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크로아티아 우막에서 첫 숙소를 잡게된 이유가 있다. 우막이 독일에서 출발할 경우 가장 가까운 크로아티아의 바닷가이기 때문이다. 위의 지도에서 보면 내가 연어색으로 표시해논 곳이 우막이고 우막은 크로아티아의 이스트라 반도의 맨 북서쪽 바닷가에 위치한 작은 도시이다. 뮌헨에서 600킬로미터, 정체가 안되면 6시간 정도 걸리지만 우리는 주말에 출발하는 바람에 8시간만에 도착했다.
장시간 운전에 능숙한 사람들이 있다. 여기 이 이스트라 반도에서 만난 한 폴란드 가족은 폴란드 슈체친에서 이스트라 반도까지 1400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하루만에 달려왔단다. 우리는 장시간 운전에 능숙한 사람이 아니므로 그렇게는 못한다. 교대운전을 하면 되지? 나는 출퇴근길 각 17분씩만 운전하는 무늬만 무사고 운전자로 집과 직장 외의 길을 운전해본 적은 거의 전무하다. 운전 쭈구리 되겠다.
예전에 미나가 한글학교에 다닐 적에, 어떤 토요일 오전이었다. 방만구 씨가 샤워를 하고 나오다가 욕조에서 철퍼덕 넘어지는 바람에 가슴팍에 검은 멍이 들어 말도 요동도 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하필이면 애를 한글학교에 데려다줘야할 그 시각에 사달이 난 것이었다. 가슴에 멍이 들어 숨쉬는 것 조차 힘들다는 사람을 닥달하여 아직 죽을 정도는 아니니 애는 학교에 데려다 줘야할 것이 아니냐고 자동차 있는데로 내몰았다. 자동차까지 걸음을 옮긴 방만구 씨는 결국 고통으로 인하여 몸을 숙이는데 실패하여 자동차에 탑승하지 못했고, 조그마한 소리로 당신이 운전면허가 있으니 애를 학교에 좀 데려다 주는 게 어떠냐는 의사표시를 처음으로 하였다.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출퇴근 길이 아닌 다른 경로로 운전을 한 것이. 나는 그때 이후로도 출퇴근길이 아닌 다른 길을 운전해본 적이 거의 없다. 이런 내가 독일에서 크로아티아가는 길을 운전할 수 있겠는가...
방만구 씨가 8시간 운전을 하여 늦은 저녁에 우막에 도착하여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호텔 리셉션에 들어갔다. 혹시나 크로아티아의모든 호텔에서 독일처럼 코로나 음성 테스트를 요구하면 어쩌나 하며. 호텔에서는 코로나 음성 테스트는 물론이며 코로나에 대한 어떤 수칙도 언급하지 않았다. 크로아티아를 여행하며 느낀 사실은 확진자 수가 적어서 그런지 독일에 비하여 방역에 열심히인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슈퍼마켓이나 건물 안을 제외하면 외부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식당 화장실 이용시에 독일에선 꼭 마스크를 써야하지만 여기서는 누구도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호텔 풀장에는 다닥다닥 붙은 의자에 누운 사람들로 가득했고 풀장에도 너무 많다 싶은 사람들이 들어가서 놀았다. 부킹닷컴의 한 이용후기에 호텔 식당을 비롯한 전체적인 시설에서 거리두기와 코로나 방역수칙이 너무 안지켜지는 것 같아서 위험하다며 예정일보다 빠르게 퇴실했다는 독일인이 남긴 내용이 있었다. 나중에 로컬 호텔을 다니며 알게된 사실이지만 호텔 주인들은 손님에게 마스크를 쓰지 않은채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독일에서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흡사 코로나가 없는 세상에 온듯 했다.
우리는 빠르게 체크인을 끝내고방에 들어와서 짐을 풀고 정리를 끝냈다. 밤 9시. 방만구 씨는 힘들게 운전하여 여기까지 왔으니 맛난 음식으로 보상을 받아야 겠다며 그 시각에 레스토랑엘 가자고 했다. 나는 지금 이 시각에 레스토랑이 어디 있는줄 알고 가냐며 너무 늦었고 모두가 피곤하니 내가 즉석에서 만든 스파게티를 먹고 그냥 자자고 했다. 아무리 늦었어도 휴가와서 인스턴트 소스를 뿌린 스파게티를 먹냐며 자기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레스토랑에서 맛난 걸 먹고 올테니 느이들은 알아서 하라고 했다. 뭐... 정이 그렇다면이야 우린 집에서 알아서 먹고 일찍 자겠다.
이리하여 방만구 씨는 식당으로 가고 우리는 집에서 저녁을 만들어 먹었다.
오뚜기 진라면.
방만구 씨는 두고두고 휴가와서 그 첫날에 라면을 먹었다고 우리를 놀렸다. 라면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 엠티음식, 휴가음식인줄 모르고 하는 소리다.얼마나 맛있는데...
나는 방만구 씨가 그날 썩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이런 종류의 사람이다. 이백 미터로 줄줄이 이어진 먹자골목이 있다고 치자. 그 골목을 지나치며 식당품평을 하며 이 식당이 음식이 맛이 없을 이유를 찾아낸다. 손님이 없으니 이 식당은 맛이 없을거야, 메뉴판에 사진이 들어있는 걸 보면 분명 맛없는 관광객 전용식당이야, 기름쩐내가 나는 걸 보면 분명 신선한 기름을 안쓰는 식당이야... 이런 식으로 이백미터를 돌아 제자리로 온 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겨우 식당 하나를 골라 들어가면 밥을 먹고 나서도 그다지 기분이 내키지 않는다. 대부분 그럴줄 알았다는 듯 실망한다. 이렇게,
당연히 맛이 없지, 내가 바랠 걸 바래야지 이 관광지에서... 다음엔 시골로 들어가 현지인들이 가는 로컬 음식점을 찾아내야지!
그러니 오랜 자동차 여행으로 밤에 휴가지에 도착한 내가 그를 따라 식당에 가는 일이 옳은 일인가, 라면을 먹는 것이 옳은 일인가.
다음날 우리는 관광객들이 오는 곳이라면 늘 있는 메뉴인 돈까스와 감자튀김, 치밥치치, 그리스 샐러드를 시켜먹었다. 맛은 그다지 썩... 관광지 맛이지 뭐.
우리가 묵었던 우막 호텔 근처 해변. 이곳의 바닷가는 모래해변은 없고 대부분 바위로 이루어져 있거나 이용객들의 안전을 위하여 시멘트로 발라져있다. 추천할만한 해변은 아닌듯.
해변에 사이프러스 나무가 심어져 있고 매미가 종일토록 울어댄다. 겨울이 추워 야자수 나무는 없고 대신 소나무가 즐비하다. 이탈리아 북부 아드리아 해와 비슷한 전경.
우리가 묵었던 아파트. 성수기라 방이 없어서 이틀밤만 묵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잘한 결정이었다. 리조트보다는 개인이 임대하는 아파트가 저렴하고 깨끗하며 만족스러웠다.
우막 올드 시티.
우막 올드 시티의 한 식당.
우막과 이웃한 도시 노비그라드.
노비그라드의 성벽.
노비그라드의 시멘트 해변.
PS.
방만구 씨가 현지 서점에서 크로아티아 역사에 대한 책을 사서 읽고는 그 지식을 날마다 내게 방출한다. 이렇게.
크로아티아의 언어 및 민족구성은 슬라브 문명이야. 티토, 발칸전쟁 이런거 들어봤지? 크로아티아는 예로부터 오스트리아, 베네치아, 헝가리, 몽골 등으로부터 습격을 당했지만 이렇다할 강력한 제국이 없어 이웃나라로부터 수모를 겪었...
엥? 몽골이 여기까지 왔대? 칭기스칸이?
응,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안짱다리를 한 몽골사람들을 보고 깜놀했대. 저것이 사람인가 외계인인가 하고.
왜 안짱다리를 하고 왔을까?
응, 몽고사람들이 말을 타니까. 근데 안짱다리도 이상한데 몽골사람들이 빵이랑 국수는 안먹고 고기랑 시큼한 우유만 마셔서 사람들이 또 깜놀했대.
당연히 놀라겠지. 완전히 다른 문화를 가졌으니. 또 뭐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놀란 건 없고?
있지. 우루루 몰려와서 도시와 마을들을 정복하고는 다음날 우루루 가버려서 깜짝 놀랐대.
어머, 몽골의 용사들 탐욕이 없어서 정말 매력적이다. 보통은 눌러앉아서 사람들을 족치고 대대손손 음식과 땅을 다 빼앗아 먹고 호의호식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