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코로나로 인하여 끊어놓은 터키행 비행기 티켓이 취소되었다. 그것을 돈으로환불받는 대신 바우처로 받았는데 그 바우처의 사용기한이 올해 말까지였다. 여행할 좋은 핑계가 생겨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고 여행하기도 만만한 터키엘 가기로 했다.
터키 서부와 지중해는 이미 가봤었고, 관광객들도 너무 많고. 나는 터키중에서도 여러모로 동쪽 아나톨리아 지방이 끌리던 차, 아나톨리아의 중심지 앙카라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시리아, 이라크, 이란과 인접한 터키 동남부, 그리고 조지아와 인접한 동북부 지방을 돌아보기로 했다. 물론 세세하게 어디로 갈지는 특별히 계획하지 않고 일단 앙카라로 떠났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 좋은 것은 준비해야할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짐은 학생 가방만한 작은 백팩 하나면 충분하고 호텔도 예약없이 길 가다가 적당한 곳에 들어가서 자면 되니 홀가분하다. 앙카라에서 이틀 밤을 잤지만 나는 여기서 앙카라 관광정보를 쓰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앙카라를 떠나던 날 아침, 택시를 잡으려던 3분 남짓한 시간동안 벌어진 에피소드를 적으려고 한다.
앙카라에서 카파도키아로 떠나는 버스가 오전 11시에 있으므로 나는 10시경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해서 택시로 터미널에 가기로 했다.(기다리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늘 시간을빠듯하게 계산하는 경향이 있다.)여행중엔 왠만해선 택시를 안타지만 터키 리라화가 폭락하여 택시요금이 4천원 남짓 나온다는 호텔 직원의 얘기를 듣고 몇천원 아끼느라 아침부터 진을 빼느니... 하면서 택시를 타기로 했다.
조식을 먹는 내내 나는 창밖을 보며 지나가는 택시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생각이 많은 나는 구글맵으로 이 편에서 잡는 것이 좋을지, 건너 편에서 잡는 것이 좋을지를 검색하여 이 편에서 잡기로 했다. 그리고 빈 택시들이 평균 몇 분에 한 대 정도 오는지, 빈 택시는 승객이 잡기 좋도록 대략 보도쪽으로 달리는지도 세심하게 살펴봤다. 빈 택시가 전혀 안온다면 호텔 직원의 도움으로 콜택시를 불러야 하는 수 밖에 없다.
30분 넘게 관찰한 결과 대략 10분 정도 기다리면 적어도 택시 한 대 정도는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운이 좋으면 2,3 분 만에도 잡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평균치이지 내가 밖에 나갔을 때 마침 피치못할 사정으로 인해 20분을 기다려도 택시를 못잡을 확률도 있다. 밖에서 20분을 기다리다 택시를 못잡고 리셉션으로 다시 들어가 택시를 불러 달라고 했을 경우 운이 나쁘면 버스를 놓칠 수도 있을 것이고... 망설이다 그래도 밖으로 나가 빈 택시를 잡기로 결정했다. 어제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리셉션에 부탁하지 않았느냐 말이다. 내 신용카드가 없어 버스표 예약하는 것을 호텔직원의 신용카드로 결제했는데 말이 안통해서 손짓 발짓을 하느라 그 과정이 30분 넘게 걸렸다. 호텔 직원의 신용카드로 손님의 버스표를 결제하다니... 독일이었으면, 아니 한국이었어도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다. 그러니 또 신세를 질 순 없다.
조식을 마치고 보따리를 메고 호텔문을 열고 밖을 나왔는데... 어렵쇼 5초후에 빈 택시가 지나가는 거였다. 나는 얼른 손을 흔들어 택시를 불렀고 나를 본 택시 운전사는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정차하려고 했으나... 그것이 쉽지 않았다. 뒤에서 오는 두 칸 달린 긴 버스가 클랙숀을 무섭게 빵빵거리며 택시의 정차를 막었다. 흡사 갓 시집온 며느리를 무섭게 몰아대는 시어머니처럼. 택시는 어쩔 수 없이 경고등을 켜며 서행을 했고 나는 그 택시를 따라 잡기위해 10미터 정도 뛰었던 것 같다.
일은 그때 일어났다.어디서 모든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호텔 옆에 이발소가 하나 있다. 고급진 패션 이발소는 아니고 동네 할아버지들 이발해드리는 구수한 이발소인데 평소에 내가 지나갈때마다 '헬로' 하고 인사를 건네던 이발사 아저씨가 그 순간 가게를 뛰쳐나왔다. 아니, 어쩌면 그는 손님이 없어 계속 밖에 나와 앉아 있었을 수도 있다. 이발소옆옆에 작은 간이식당, 그러니까 내가 앙카라에 도착한 첫날 3천5백원짜리 석식을 하고 계산할 시 '스바시바'라고 인사를 해서 내가 '감사합니다' 라고 정정해준 간이식당 주인이 뛰쳐나왔다. 아니, 그 역시 그 시간에 손님이 없어 밖에 나와 있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와는 전혀 안면이 없는 그냥 지나가던 아저씨도 나를 쫒아오며 소리질렀다.
할라후라 룔룔 귤기리...
그림이 그려지는가? 빽빽한 4차선 도로에 버스가 빵빵거려 승객을 보고도 세우지 못한 노란 택시가 지나가고, 그 뒤를 배낭멘 여행객이 따라가고, 그 뒤로 마른 이발사와 뚱뚱한 식당주인, 그리고 지나가던 행인이 따라가며 소릴 지르는.
어째 이들은 이다지도 한가할 수가 있단 말인가. 한 여행객이 택시를 잡는 일이 길거리 사람들이 여럿 나서야 할 만큼 중차대한 일인가 말이다.
그들이 한결같이 소리지르며 하려고 했던 말은 맞은 편에 택시가 이쪽으로 오려고 대기중이니 뛰지말라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길 건너편에 정차중이던 택시 운전사도 빵빵거리며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르던 중이었다.
굘 기리기리 울라찻!
맞은편 택시 운전사는 노련한 운전사 답게 연이어 오는 차들을 요리조리 피해 재빨리 내 앞으로 왔다.
먼젓번 택시와 의리를 지키고 싶었으나 그래도 내 앞에 먼저 당도한 놈이 장땡이 아니겠는가. 나는 뛰어가는 것을 멈추고 내 앞으로 온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고 지나가다보니 내가 세운 택시는 아직도 경고등을 켜놓은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서있었다. 백미러로 본 그 택시의 깜빡임은 내가 터키에서 목격한 가장 안타까운 장면중 하나였다.
터키의 노란 택시. 내용과 상관없는 택시임. 후에 이 글을 쓰면서 참고자료로 쓰고자 다른 지방에서 찍었음.
터키의 이발소. 내용과는 상관없는 이발소임. 후에 참고자료로 쓰고자 다른 동네에서 찍었음. 터키에는 미용실보다 이발소가 훨씬 더 많음.
터미널까지 택시요금이 3유로 정도 나왔다. 3유로 벌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손님 한 명을 잡기 위해 피우던 담배를 끄고 소리를 지르고 클랙션을 울려대고 4차선을 가로질러 건너온 택시기사의 노력에 감복하여 나는 2유로의 팁을 더하여 총 5유로를 건넸다.
터키인들이 이렇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여유가 있다. 남의 일에 참견하기도 좋아하지만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도와주기도 잘하는 사람들이다.
3년전 카파도키아를 여행할 때, 하루는 총 15 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하이킹 하고자 길을 나섰다. 5킬로미터 정도 온 지점에서 지갑과 여권을 호텔에 두고온 것을 알았다. 가방속에 들어있는 500ml 물병이 충분하지 않을 것 같아 물을 한 병 더 사려고 가방을 열었다가 내가 지갑을 안들고온 것을 알았다. 좌판을 경영하던 할머니는 돈 필요없으니 물 그냥 가져가라며 물과 땅콩, 해바라기 씨앗 등을 챙겨주었다. 그 후에도 나는 십원 한 푼 없이 '헬로'하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넙죽넙죽 물과 과자, 카파도키아 와인을 얻어 먹었다. 15 킬로미터의 하이킹도 무사히 마쳤다.
처음에 터키를 여행할 땐 '헬로' 하고 말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대꾸도 안하고 지나갔다. 그들 모두를 내 돈을 바라는 삐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는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중 다수는 당신에 대한 호기심으로 다가오는 사람들도 많다. 심지어 영어도 한마디 못하면서 말을 거는데 코리안이라고 하면 웃으며 엄지척 해준다. 그뿐이다. 그래서 나는 거리에서 누군가가 "헬로' 하고 말을 걸면 나도 '헬로' 하고 웃으며 대답한다.
낯선 이에 대한 호기심과 바라는 것 없이 베풀줄 아닌 친절한 터키인들의 호의에 나는 자주 터키를 찾는다. 나의 터키인 친구 담라는 독일에서 태어난 터키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스무 살에 독일로 건너왔다. 담라는 고향에 대한 지독한 향수병 때문에 최소한 1년에 한 번은 엄마를 만나러 터키를 찾는다. 그러면서 내게 묻는다. 고향에 대한 향수병이 없느냐고. 그러면 나는 대답한다. 고향 대신 터키에 대한 향수병이 있다고. 그런 이유로 나 역시 정기적으로 터키엘 가야한다고.
PS. 나는 무사히 터미널에 도착하여 버스를 타고 카파도키아에 도착했는데 거기서 한 노마드를 만나게 된다. 그 노마드와 의도치 않게 같은 방을 쓴 얘기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