인정받게 되었다. 꿈에도 생각 못했던 S등급을 받고 마침내 연봉 1억을 훌쩍 넘기게 되었다, 10년만에. 전세 대출에 따른 이자 납입, 애들 봐주시는 장모님 용돈, 그리고 생활비를 지출하다보면 통장 잔고는 늘 마이너스인 삶이지만, 매슬로우의 말처럼 내가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 계좌는 왜 별로 변한게 없는것 같은걸까... 마이너스를 채워나가는건 생각보다 훨씬 더 밑빠진 독이었다.



3. 금단의 영역일까, 투자의 새지평일까,


3년전 소위 증권사에 다니는 전문가 친구들을 통해 해외선물에 발을 들였다. 첫해 초심자의 행운 덕에 몇백 손에 쥐었지만, 그 다음해는 말로만 듣던 마진콜을 당하며 투자금을 모두 날려 버렸다. 마진콜을 당하기 전까지 계속 증거금을 채워넣은 것은 당연지사. 마진콜은 정말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순식간에 내게 다가왔고, 문자로 툭하니 통보 되었다. MTS의 잔액은 몇만원. 0원이 아니네? 라며 순간 기뻐했던 건 아마 그 해 가장 아이러니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허리케인이라는 자연재해에 따른 휘발유 선물의 급변동, 이런건 백년에 한번 오는거고 내가 운 없게 당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래서 다시 시작했다. 마침 연말에 벌어졌던 터라, 거리낌 없이 새로운 해에 새마음 새 뜻을 품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절치부심,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급변동이 심한 상품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주로 통화선물을 통해 시나브로 수익금을 쌓기 시작했다. 그렇게 쌓아 올리기 시작하여 2019년 투자금의 100% 정도의 수익을 거둬들이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보이는 대박건들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액수지만, 자신감을 복돋기에는 충분했다.  



4. 코로나, 6개월째 수익 1억을 보았다.


올 2월 중반까지 너무 좋은 분위기였다. 특히, 1월 설 무렵 중국의 코로나 사태를 보고 지수 숏에 베팅한 것이 맞아 떨어졌을 때는 희열이 내 머릿속에 솜사탕처럼 흐드러졌다. 심지어 그와 동시에 마스크도 200장 정도 주문하였다. 이에 남들이 마스크를 찾아 온 동네를 헤맬 때 뒤에서 조용히 미소지으며 가족들에게 큰 소리를 치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가장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코로나로 인한 금융시장의 몰락은 정말 순식간이었다. 말그대로 마진콜의 향연, 큰 마진콜을 두 번이나 당했다.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포커판에서 말하는 '틸트'되는 순간이 이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레이크 없이 하락하는 시장을 보며, 그리고 시장에 대응하는 FED와 트럼프를 보며 마지막이란 생각을 하며 베팅을 했다.

6개월이 흘렀고, 조막손이던 나는 어느 새 손이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고, 하루에 1~2백은 기본으로 플러스 또는 마이너스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덕분에 주변 사람들에게는 온화해졌고, 집에서도 항상 돈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비싼 곳에 가서 외식을 하려 하면 남몰래 잔고를 떠올리던 약한 가장의 모습은 시나브로 사라지고 없어졌다.

그리고, 어느새, 마침내, 수익 1억을 찍었다.



5. 은전 한닢, 나침반을 위해 아무도 모르게, 누구나 알게 흔적을 남긴다.


 10년간 꼬박꼬박 출근하며 만들어낸 연봉 1억 직장, S등급을 받아 성과급을 연봉의 50% 받았던 것은 마치 소소한 추억처럼 희미해져갔다. 은전 한 닢이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마이너스가 있고 전세대출 잔고도 별반 달라진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현타가 와서 자꾸 이 정도면 잘 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계속 든다.

잃어버린 것만 같다, 나침반을. 그토록 원했던 수익 1억인데..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신기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난 결심했다. 나의 나약한 마음을, 글로 다 잡기로.

워렌버핏과의 점심이 수십억에 팔리듯, 나의 소소한 투자 철학도 글로 남겨 퍼트려 보고 싶다.

왜 내가 투자를 하는지, 왜 난 투기꾼이 아닌지, 왜 내가 더 발전해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해 글로써 다잡아 보고 싶다. 그러다 보면 내가 살아있는 이유도 찾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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