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같은 자리에서 한 거지가 동냥을 하고 앉아 있었다. 내가 한 때 제 집 드나들 듯 다녔던 포르투갈 식 카페 가는 길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리를 뜨지 않고. 그런 그의 모습이 일종의 거리의 풍경이 되었을 무렵, 나는 뜻하지 않게 50센트짜리 동전 하나를 그의 밥통에다 던져 넣었다. 수백 번 그 앞을 지나 다녔으나 그 거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내가. 그렇게 동전을 던져 넣고 '고맙다'는 말을 듣고 나니 비로소 그의 행색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그 의상 그대로 입고 월마트 고객 서비스 센터에서 일해도 될 만큼 복장이 깔끔했다. 나이는 20대 중반으로 젊고 패기까지 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건강해는 보였다. 금발에 175 정도의 키, 서글서글한 파란 눈. 이렇게 거지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외모를 가진 그가 사는 곳은 교외 열차가 10분 간격으로 지나다니는 철교 밑이다. 어쩌다 자리를 비울 때도 있었지만 그는 웬만하면 자리를 지키는 것 같았다. 재산도 꽤 된다. 우선 누런 세빠뜨 잡종 개 한 마리, 매트리스, 배낭, 침낭, 그 주위를 장식하는 여러 가지 장식품들, 말하자면 꽃과 꽃병, 숟가락, 포크 등을 꽂는 예쁜 컵, 개 사진이 담긴 액자 등... 게다가 취미생활을 하는 도구인 스케치북과 여러 종류의 연필, 파스텔까지 구비되어있다. 거지로서 적지 않은 그의 재산이다 싶었는데도 재산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갔다. 난 이 거지에 대한 인간적인 궁금증이 폭발하여 카페로 가는 발길을 돌려 그와 인터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충동적으로 그에게 인터뷰를 제의했다. 혹시 나의 제의를 거절하면 어쩌나 걱정스러웠지만 그는 흔쾌히 수락하였다. 길거리는 인터뷰 장소로 적합하지 않으니 인근의 카페로 가자고 했더니 그는 자기가 자리에 없으면 수입이 떨어지고 재산상의 손실(누군가 물건을 훔쳐가기도 하는 모양)이 생길 수 있으니 짧게 인터뷰를 끝내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그의 요청을 수락했다.
이름은?
보리스.
가족관계는?
하이델베르크에 엄마와 누나 하나가 산다. 아빠는 이혼하셨는데 연락이 안 닿은 지 오래됐다.
가족들의 삶은 어떤가? 내 말은 식구들이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산다던가...
다 보통 가정을 꾸리고 산다. 누나는 두 번 이혼해서 지금 흑인이랑 산다. 조카가 넷인데 각각 아버지가 다르다. 그게 비정상적인 거라면 모르겠지만 다들 남들처럼 산다.
언제부터 집 나와서 살았나?
고등학교 중퇴하면서 주기적으로 집을 나왔는데 마지막에는 아주 나와버렸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집에서 살기가 너무 답답해서.
학교 중퇴 후 하이델베르크에서 이곳 함부르크까지 오는데 그렇게 오래 걸렸나?
독일에서만 산 것이 아니다. 독일은 밖에서 살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다. 우선 날씨가 춥고 비가 자주 와서. 그래서 스페인으로 가서 몇 년 살았다. 거긴 날씨도 따뜻해서 겨울나기도 좋고 물가도 그다지 비싸지 않았는데 어느 땐가 경찰들이 외국에서 온 떠돌이들을 국경 밖 프랑스로 다 내쫓아 버렸다. 그 이후로 프랑스에서 오래 살았다. 스페인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랑 우연히 프랑스를 떠돌다가 빈 집을 발견하게 됐는데 쫓겨나기 전까지 거기서 2,3년 살았던 것 같다.
영어는 어디에서 배웠나?(그는 영어가 편하면 영어로 대답해줄 수도 있다고 했다)
다니면서 사람들이랑 어울리면서 배웠다. 학교에서 배운건 아니다. 영어는 대화하기에 무리가 없고 불어와 스페인어도 프랑스에서 살면서 많이 배웠지만 꽤 많이 잊어버렸다. 그리고 독일어는 모국어이니 4개 국어 하는 셈이다.
집에서 보리스 씨가 이러고 사는 걸 알고 있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사는 게 별로 부끄럽지 않다. 남들은 구걸이라고 하지만 나는 당당하게 돈 버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다른 사람한테 돈 달라고 한 적이 없다. 우리 식구한테 손 벌 린 적 없고 지나가는 사람들 한테도 돈 달라고 구걸하지 않는다.(그러고 보니 그의 거처에 돈을 구걸하는 안내문이 없었다.) 사람들이 봐서 주고 싶으면 주고 안 주고 싶으면 안 주면 된다.
이 생활 청산하고 노동청에서 나오는 실업급여만 받아도 잘 살 수 있지 않나? 노동청에서 건강보험료와 연금, 생활비, 집세가 다 나오는 걸로 아는데.
나도 안다. 하지만 실업기금 받으려고 시청에 찾아가서 사람들한테 구걸하기도 싫고 그 사람들이 나를 보는 눈초리도 싫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나? 지금 내 삶에 만족하기 때문에 내 삶이 여기서 변하는 게 싫다.
여기서 몇 년 살았나?
경찰이나 공무원이 철거하라고 하지 않나? 여기서 사는 거 사실 불법일 텐데.
여기서 1년 정도 살았다. 처음 몇 달 살았을 때 경찰이 와서 철거하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이 동네에 마당발이다. 아는 사람도 많고 돈 주고 가는 사람도 많다. 그 사람들이 다 나를 위해 서명을 해줬다. (갑자기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며) 나 여기서 살게 해 달라고. 서명 인원이 100명이 넘었던 걸로 안다. 그 이후로 여기서 아무 저지받지 않고 살게 되었다.
사실 아는 사람이 많긴 많았다. 내가 잠시 서있는 동안 1분 꼴로 한 명씩 아는 사람이 찾아왔다. 인사를 건네는 뿐만 아니라 인근의 터키 식당의 요리사는 물 한 병을 건네주고 가기도 했다.
이렇게 하루 종일 앉아있으면 하루에 얼마나 버나?
대중없다. 내가 자리 지키고 앉아 있으면 자리에 없을 때 보다 훨씬 수입이 많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자리를 안 떠나려고 한다. 겨울이 여름보다 수입이 많다. 특히 크리스마스랑 연말에 수입이 제일 많다. 한 번은 한 할머니가 50유로 지폐를 넣어 주고 가신 적도 있다. 평소엔 하루 30유로 정도 수입이 있다.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는가?
많다. 거리에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나한테 말을 거는데 그 사람들 중에는 자기가 살고 있는 집에 들어와서 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근데 대부분 나는 그런 호의를 거절한다. 왜냐하면 안 좋은 기억이 너무 많기 때문에.
안 좋았던 경험들을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나?
한 번은 남자 하나가 나한테 제의하길 자기 여자 친구랑 헤어졌으니 집에 와서 살라고 했다. 때마침 너무 추워서 그 집에 들어가 서 살긴 살았는데... 처음엔 옷 갈아입으라고 자기 옷까지 주면서 잘해주다가 시간이 지나니까 잔소리가 심해졌다. 문 꼭 닫고 다녀라, 그릇은 먹은 직후 씻어놔라, 샤워타월은 쓰고 난 후 꼭 어째라... 기분이 상해있는데 나갔다는 여자 친구가 일주일인가 지난 후에 다시 돌아왔다. 그 남자도 그 틈을 타서 나보고 나가라고 하더라. 그 이후에도 몇 번 그런 제의를 받은 적이 있지만 사람들이 한순간의 동정심으로 나보고 들어와 살라고 하는 걸 알기 때문에 이제는 웬만하면 그런 호의는 거절하는 편이다. 서로가 불편하다.
이 일 이외에 돈벌이를 해본 적이 있나?
직업을 가져본 적이 딱 한 번 있다. 20대 초반에 실업기금 신청하려고 시청에 갔었는데 나보고 일하라고 일자리를 소개해줬다. 거기가 분식점 청소하는 일이었는데 하루 일하고 더 이상 못해서 나왔다. 그 이후로 시청에 실업기금 달라고 찾아간 적이 없다.
여자 친구는 있는가?
돈 들어서 웬만하면 피한다.(웃음) 나는 게이다. 내가 이러고 있으니까 하룻밤 제의하는 사람들이 많이 온다. 어렸을 땐 돈 벌려고 응했는데 지금은 그런 일 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남자 친구가 있고 그 친구가 가끔 용돈을 주기도 한다. 그 외의 수입은 없다.
길거리에서 생활하면서 게이가 된 것인가 아니면 그 전부터 게이였나?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길거리에서 살지만 몸 팔아 돈 벌지는 않는다. 내가 이러고 살아도 보시다시피 술 마시지 않는다. 얼굴을 보면 알겠지만 마약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않는다. 그런 것들에 중독되는 순간 나는 술과 마약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중독자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술 마시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대신 나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그림 그리기인데 내가 길거리에서 이것저것 보이는 데로 그림 그린 걸 좋아한다. 한 번은 어떤 아저씨가 내 스케치북을 보더니 주기적으로 스케치북과 그림 그릴 재료들을 갖다 주신다. 잘 그리지는 않지만 그림 그리는 것이 재미있다.
돈 벌러 가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모자에 든 내 돈을 훔쳐가기도 한다.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웠다. 미안하지만 그럼 이만 가보겠다.
짧은 시간이지만 새로운 형태의 삶을 접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대화에 응해줘서 고맙다. 그럼 돈 많이 벌고 건강하길 빌겠다.
보리스는 인터뷰가 있고 난 후에도 꽤 오랫동안 다리 밑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호의를 베푸느라 그에게 방을 하나 제공했을지, 아니면 다시 날씨가 따뜻한 스페인으로 돌아갔을지 모르겠다.
보리스를 보면서 우리나라와 다른 형태의 거지를 보게 되었다. 생계형 거지가 아닌 선택형 거지. 보리스는 사업이 망하고 집안이 박살 나고 돈 벌려고 발버둥 치다 거지로 전락한 생계형 거지가 아니라 거지로서의 삶을 선택한 거지인 셈이다. 게다가 다리 밑 자기의 보금자리를 지키고자 100명의 서명을 받은 사람이나, 서명한 100명의 사람이나, 100개의 서명을 받았다고 거지를 거기에 살게 해 준 경찰이나. 다들 인간의 가치가 소중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이다.
보리스를 만난 후 거지도 하나의 선택할 수 있는 삶의 형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 정부가 한 사람의 국민인 보리스가 거지로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배려해 주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