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가르치는 독일어는 초급 3단계(A1, A2, A3), 그리고 중급 2단계(B1, B2), 고급 2단계(C1, C2)를 거친다. 독일에서 체류비자나 영주권을 얻기 위해서는 중급 1단계인 B1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이 시험에 합격하지 않으면 비자나 영주권 발행이 보류된다. 많은 사람들은 B1를 통과한 후 독일어를 배우기를 멈추지만 취업을 위해서 필요한 경우라면 B2를 마치기도 한다. B1를 마치면 생활회화가 가능한 수준, 그리고 B2까지 마치면 신문 읽기나 이메일 쓰기가 가능하다. 실제로 B2에서는 이메일 쓰기를 가르친다.
그러나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배움에 대한 갈증도 다르고 생활환경도 다르다 보니 B2를 마친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비슷한 수준의 독일어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집에서 신문 읽기나 회사에서 이메일 쓰기를 부지런히 한 사람이라면 읽기와 쓰기 실력이 월등히 늘겠지만, 오랜 기간 읽기와 쓰기를 전혀 안 한 사람이라면 B2를 마치고도 간단한 편지조차도 독일어로 쓰기 어려울 정도다.
C1를 마치면 대학에 지원이 가능하다. 그래서 C1에서는 읽기와 쓰기, 쓰기 중에도 에세이(Aufsatz) 쓰기를 배운다. 에세이란 한 가지의 테마를 던져주고 테마에 맞게 서론, 본론, 결론에 맞춰서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글쓰기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독일말을 잘하더라도 상식이 부족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고 논리적으로 펼치는 능력이 부족하다면 C1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 힘들 수 있다.
C1의 말하기 수업은 한 가지 인용구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피력하는 능력을 중요하게 본다. 내가 지금까지 수업에서 받았던 Zitat(인용구)는 아래와 같다.
Sport ist Mord(스포츠는 살인이다)
Man darf den Tag nicht vor dem Abend loben(성급하게 칭찬해서는 안된다)
Orthorexie oder Magersucht(오토렉시 혹은 마른몸 중독)
이렇게 시험에서 주어진 주제에 대해서 파트너와 얘기를 펼쳐 나가야 하는데, 어떤 인용구 중에는 아무리 읽어봐도 도무지 해석이 안 되는 인용구도 있다. 시험문제를 받았는데 시험문제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면 그 얼마나 난감할까. 그럴 경우에 아무 생각이 안 난다고 가만히 있으면 점수를 받을 수 없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 인용구가 무슨 뜻인지 모른다면 점수가 조금 깎이더라도 대놓고 상대방에게 물어보기라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와 한국어 고급과정 말하기 시험을 본다고 하자. 시험문제에 인용구가 주어졌는데 그 말인즉슨,
개꼬리 삼 년 묵어도 황모 못된다.
라는 문장이 주어졌다고 보자. 그러면 분명 그 외국인은 황모라는 단어를 모를 것이다. 그러면 황모가 뭔지 스스로 추측해서 대화를 이끌어 가야 한다. 파트너 역시 황모가 뭔지 모른다면 둘이 힘을 합쳐 비슷하게라도 뜻을 추론해 내야 한다.
A "황모가 뭔지 아니?"
B "아니, 한국에서 8년 살았지만 그 단어는 들어본 적 없어."
A "난 황모가 그 어떤 털의 종류가 아닐까 생각해."
B "왜 그렇게 생각해?"
A "내가 1년 동안 한자공부를 좀 했거든. 한국어 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황은 노랑이고 모는 털이라는 뜻이야."
B 그럼 개꼬리 삼 년 묵어도 노란 털 못된다 라는 뜻인 건가? 노란 털을 가진 개도 있는데 이해가 안 되네..."
A "황모는 그 어떤 동물의 노란 꼬리일 것 같아. 개꼬리 보다 품질이 좋은."
B "노란 꼬리를 가진 동물? 사자나 호랑이?"
A "내 생각엔 개하고 등치가 비슷한 동물일 것 같아. 개와 비교우위가 될 수 있는 동물."
B "혹시 여우나 늑대 아닐까?"
A "내 생각도 그래. 여우꼬리로 목도리도 만들잖아. 개꼬리보다 쓰임새가 많아."
B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A 여우꼬리가 개꼬리 보다 비싸니까 개꼬리 3년 둬도 황모 못된다고 하는 거겠지?"
B 그럼 내가 추측하기에 그 속뜻은...
결과적으로 틀린 추측이긴 하지만 황모의 실마리를 잘 찾아내고 대화를 주도해간 A가 더 높은 점수를 받을 확률이 크다. 여기서 황모는 족제비 털이다. 위의 대화처럼 속담의 뜻을 백 퍼센트 모르더라도 둘이서 대화를 이끌어 가서 최대한 원뜻에 가깝게 해석해내야 한다. 속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시간이 있다면 예시까지 덧붙이면 더 좋다. 우리나라에도 그 비슷한 속담이 있다거나, 한국의 속담에는 우리나라에 비해 동물이 많이 등장한다든지. 그러므로 파트너를 잘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상상력이 너무 없거나, 파트너의 독일어 악센트가 형편없어 알아듣기가 어렵거나, 둘의 독일어 실력이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면 말하기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한 사람이 계속해서 말하려고 한다면 적절한 시점에서 끊어내고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결단도 필요하다.
풍부한 어휘력과 빠른 읽기 실력 현란한 말하기 실력을 갖추었지만 의외로 쓰기에서 잼병인 사람도 있다. 사실 독일에서 살면서 학교를 다니지 않는 이상 주어진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보는 훈련을 하는 외국인은 거의 없다. 글쓰기는 심지어 글쓰기를 해보지 않은 독일인에게도 어렵게 느껴진다. 잘 쓰기 위해서는 자주 쓰는 습관을 들이는 수밖에 없다. 나는 쓰기 연습을 하면서 아무리 많은 단어를 알고 있더라도 적절한 상황에 맞는 단어를 써볼 버릇하는 훈련이 안돼 있다면 좋은 글쓰기를 할 수 없음을 매번 느낀다. 읽는 것과 쓰는 것은 아주 다른 일이다.
예를 들어 '보통'과 '일반적으로'라는 비슷한 어감의 단어가 있다. 뜻은 비슷하지만 문장에서 쓰임새가 다를 때도 있다. 외국인인 당신은 어휘력이 풍부해서 '보통'과 '일반적으로'라는 단어를 알고는 있지만 이것을 문장에 적용해서 써본 적은 없다. 그러면 아래와 같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사람들은 보통 열여섯 살이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열여섯 살이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할 수 있습니다.
--> 뜻이 비슷함.
나는 보통 일요일에 목욕탕에 간다.
나는 일반적으로 일요일에 목욕탕에 간다.
--> 두 번째 문장의 뜻이 조금 이상함. 일반적으로는 구어체에서는 잘 쓰이지 않음.
이러한 작은 차이를 알고 쓰임새에 맞춰 쓰는 훈련을 해야 한다. 내가 에세이 쓰기를 마치고 방만구 씨에게 검사를 받을라 치면 그는 자주 이런 말을 한다. 왜 쉽게 쓸 수 있는 것을 어렵게 돌려서 쓰냐고. 그것은 내가 어렵게 쓰고자 해서가 아니라 독일어를 한국어 식으로 끼워 맞춰서 쓰는 버릇을 들여서 이다. 문장을 하나 쓰려고 앉아 있으면 일단 한국어식 문장이 머리에 떠오른다. 한국어식 문장을 독일어에 끼워 맞추어 쓰다 보니 독일인에게 내가 쓴 문장이 이상하게 읽히는 것이다. 마치 구글 번역기를 돌려서 번역해놓은 문장이 자연스럽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반복해서 쓰고 감을 익히는 수밖에 없다. 쓴 글은 반드시 독일어 선생님의 퇴고를 거쳐야 한다. 수정된 문장과 자신이 쓴 문장을 비교한 후 다음번엔 같은 실수를 줄여야 한다.
나는 독일어로 좋은 글을 쓰고 싶어서 최근에는 신문기사를 베껴 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읽을 때엔 그냥 스쳐 지나가는 문장도 한 번 써보면 문장의 구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잘 머리에 들어와 박힌다. 좋은 문장엔 반드시 밑줄을 친다. 다음에 써먹을 수 있도록.
한국어로 글쓰기를 좋아하는 만큼이나 독일어로도 글쓰기를 좋아한다. 나는 읽기와 문법은 약한 반면 쓰기에는 강해서 매번 숙제를 제출할 때마다 좋은 점수를 받는 편이다. 글쓰기 숙제가 주어지면 나는 서너 시간이고 책상에 앉아 글을 써내려 가고 수정한다. 좋아하는 만큼 실력도 늘면 좋으련만 A4용지 한 장 분량의 에세이를 쓰고 수정하는데 아직도 서너 시간이나 걸린다. 글쓰기 훈련을 많이 하다보면 머릿속으로 문장을 만드는 시간도 빨라져서 말하기 실력도 좋아진다. 뿐만아니라 양질의 독일어를 구사할 수 있다.
아래에 내가 덧붙인 글은 어제 쓴 글쓰기 숙제이다. 주제는 '늘어가는 백세 인구'. 아래의 그래프를 보고 그래프를 분석하고 나의 의견을 덧붙이는 과정을 통해 나는 하나의 글쓰기를 마쳤다. 혹시 C1 에세이 쓰기에 관심이 있는 분이 계실까 싶어 내가 쓴 글을 올려본다.
Die Grafik gibt Auskunft über die zunehmende Zahl der Hundertjährigen im Zeitraum zwischen1980 und 2037.
Der Grafik zufolge war die Zahl der Hundertjährigen im Jahr 1980 nur 975 und diese Zahl wird 2037 voraussichtlich auf 140.000 steigen. Also die Zahl zeigt, dass das Wachstum der Hundertjährigen innerhalb von 57 Jahren sich verfünfzehnfachen wird. Besonders auffällig ist, dass sich dieses Wachstum zwischen 2017 und 2037 beschleunigt. Woran liegt diese Tendenz? Folgende Gründe kann ich darlegen.
Der wichtigste Grund dafür ist, dass die Überlebensquote von einer Krankheit oder Seuche durch die Entwicklung der Pharmaindustrie und Medizintechnik sich erhöht. Einige Krankheiten, die in den 80er Jahren unheilbar waren, sind heutzutage heilbar wie z.B. AIDS, Tuberkulose. Dank der Früherkennungsuntersuchung kann man sogar den Krebs frühzeitig besiegen. Schnelle Erfindung der Impfung hat die Anzahl der Sterblichkeit gesenkt. Also hat dies das längere Leben des Menschen garantiert.
Der nächste wichtige Punkt ist unsere verbesserte Lebensqualität. Die Fortschritte der Technologie hat unser Leben ohne schwere körperliche Arbeit realisiert. Man braucht nun nicht mehr unter der schweren körperlichen Arbeit zu leiden und durch maschinelle Arbeit ist die Zahl der Arbeitsunfälle gesunken.
Ich habe oben erwähnt, dass zwischen 2017 und 2037 die Zahl der Hundertjährigen deutlich zunehmen wird. Hier spielt 'Krieg' eine wichtige Rolle. Nach dem zweiten Weltkrieg herrscht in West-Europa seit 80 Jahren Frieden. Das ist die längste Friedenszeit in europäischer Geschichte. Während der 80 Jahre entwickelte sich die Wirtschaft und Technologie und diese schenkt Menschen Wohlfahrt und verlängertes Leben.
Zum Schluss möchte ich äußern, dass die ständig zunehmende Zahl der Hundertjährigen zahlreiche soziale und wirtschaftliche Folgen hervorruft. Unsere Gesellschaft braucht mehr Pflegekräfte, die Berufstätigen sollen einen höheren Pflegeversicherungsbeitrag übernehmen, darüber hinaus der Renteneintrittsalter wird vielleicht von 67 Jahren auf 70 Jahre erhöht. Ich kann vermuten, dass das durchschnittliche Alter unserer Gesellschaft im Jahr 2037 über 50 Jahre wäre. Es wird nicht mehr lange dauern, bis die 50-Jährigen als Jugendgeneration bezeichnet wer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