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유럽에서 화재소식이 유난히 많던 여름이었다. 우리가 원래 가려고 했던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은 올 여름 50도까지 육박하여 한차례 큰 화재가 났던 곳이었고 터키 역시 휴양지인 안탈리아와 보드룸에서 화재가 나서 인명피해가 많았던 곳이다. 남프랑스 역시 8월초 화재소식이 들렸던 곳이다. 20년넘게 독일에서 살면서 이렇게 한꺼번에 유럽에서 많은 화재소식을 듣기는 처음이다. 게다가 화재가 난 곳은 모두 나와 지인들이 이미 휴가를 떠났거나 가려고 예정했던 곳이라 화재소식이 더욱 실감났다.
이리하여 우리는 크로아티아 아드리아해의 섬으로 들어가서 며칠 묵으려던 계획을 접었다. 올 여름 크로아티아도 고온건조한 기온이 계속되고 있는데 혹시 화재라도 발생해 섬으로 들어갔다가 못나오기라도 하면 큰 일이 아닌가 말이다.
우리가 아이다 아파트에 묵을 무렵 늘 바닷가 건너편으로 보이던 모래색 황무지 섬 Pag. 미나는 그 섬을 보며 꼭 화성처럼 생겼다고 했는데 현지인들은 이곳을 달섬이라고 부른단다. 아침마다 일어나 발코니에서 커피를 마시며 저곳은 어떻게 저렇게 황무지가 되었을까 궁금하던 차에 우리는 당일치기로 섬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현지인에 의하면 섬 맞은편(그러니까 우리가 있는 지역) 산지에서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아무 것도 자라지 않는 황무지가 되었다고 했다. 현지인 말대로 과연 우리가 있는 Karlobag의 바람은 엄청났다. 밤에는 창문이 흔들려 그 소음에 잠을 못이룰 지경. 우리는 바람이 쎈날은 아예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 있었다. 바람이 심한날 경고를 무시하고 자동차를 몰고 나갔다가 도로 한복판에서 경찰에 SOS를 보내는 외국인 관광객도 있을 정도라고 현지인이 말했다.
밖에 나갔다가 머리카락이 이지경이 됨.
보이는가? 푸른바다 건너편 희미한 모래색깔 황무지 땅? 저곳이 바로 섬 Pag이다.
섬을 조금 확대해서 올려본다. 이 날은 전날보다 기온이 2-3도 내려갔는데 그 탓인지 바다색이 한층 어두워보인다. 농도도 짙어보이고.
위의 지도에서 보이듯 Pag에 가려면 Prizna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방법과(페리가격 자동차와 성인 2인 포함 20유로 정도) 육지에서 국도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국도로 들어가는 길을 지도에서 살펴보면 빨간색과 초록색 칠이 되어있다. 빨간색은 국도라는 뜻이며 초록색은 경치가 아름답다는 뜻이다.우리는 Prizna는 이미 지나왔고 Pag으로 들어가는 입구 근처에 이미 숙소를 잡아놨으므로 국도를 타고 들어가기로 했다.
우리의 선택은 과연 옳았다. Pag으로 들어가는 길은 과연 절경이었다. 황무지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나는 처음 알았다. 내가 일찌기 가본 그 어떤곳과도 그 풍경이 달랐다. 미나가 말한대로 우리가 흡사 화성이 들어온 것처럼. 우리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섬으로 들어갔다.
섬으로 들어가는 다리에 잠깐 멈춰서서 목을 축이고 있는 방만구와 그의 딸 미나.
다리 맞은 편이 Pag리며 이 다리는 1968년에 준공되었음. 통행료는 내지 않았음.
물은 푸르디 푸르나 육지는 황무지. 이국적인 풍경에 넔을 놓고 바라보게됨.
이곳의 치즈와 올리브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특산물이다. 길가에서 많은 농민들이 수박, 치즈, 마늘 등을 팔았고 우리도 이 지역 특산물을 사다가 맛볼까 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깜빡하고 사지를 못했다. 치즈가 특산물이라면 소를 키운다는 말인데 소를 키운다는 얘기는 소가 먹을 풀이 있다는 말이다. 섬의 내륙으로 들어와보니 맞은편에서 보는 것과 달리 섬의 반대쪽에는 풀들이 자라고 있었고 군데군데 초록이 보였다. 그래서 축산업이 가능하고치즈를 만들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곳은 Pag섬에서 아주 가까운 Posedarje라는 곳으로 볼 것이라곤 바다밖에 없다. 이곳에서 우리는 섬에도 가보고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지닌 도시 Zadar에도 가보았다. 오래된 교회, 박물관, 미술관, 궁전 등 움직이지 않는 오래된 것을 보는 것을 나는 그다지 즐기지 않은 관계로 Zadar에서는 남긴 사진이 없다.
우리 여행이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Posedarje의 돌고래 아파트로 들어온 우리는 변함없이 집으로 돌아오면 그릴을 했다. Pag에서 돌아온 방만구는 특산품 치즈를 사지 못한 것을 연신 안타까워하며 연기를 피웠다. 어느덧 아메리카 원주민처럼 붉게 탄 나는 여행이 끝나가는 것이 아쉬워 입맛을 잃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