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들어 확진자 수가 점점 줄어들면서5월 19일부터 호텔과 캠핑장이 개장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6월 3일 목요일은 독일 헤쎈주의 공휴일. 금요일은 샌드위치 데이로 아이들이 학교엘 가지 않으니 3박4일로 여행을 떠날만 하다.작년 10월 이후 처음 세워보는 휴가계획이었다.
식당을 비롯한 호텔과 캠핑장의 개장이라니...(그동안에도 식당에서는 배달이나 싸가는 손님은 받았으며 호텔도 관광이 아닌 비지니스 목적의 손님은 받았다)도대체 얼마만의 개장이냐. 개장을 하긴 했지만 분명예전처럼 손쉽게 이용할 순 없을 것이다. 개장을 했다고는 하나 식당엘 한 번 가려고 해도 얼마나 번거로우냐 말이다. 일단 인터넷으로 코로나 테스트 센터에 접속하여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무료 검사 예약을 신청해야한다.(무료지만 실상은 무료가 아니라 정부와 건강보험에서 검사비를 지원한다. 껀당 18유로, 2만2천원 정도. 이 돈을 누가 내느냐 하면 독일 국민, Steuerzahler.) 신청을 해서 검사를 받고 15분후 이메일로 검사결과가 나오면 검사결과지를 프린터기로 출력해서 식당에 보여주거나 휴대폰에 저장된 내용을 보여줘야한다.
누가 식당엘 가려고 이 수고를 들인단 말인가. 식당과 관련하여 나의 삶은 지금까지 그다지 계획적이지 못했다. 식당에 가려고 예약을 했던 건 우리 한 세대 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나는 우리 부모님이 자식의 학교 졸업식과 입학식을 축하하기 위해 읍내의 신생옥(중국식당)을 예약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코로나 이전까지도 길가다가 어, 스시나 한 접시 할까? 하고 즉흥적으로 들어가 한 접시 먹고 집으로 돌아갔던 삶을 살았었는데 이젠 코로나 때문에 그 재미도 잃었다.
번거롭더라도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 모든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식당엘 갈 것이며,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도 이 모든 번거로움을 감수하며 여행을 떠날 것이다. 나 역시 일단 회사에 6월 4일 금요일 하루 휴가를 쓰겠다며 휴가계를 제출하고,(방만구 씨에게도 휴가계를 내라고 몇 번이나 푸시를 하고) 우리 둘의 휴가계가 받아들여진다는 가정하에 집에서 두 세 시간 거리에 있는 곳에서 3박을 할 수 있는 곳을 알아보았다. 튜링어 숲으로 가려고 하였으나 현재 튀링엔 주는 확진자가 많아 닫은 숙박업소가 많다는 정보를 관광센터로부터 입수를 하고 튀링엔주를 포기하였다. 확진자가 적은 니더작센주는 어떤가? 거리도 우리집에서 멀지 않고 확진자 수도 적어 숙박업소가 문을 열은데다 여기는 하르쯔라는 산악지대가 있다. 숲이 많은 지역이다. 이곳을 검색하다 숲속에 있는 헥센 하우스(일명 마녀집이며 통나무로 만든 집, 쿠키와 사탕은 안붙어있음) 하나를 발견했다.
여기를 가려고 나는 몇날 며칠을 방만구 씨를 닥달했다. 휴가계가 받아들여졌냐고 50번을 물었다. 별 대답이 없던 어느날 그는 5월 28일이 지나도록 휴가계를 제출을 안했다는 대답을 했다. 마누라는 어떻게든 가족 구성원들에게 오락을 제공하고자 이렇게 노력을 하는데 남편이란 작자가 이렇게 호응을 안해준다.
허나, 이것은 늘 있는 일이다.
방만구 씨는 늘 행동이 느리고 품행이 약삭빠르지 못하여 남들이 쪽쪽 단물을 빨고 떠나간 자리에 가리늦게 들어가 남들이 빨고 남은 단물을 기꺼이 빠는 사람이다. 그러니 물론 늦게 제출한 그의 휴가계가 받아들여질 리가 없다. 이런 샌드위치 황금휴가는 적어도 한 달 이전에 내야 휴가를 받을 수 있으니. 나는 늘 있는 일이다 보니 크게 실망하지 않고 계획을 변경했다.
내가 변경한 계획이라고 한 것은...
6월 3일 목요일 다 함께 휴가를 떠남.
6월 4일 금요일 나와 미나는 휴가지에서 놀고 방만구 씨만 출근하여 오후에 휴가지로 퇴근함.
6월 5일 토요일 함께 행복한 휴가를 만끽함.
6월 6일 일요일 충만한 기분으로 집으로.
방만구 씨가 6월 4일 금요일에 출근을 해야 하므로 1시간내에 출퇴근이 가능한 숙박시설을 찾아야 한다. 찾아보니 사람들이 얼마나 재빠른지 괜찮은 호텔, 펜션은 이미 예약이 끝나있었다. (코로나 정책으로 인하여 숙박업소가 풀로 차도록 예약을 받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보니 더더욱) 그렇다면 야외에서 그릴을 하고 뛰어놀 수 있고 숲속을 거닐 수 있는 캠핑장은 어떠리. 그러나 캠핑장도 이미 예약이 끝나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카라반을 숙소로 제공하는 몇몇 캠핑장에 웨이팅 리스트로라도 예약을 하고자 하니 자리가 나는대로 연락을 달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6월 1일 수요일 오전에 카라반 자리가 하나 났다며 어느 호숫가 근처의 캠핑장에서 연락이 왔다. 나는 그 캠핑장의 이용후기가 어떤가 하여 차곡차곡 읽어보았다.
깨끗하고 쾌적하게 조성된 캠핑장. 고속도로와 비행기 이륙소음이 심해 비추. 규율이 엄격한 캠핑장, 못하게 하는 것이 너무 많음. 심지어 리셉션은 12시에서 15시까지 문을 닫고 이 시간에는 자동차 출입도 불가. 주인이 너무 불친절함.
후기라는 것은 늘 주관적이다. 세상에는 늘 부정적인 사람들이 존재하므로 후기를 읽어선 캠핑장 주인이 객관적으로 불친절하다는 것을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나는 이 캠핑장 주인이 정말 불친절하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이용후기의 댓글에 느낌표가 잔뜩 들어간 주인의 불친절한 대댓글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손님들의 이용후기에 다는 호텔측의 댓글은 형식적으로나마 시정하겠다는 내용의 댓글이 대부분인데... 이 캠핑장 주인은 그렇지 않았다. 당신이 이러이러한 사항에 대한 규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누가 누굴 탓하는지 모르겠다는 내용.
음... 캠핑장 주인이 서비스 직종에 어울리지 않은 성격을 가졌군.
나에게 남은 선택이라고는 오로지 이 캠핑장 밖에 없어서 그런지 나는 어쩐지 불친절한 캠핑장 주인에 대한 우호적인 감정이 들었다.
규율이 엄격한 캠핑장은 따지고 보면 우리에게 나쁘지 않지. 그만큼 관리에 신경쓰고 있다는 사실 아니겠어? 사실 우리가 오랫동안 캠핑장엘 가지 않은 데에는 한밤중에 술이 취해서 고성방가하는 캠핑어때문이 아니던가. 그런 젊은이들이 밤 12시에 바로 우리 캠핑장 앞에서 웃고 떠드는 통에 방만구 씨가 밤잠을 설치고 후레쉬를 들고 나가 캠핑장 관리인을 대신하여 그들과 싸우지 않았는가 말이다. 아무렴, 방만구 씨가 한밤중에 취객들고 싸우는 것 보담은 규율이 엄격하고 조용한 캠핑장이 스트레스가 덜하지. 이리하여 나는 이 캠핑장을 예약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막상 떠나려고 하니 날씨도 문제였다. 일기예보를 보니 다름슈타트 북쪽은 우리가 묵는 나흘내내 비가 온단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것도 아니고 아주 천둥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내릴 예정이란다. 그래도 간다. 비가오고 천둥 번개가 쳐도 하루종일 치겠니? 햇빛나는 틈틈이 우리는 고기를 구워먹을거야. 그리고 노래를 틀어놓고 잔디밭에 누워서 뒹굴다 올거야.
캠핑장은 오후 3시에나 체크인이 가능하므로 우리는 6월 3일 목요일 집에서 2시에 떠났다. 그리고 캠핑장에 2시 30분에 도착하였다. 주위를 서성거리다 3시 정각에 캠핑장 입구에 도착해서 보니 인터넷 사이트에서 봤던 캠핑장 주인의 얼굴이 보인다. 이미 몇번 사진으로 봤던 터라 그런지 모르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반가운 감정이 들었다. 이래서 사람은 안면을 터야하는 모양이다. 인터넷으로든 사진으로든 실물로든. 한 번 본 얼굴은 낯선 얼굴보다 반갑다.
사전에 이미 인터넷을 통하여 캠핑장 주인의 성질을 인지하고 와서 그런지 나는 스스로 언행을 조심하였다. 혹시나 자잘한 분쟁으로 휴가기분을 망칠까 싶어.
캠핑장에 예약을 하고 왔다고 해서 무사히 입실을 한 것은 아니었다. 체크인 전에 캠핑장 간이 검사실에서 코로나 검사를 하고 네거티브 결과를 받은 사람만이 체크인이 가능하다. 검사비는 두당 4유로. 나는 전날 코로나 검사센터에 방문하여 네거티브 검사증을 받아놓은 상태였고 방만구 씨와 미나는 두당 4유로를 내고 검사를 해야할 상황이었다. 이에 대비하여, 검사비를 아끼고자 나는 회사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코로나 테스터기를 들고 갔다. 무료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뭐하러 돈을 들이냔 말이다. 나는 깐깐한 캠핑장 주인에게 테스터기를 사왔으니 우리가 사온 것으로 스스로 검사를 하면 안되겠냐고 조심스럽게 문의했다. 주인은 한숨을 쉬며 나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내가 가져가 테스터기. 한 팩에 5개입. 사용법은 임신테스트기와 유사함.
사실 코로나 테스트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식당이나 호텔에서 시행하고 있는 코로나 테스트가 업소 주인이 해야할 업무냔 말이다. 그들은 손님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므로써 돈을 버는 사람들이지 손님들을 상대로 코로나 테스트를 해야할 사람들은 아니다. 뭐 적십자나 정부에서 사람을 보내서 손님들에게 테스트를 해준다면이야 마다할 이유는 없겠지만... 정부의 방침대로 업장을 열긴 했지만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손님들을 상대로 코로나 테스트를 해야하는 일은 그야말로 자신들의 업무도 아닐뿐더러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개중에는 나같은 손님이 있어 기어코자기가 들고온 테스터로 테스트를 하겠고 주장한는 사람도 있고, 우리 뒤에 온 사람처럼 주인이 보는 앞에서 테스트를 해야함에도 불구하도 화장실에 들고가서 해오는 바람에 테스트가 무효가 되느니 마느니 옥신각신 싸우기도 하고... 내가 주인이라도 스트레스 받을 상황이었다. 하여튼 우리는 테스트를 마치고, 전원 네거티브 결과가 나온 이후 카드로 3박을 결제하고 체크인을 마쳤다.
체크인 시에 우리는 두 당 세개의 칩카드를 받았다. 주인 왈, 캠핑장을 드나들 때 이 칩카드가 없으면 문이 열리지 않는단다, 화장실을 갈때도 세탁실을 갈때도 오락실엘 갈때도 식기 세척실을 드나들때도 이 칩카드가 없으면 출입이 불가능하단다. 입실자의 방문객은 주인의 허락없이 캠핑장을 드나들 수 없으며 별도의 요금을 내야한단다.
칩을 받고 잠시 방광을 비우고자 화장실엘 갔더니 변기앞에 A4 용지에 빽빽하게 지켜야할 13조의 규칙들이 붙어있다. 아, 의무와 규칙으로 가득한 캠핑장이라니... 내가 군대에 온 것인지 휴가를 온 것인지...
벌써부터 지친다.
그러나 우리에겐 술과 고기가 있다. 날씨는 좋았고 고기과 맥주는 부족함이 없었다. 우리는 짐을 풀자마자 그릴을 시작하였다. 늦은 점심이었다. 미리 싸들고 간 쌈장에 돼지 삼겹살과 목살을 구워 상추쌈에 싸서 포만감이 들도록 먹었다. 술과 고기가 약이었다.배가 부르고 얼큰하게 취하니고속도로 소음은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거의 들리지 않았고 비행기 이륙도 즐거운 볼거리가 되었다. 모든 걱정은 기우였다. 정말 떠나오길 잘했지. 성공적인 휴가의 시작이었다.
캠핑장에서 이불과 베개, 침대보를 제공해주지 않아 우리는 트렁크 가독 이불보따리를 싸갔다. 자물통으로 잠긴 곳은 화장실. 공용화장실을 이용해야했다.
카라반에 붙은 오두막. 내부에 냉장고, 전자레인지, 식기도구, 커피머신, 토스터기, 가스레인지와 식탁이 구비되어 있어 취사에 불편함이 없었다.
6월5일은... 캠핑장에서 제일 즐겁게 보내야한다고 게획을 짰던 토요일이다. 그런데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방만구 씨가 없다. 그는 집으로 돌아갔다. 전날 밤에 급히.
결과적으로 우리의 캠핑여행의 문제는 깐깐한 주인과 규칙도, 고속도로 소음도, 비가오고 천둥과 번개가 치는 날씨도 아니었다. 희안하게도 비와 천둥과 번개는 밤에 쳤고 낮에는 해가 비쳤다. 다른 지역에선 소나기가 쏟아졌다는데 우리 캠핑장에선 빗방울 조차도 안떨어졌다. 날씨는 예상보다 흡족했고 몇몇 이용후기에서 읽었던 고속도로 소음음은 문제될 것이 없었으며 깐깐하리라 생각했던 주인도 민원을 제기하는 즉시 달려와 해결해주었다.
문제는 매트리스였다. 매트리스 중간이 움푹 들어가서 안그래도 입실시에 이거, 좀 문제가 될 수도 있겠는데 싶었는데... 하룻밤을 자고난 다음날 6월 4일 금요일 아침, 방만구 씨가 제대로 일어나질 못했다. 허리를 움켜쥐고 엉거주춤 겨우 일어나 출근준비를 마치더니 아픈 허리로 운전하여 출근했다. 퇴근해서 돌아온 모습을 보니 상태가 더 심각했다. 그는 아픈 허리를 하고도 맛있는 것을 먹어보겠다고 수퍼마켓에서 호박, 마늘, 파프리카, 쏘시지, 고기를 사들고 와서 구웠다. 맥주도 두 병이나 마셨다. 잘 먹고 잘 마시고. 밤 9시 30분이 되어 우리는 씻고 잠자리에 들려고 밥상을 치우는데 방만구 씨가 어렵사리 입을 떼었다.
나, 아무래도 집에 가서 자야겠어. 내가 운전해서 갈께. 좀있으면 번개도 칠텐데.
이런다. 맥주를 두 병이나 마신데다 아픈 허리를 가진 사람이 운전을 하겠단다. 방만구 씨는 지금까지 교통범칙금 딱지를 뗀 적이 거의 없다. 올바른 시민의 한 사람으로 음주운전은 물론 소방차 전용도로에 정차조차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운전에 서툰 마누라에게 곧 있으면 천둥 번개가 내려칠 야밤에 집으로 데려달라는 말을 차마 입밖에 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스스로 운전을 해서 집에 가겠단다. 여기서 이 움푹 들어간 매트리스 위에서 잤다간 내일 절대 못일어날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단다. 나는 매트리스가 안좋으면 내 침대에서 자든지 하지 무슨 천둥 번개가 칠 야밤에 집으로 가냐고. 갈 거면 일찍 간다고 얘기했으면 내가 데려다 줬지... 술마셨으니 택시부르자고 했다.
그렇게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 내가 데려다 주었다. 별 도리가 없었다. 술마신 자가 운전하느니 운전이 서툰 사람이 운전하는 것이 낫다.
나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그를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캠핑장 도착 15분을 앞두고 눈앞에서 흡사 3차대전이 벌어진 것처럼 번쩍거리는 천둥 번개를 만났다. 번개가 내려칠때마다 눈앞이 확확 밝아졌다. 다행히 큰 소나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캠핑장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놈의 규칙때문에 밤 10시 이후로 차량진입이 안되어 나는 캠핑장 밖에 차를 세워두고 비를 홀딱 맞으며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천둥치는 날 카라반에서 빗소리릉 듣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일찌감치 방만구 씨는 아파서 꼼짝을 못하고 누워있으니 둘이서 잘 놀다가 돌아오라는 전화를 남겼다. 하루종일 우리는 방만구 씨가 없어 너무나 심심했다. 그의 부재가 이렇게 클줄 나는 몰랐다. 우리끼리 재미있는 일을 만들어 구경을 다녔지만 방만구 씨가 없는 것이 시시각각으로 느껴졌다.
나는 계획을 세우고 목표점을 잡아 나아가는 것을 잘 하는 사람이다. 반면 목표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한다. 심지어 산책을 나갈때도 그냥 무작정 헤매고 다니는 것 보다 수퍼마켓에 가서 계란이라도 몇 알 사오는 계획을 세워야지 안그러면 밋밋해서 영 나갈 맛이 안생긴다. 반면 방만구 씨는 계획을 세우고 목표점을 잡는데는 서툰 사람이지만 계획이나 목표가 없이도 늘 뭔가를 재미나게 하는 사람이다. 그동안 나는 방만구 씨가 재미있게 노는 것을 보며 재미있어했던 모양이다.
이번 캠핑장 휴가도 내가 계획을 세웠지만 정작 캠핑장에 도착하고 나니 나는 뭘 해야하나 싶어 멀뚱히 있기만 하는 반면, 방만구 씨는 가방 가득 자잘하게 놀 도구들을 준비해와서 노는 시간을 허투로 보내지 않고 늘 뭔가를 하며 지냈다. 그릴을 할때도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겠다며 마늘을 얹은 호박그릴, 마늘을 얹은 파프리카 및 가지구이 등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재미있다. 산책을 할때도 나는 시간을 재며 호수까지 이제 24분 정도 남았겠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든 사람인데, 그는 바닥에 있는 나뭇가지를 주워 막대롱(큰 막대기는 방망이로, 작은 박대기는 공으로 삼아 하는 야구와 비슷한 놀이) 을 하자는 사람이다. 그런 그의 성격이 일상생활을 할 때는 헛점 투성이로 보여서 답답해 보일 때가 많지만 일상에서 한발짝 나와서 보면 내 인생을 재미로 채워주는 것 같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카라반에서 지낸 3박4일은 방만구 씨가 없어 너무 심심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이런 말을 한다면 지 버릇 개 못준다고 하겠지만 나는 방만구 씨가 없는동안 컴퓨터를 들여다 보며 다음 휴가계획을 짰다. 이번 여름휴가를 대비하여 코로나 사정이 나아지고있는 나라들은 어디인지, 자동차 여행시 국경에서 코로나 테스트가 삼엄한지, 이태리 아드리아의 확진자 수는 어떻게 되는지, 비행기 여행시에 제출해야할 서류는 어떻게 되며 비행기 여행이 과연 시기적절할지, 터키 리라는 얼마나 더 떨어졌는지...이러면서.
방만구 씨가 없던 날 미나와 나는 캠핑장 근처 8km가량을 산책했다. 산책하며 놀던 중 만난 오리가족.
오늘은 6월 10일 목요일. 통장을 보니 우리가 캠핑장 체크인 시에 보증금으로 지불했던 50유로가 아직 송금되지 않았다.
그 보증금은 숙박업소 측에서 손님에게 요구하는 보관용 돈으로 모든 시설을 깨끗하게 사용하고 나갈 시에 다시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이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독일에서 캠핑장을 이용하건 호텔을 이용하건 보증금으로 돈을 냈던 기억이 없다. 몇몇 숙박업소들은 보증금을 요구하기도 한다는데 퇴실시 되돌려 받는 것이 보통이다. 이렇게 보증금으로 낸 돈을 계좌이체로 돌려주겠다는 숙박업체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해서 좀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퇴실시 청소를 마치고 식탁위에 놓인 10개의 주의사항을 읽어보니 가전제품 파손의 경우 30유로 이상, 그릇이나 수저가 없어졌을 경우 개당 얼마, 청소가 깨끗이 되지 않았을 경우 얼마 이런 식으로 금액을 제하고 보증금을 돌려준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뭐...
세상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으니, 따져보면 숙박시설을 제공하는 주인 입장에선 불가피한 규칙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손님인 내 입장에선 이 보증금 관련 내용이휴가를 산뜻하게 마치게 해주지는 않는다. 왠지 기분이 나쁘다. 나를 불특정 몇몇의 기물파손자(혹은 파손하고 말도 없이 토끼는 자), 혹은 주방용품 도둑 이라고 미리부터 규정짓는 것 같아서. 그래서 다시 이곳을 찾을 일은 없을 것 같다.
설겆이를 하다가 컵을 하나 깼는데 혹시나 50유로에서 컵값을 제하고 이체해 주려나?
PS.
우리가 캠핑장에서 돌아온 다음날 우리동네의 식당은 야외좌석에 한하여 코로나 테스트 없이도 식사가 가능했다. 미나와 나는 수퍼마켓에 가는 길에 스시집에 잠시 들러 스시 한 접시 씩을 먹었다. 예전엔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좋은 줄도 몰랐던 일이 새삼 너무 좋게 느껴졌다. 독일도 차츰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이 조금씩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