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미리 준비하지 못한 즉흥적인 여행이었다. 코로나 시국이라 정부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몰라 비행기 여행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고 자동차로 이탈리아를 다녀올 계획을 세웠다. 헤센주 방학이 시작되는 7월 중순부터 2주정도 코로나가 퍼지기 전에 휘딱 다녀올 양이었다. 그런데 방만구 씨 회사에 피치못할 사정이 생겨 2주 휴가가 무산되었고, 그 희생의 댓가로 그는 7월 31일부터 8월 말까지 4주 휴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리하여 나는 7월31일부터 거의 한 달에 달하는 휴가를 즐기기 위해 출발 2주 전부터 부지런히 클릭질을 했다. 밀라노 친구네서 2박을 하고, 토스카나, 로마, 나폴리, 소렌토, 시칠리아 섬을 거쳐 아드리아 해를 끼고 다시 북쪽으로 올라와 베네치아에서 여행을 마치는 걸로. 괜찮은 숙소는 무료해약이 가능한 곳이라면 예약을 해놓았다. 이탈리아라면 나는 로마 아래로는 내려가본 적이 없어 이번 여행이 기대가 되었다. 여행지와 숙소사진들을 보며 나는 이미 이탈리아에 있는 양 마냥 들떠있었다.
그런데.
7월 말이 가까워오자 그동안 내려가던 유럽의 코로나 확진자 수가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고, 급기야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가 코로나 여행 위험지역으로 선정되었다. 내 이럴줄 진작에 알았다. 방만구 씨에 의하면 8월 6일부터 이탈리아는 백신증명서가 없으면 레스토랑을 비롯한 박물관 등 주요 관광시설물 출입이 허가되지 않는다고 했다. 백신을 맞지 않은 우리 가족들에게는 치명적인 뉴스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떠나기 일주일을 앞두고 급히 여행지를 이탈리아에서 크로아티아로 바꾸었다. 크로아티아는 남부 유럽중 확진자가 제일 적은 곳이라 코로나 방역도 까다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를 여행하기 위햐서는 72시간 이내의 코로나 PCR 음성 테스트 혹은 48시간 이내의 코로나 Antigen 음성 테스트가 있어야 했고 크로아티아 정부에 여행자 등록을 해야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크로아티아까지 1000 킬로미터가 넘으므로 뮌헨에서 하룻밤을 자는 것을 감안하면 코로나 테스트는(정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Antigen Test를 할 계획) 떠나는 날 아침에 하는 것이 시간상으로 맞다. 여행자 등록은 테스트 결과를 첨부해야하니 테스트 결과를 받은 후에 해야했다.
금요일 밤에 짐을 다 싸두었는데 잠이 안왔다. 혹시 가족중 누군가가 코로나 검사결과가 양성으로 나온다면 한 달 여행을 전면적으로 취소해야할 판이었다. 인터넷에는 무증상 양성 감염자의 비행취소 사연이 심심찮게 올라왔다. 비행기 티켓을 예약해놨는데 여행전날 PCR테스트 결과가 양성으로 나오는 바람에 티켓취소를 했는데 환불이 안됐다는 얘기들. 그야말로 당사자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얘기다. 그리고 누구나에게 해당될 수 있는 얘기다.
우리 동네 테스트 센터를 보자면 좀 시설이 소박하다. 우리집에서 100미터 떨어진 길가 주차장에 봉고차 한 대가 벌써 몇 달째 주차되어 있는데 거기가 바로 테스트 센터란다. 봉고차 옆에 해피 테스트라고 빨간 글씨로 씌어져 있지만 나는 평소에 그 봉고차가 코로나 테스트 센터인줄은 모르고 지나치다가 이번에야 알았다. 한적한 동네라 거기서 검사받느라 줄서있는 사람들을 본 적도 없고.
그 테스트 센터를 출발하는 7월 31일 토요일 아침 10시 문을 열자마자 갔다. 나와 방만구 씨의 테스트 결과는 테스트 15분 후 이메일로 전송되었는데 미나의 결과만 전송되지 않았다. 떠나려고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테스트 결과만 기다리고 있는데 30분이 지나도 전송되지 않아 마음이 급했다. 나는 100미터 15초의 달리기 실력으로 테스트 센터로 달려가 문의를 해봤더니 직원 실수로 전송하는 것을 깜빡했단다.곧바로 전송할테니 1분후에 이메일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집에 와서 다시 확인해보니 오류가 생겨 결과를 볼 수 없다는 안내문이 떴다.
이런 떠그럴...
혹시 테스트 결과가 양성이라 오류가 생긴 건 아닐까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다시 테스트 센터로 달려가 확인해봤더니 미나의 생일이 잘못입력되는 바람에 테스트 결과를 확인할 수 없는 거였다. 직원말로는 미나의 생일을 수정하겠다고 했지만 아무리 확인해봐도 미나의 생일은 수정되지 않았고, 결국 나는 잘못 입력된 미나의 생년월일을 입력하여 테스트 결과를 볼 수 밖에 없었다.결과는 음성이었다.
코로나 테스트 결과지와 여행자 등록
어쨌든 이런 우여곡절 끝에 모두 코로나 테스트음성결과를 받았고 그 결과를 첨부한 여행자 등록도 마쳤고 그리하여 우리는 정오가 거의 다 돼서야 뮌헨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프랑크푸르트에서 뮌헨까지 400 킬로미터, 자동차로 4시간. 우리는 약간의 정체를 겪은 후 5시간만에 뮌헨에 도착할 수 있었다.
뮌헨의 우리 숙소는 잉글리쉬어 가르텐 근처. 뮌헨에 무사히 도착하였으므로 우리는 비어 가르텐에서 맥주를 마시고 냄새나는 치즈와 양파를 먹었다. 안주 맛을 보고 나는 기함했다. 과연 이것은 인간이 먹을 수 있는 맛인가 싶어서. 음식 이름조자 이상하다. Obatzter. 혹시 뮌헨에 가거들랑 Obatzter를 한 번 먹어보시라. 그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세상 이상한 맛이 뭔지를.
그나저나 나는 이 호텔에 체크인을 할 때 음성 결과지를 보여줘야 했었다. 직원의 말로는 호텔 체크인 시에 음성 결과지가 없으면 체크인이 불가능하단다. 혹시라도 야밤에 오는 손님을 위해서만 예외적으로 호텔에서 테스트를 해준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슬금슬금 불안해졌다. 크로아티아에서도 호텔 체크인 시에 음성 결과서를 보여줘야 한다면? 성수기라 호텔들이 대부분 예약이 끝나 어쩔 수 없이 2박, 1박, 3박 이런 식으로 짧게 예약을 해놨는데... 게다가 크로아티아에선 테스트 비용이 두당 18유로 씩이나 되는데... 호텔 체크인 때마다 코로나 테스트 음성 결과지가 있어야 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테스트를 해야할까. 테스트 센터를 찾느라 자동차를 타고 여기저기를 빙빙 돌아야 할테고 그러느라 시간을 무진장 허비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