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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이 Aug 17. 2021

바다에서 바다 오이를 만났습니다

치명적으로 고고한 자태

오늘은 아침부터 바람이 많이 불었다. 창문을 열면 창문이 뜯겨져 나갈 정도로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우리는 오전내내 아파트 내에서만 고요히 앉아 있었다. 이른 점심으로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고 앉아 있으려니 비싼 돈 내고 휴가와서 바람분다고 집에만 있기엔 본전생각이 났다. 그리하여 집에서 동쪽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바닷가를 찾았다.


 평소에는 최소한 대여섯 패밀리들이 텐트를 치고 앉아있는 바닷가인데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어 혜수욕장이 텅텅비고  요렇게 방만구씨 혼자만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던 찰나,

방만구 씨가 바위위에 서서 소리쳤다. 이리 좀 와보라고.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바다 안에서 상체를 꼿꼿히 세우고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생명체를 하나 만났다. 나는 태어나서 이렇게 생긴 걸 본 적이 없었다. 몸색깔은 검정, 몸길이는 30 cm 정도 둘레는 지름 3-4cm 정도. 이 놈이 상체를 90도로 빳빳이 세우고는 담배를 피우는 것처럼 몸속에 있는 어떤 물질을 밖으로 배출하고 있었다. 치명적으로 매력적인 자태였다. 몸에 독을 잔뜩 품고 서서는 우리에게 겁을 주는 것 같았다.  


너희들이 나보다 암만 커도 난 무섭지 않아. 내겐 독이 있거든. 까만 가시들이 보이지? 그게 다 독덩어리야, 만지기만 해봐! 손가락이 두배는 커지게 만들어줄테니까!


바다 오이가 저러고 30분 이상이 서있었다. 물이 어찌나 맑은지 1미터정도 깊이가 이렇게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


나는 혹시라도 놈이 들을까봐 나즈막한 목소리로 방만구씨에게 이게 뭔지 아냐고 물었다.


바다 오이.(Seegurke)


뭐? 오이? 애를 능멸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치명적으로, 독극적으로 생긴 애한테 오이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 있어? 바다 오이가 들으면 얼마나 기분 나빠할 이름이냐고.


그럼 뭐라고 불러야 되는데?


생긴게 이렇게 비장한데 적어도 티라노사우루스 같은 긴 라틴어 이름을 붙어줬어야지.


뭐... 이름이란 것이 사람들이 그렇게 다들 부르면 자기 이름이 되는거지. 이제와서 라틴어 이름을 갖가 붙인다고 해서 누가 그 라틴어 이름을 부르겠냐구. 미안하다, 오이야,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니가 이제 내게로 와서 바다 오이가 되었구나. 


그런데 듣고보니 생긴 것과 크기가 딱 오이같았다. 놈은 눈과 비슷하게 생긴 것을 머리에 달고는 있었지만 우리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고, 우리가 제법 큰소리로 얘기하는데도 도망을 안가는 걸 보면 귀도 안들리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서 30분동안이나 바다 오이를 들여다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인터넷에 찾아보니 이것은 한국말로는 해삼이었다. 좀 실망스러웠다. 아주 대단한 생물인줄 알았는데 해삼에 불과하다니... 나는 조개, 해삼, 멍게, 개불과 같은 것들을 전혀 안먹다보니 해삼을 자세히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어시장에서 어렴풋이 본 해삼도 저런 모양은 아니었다.


저것이 해삼인줄 알았으면 잡아오는건데... 하고 생각했다가 저 끔찍하게 치명적으로 생긴 걸 먹어보겠다고 죽이고 썰고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고는 안잡아 오기를 잘했지 했다.


그런데 나는 오늘 본 놀랄만한 생명체를 어느덧 돈으로 계산해보고 있었다.자연산 해삼 한 마리, 저정도로 크고 싱싱한 거 시장가격이 얼마정도 하려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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