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세계를 유랑하는 이케아 직원

사람 부자, 인맥의 여왕!

by 오순이


여보, 토마스네 둘째는 올해로 몇 살이 되었지?


글쎄, 빈한테 한번 물어봐야겠는데?


그걸 왜 빈한테 물어봐, 토마스한테 물어봐야지.


걔가 상하이로 이사 간 뒤로 연락이 끊어졌어. 전화번호가 없잖아.


올리버는 지금 어디 산대? 아직 싱가포르에 사나?


저번에 일본인 여자 친구하고 모임에 나온 걸 보면 일본에 사는 것 같기도 하고. 빈한테 물어봐야겠다.


그걸 왜 빈한테 물어봐? 올리한테 물어봐야지.


올리는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살아서 연락처를 몰라.


프랑스 남자하고 결혼한다던 제니는?


글쎄, 빈이 재작년 여름엔가 결혼식에 초대받았다고 낭트로 가는 것 같던데 나야 모르지, 걔가 미국 사는지 프랑스에 사는지. 빈한테 물어봐야지.


그것도 빈한테 물어보니? 제니가 학교 다닐 때 당신네 반이었다며.


그렇긴 한데, 제니가 빈 절친이잖아.


빈, 알파벳으로 Vihn, 독일 태생, 부모님은 중국계 베트남인. 방만구 씨 친구 중 최고의 인맥을 자랑하는 여자이며 방만구 씨의 베이징 대학 어학연수 동기. 앞에 등장하는 토마스, 올리, 제니 등도 20년이 넘게 우리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데 빈을 포함한 이들 모두는 직업형 노마드라서 거처가 일정치 않다. 만날 때마다 연락처가 바뀐다. 빈을 제외한 나머지는 인맥을 알뜰히 관리하는 사람들이 아니므로 빈이 없으면 서로에게 연락할 길이 없다. 해서 우리 모두의 중심에는 빈이 있다. 우리들은 평소엔 모두 남남처럼 살아가다가 빈이 호출을 할 때만 한자리에 모여 친구가 된다. 누가 결혼을 했고, 애를 낳았고, 여자 친구가 떠났고 이런 뉴스들은 모두 빈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다.


뿐만 아니다.


빌게 아들이 어느 중학교 들어갔는지 알아? 미나(내 딸)랑 같은 중학교 들어갔을까?


글쎄, 빈한테 물어봐야겠는데. 빌게 못 본 지도 꽤 돼서.


이웃사람 근황을 왜 빈한테 물어봐.


빌게 전화번호가 없어서 그래. 빌게 전화번호를 빈한테 물어봐야겠다.


빌게는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사는 우리 동네 사람이고, 몽고 사람, 빈과 대학 동기다. 독일 여자와 결혼해서 애 둘을 키우고 사는데 그 집 첫째 아들이 우리 미나와 나이가 같아서 종종 만나서 밥도 먹고 연말에 불꽃놀이도 함께 한다. 단, 빈이 오는 날에만. 우리는 빵집에서 만나도, 빌게 안녕? 축구는 잘하고 있어? 하고 겉치레 인사만 하고 헤어질 뿐이다. 이웃사람 안부를 밀라노에 사는 빈한테 물어보다니.




우리가 빈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1999년 베이징 대학에서였다.


나는 결혼을 앞두고 중국서 공부하는 방만구 씨를 방문하여 그와 6개월동안 함께 살았다. 딱히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심심풀이로 바이올린을 배우러 다녔다. 오라는 사람도 없는데 일주일에 두어 번씩 칭화대학교에 등교하여 춤도 배우고 혼자 피아노 연습도 하였고. 당시 내가 수시로 드나들었던 베이징 대학, 칭화 대학은 일반인들에게 많이 개방되어있어 대학내에 노점상, 자전거 수리센터 등이 있었고 일반인들이 춤도 배울 수도 있었다. 그렇게 빈둥거리다가 막판에는 너무나 심심하여 주리를 틀던 나머지 중편소설까지 한 편 끄적거려 탈고했다. 사람은 심심해지면 딴짓을 하게 마련이고 그 결과물로 의외의 창작물이 탄생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요즘은 스마트폰 때문에 심심해지기가 참 힘든 세상이 되었지만...


이렇게 내 인생에서 제일 한가하던 시절에 만났던 사람이 빈이었다.




나는 북경대생도 아니면서 앞에 북경대학이라고 큼지막히 쓰인 후드티를 즐겨 입고 다녔음. 저 후드티는 베이징 대학 노점에서 구입. 참 까분다.




얼큰하게 취한 빈과 나. 올리버의 생일파티에서.





당시 빈에게 나는 한 다리 걸쳐서 아는 사이, 학교 동기도 아니고 동기의 여자 친구, 한국 여자, 독일말 못 하는 사람 정도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공통점이라곤 하나도 없는 내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우리는 빨리 친구가 되었다.


1999년 겨울, 우리가 함께 베이징 실크 마켓에 가서 모조품 나이키 파카를 2만 원에 사고 본전 뽑았다고 기뻐했을 제. 그 2만 원짜리를 집에 가져와 입어 봤더니 오리털이 어찌나 눈처럼 날리는지... 빈의 기숙사 방에서 실밥 사이로 삐져나온 오리털들을 뽑으며 우리는 함께 분노를 나눴다. 게다가 실크 마켓에서 거슬러 받은 지폐조차 가짜인 것이 (당시 실크 마켓에선 공공연히 가짜 지폐가 유통되었으며 상인들은 가짜 지폐를 주고도 모른 척 받고도 모른척했다) 밝혀져 이것을 써없앨 궁리도 같이했다. 중식당에서 차오면을 먹고 슬쩍 그 가짜 지폐로 지불하고도 들키지 않았을 땐 어찌나 좋아서 히히닥거렸던지... 영어도 그다지 유창하지 않았던 내가 내 친구도 아니고 남편의 학교 동기와 어떻게 그렇게 친하게 지낼 수 있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나에게는 친구가 빈 하나였지만 빈에게는 나 같은 친구가 수두룩했다. 빈한테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연까지도 붙들어 매는 재주가 있었기에. 친구가 많은 건 옛날부터 알고 있었지만 빈의 결혼식에 갔다가 정말이지 인맥의 진수를 확인하였다. 내가 모르는 외국사람이 아주 득시글 했다. 게다가 20년 동안 연락이 끊긴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한 중국 시절 친구들도 많이 모였다. 다른 대륙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친구들도 꽤 있었고. 그동안 우리가 허투루 버렸던 인연들을 빈은 계속 잡고 있었던 거였다.



빈의 결혼식 파티에서. 앞에 병나발 부는 이 나, 젖가슴 쓰고 있는 사람 방만구,그 옆에 올리버, 핑크색 가발 빈. 맨 앞에 얼떨떨하게 서있는 애가 내딸 미나.





빈은 워낙에 여행을 좋아한다. 베이징에서 살 때도 틈날 때마다 늘 어디론가 떠났다. 베이징에서 베트남 호찌민 시티까지 기차를 타고 간 적도 있었고 말을 타고 싶다며 내몽고에 간 적도 있었다. 그중 이해할 수 없는 행선지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한겨울에 하얼빈행이었다. 하얼빈이 겨울에는 영하 30도까지 내려간단다. 그 추위 속에 하얼빈에 간 이유가 동물원을 구경하기 위해서. 빈 말로는 그 동물원에서는 손님들을 위해 이벤트를 하는데 그중 화제성있는 것이 호랑이 우리에 소를 산채로 넣어 잡아먹게 하는 이벤트란다. 그게 얼토당토않은 소문인지 아니면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빈은 하여튼 겨울에 호랑이를 본다며 하얼빈으로 떠났다. 그걸 봤는지 못 봤는지는 모름.


이렇게 여행을 좋아하는 빈이 지속적으로 옮겨 다니면서 살 수 있는 자기한테 안성맞춤인 직장엘 들어갔다.


이케아.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이케아에 입사했다. 아마 18년인가 거기서 근속하고 있는 걸로 안다. 이케아 프랑크푸르트를 시작으로 모스크바, 취리히를 찍고 현재는 밀라노에서 일하고 있다. 밀라노에 가게된 것도 사실은 인맥덕분이다. 세미나에서 만난 한 독일인 매니저의 추천으로 밀라노로 가게되었으니. 밀라노에서 제대로 일한 건 며칠 되지도 않는다. 2월엔가 취리히에서 밀라노로 이사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활극처럼 밀라노를 탈출하였다. 그후 프랑크푸르트에서 3개월 정도 재택근무를 하다 얼마 전에 돌아갔으니 지금 한창 적응 중일 것이다.


아참, 빈은 2014년 이케아가 한국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한국 이케아에 지원서를 낸 것으로 안다. 여러 조건이 맞지 않아 한국엘 가지 못했는데 한국행 불발 소식을 듣고 내가 많이 아쉬워했다. 빈이 한국에 갔다면 홍어를 먹여줄 기회가 있었을 텐데... 동대문 새벽시장에서 천을 떠다가 식탁보도 만들고,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개불도 보여주고. 뭐 나 아니어도 같이 구경 다닐 사람이 넘쳐나겠지만...


이렇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노마드처럼 살고 있지만 빈의 본부석은 프랑크푸르트이다. 어디를 가서 일하더라도 프랑크푸르트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들른다. 그런 이유로 프랑크푸르트의 비싼 아파트 월세를 내면서도 방을 빼지 않고 있다. 코로나 시기에 석 달을 여기서 보낸 셈이라 우린 그간 뜸하게나마 만났다. 지난주 일요일엔 만두를 만들어 먹을까 싶어서 방만구 씨한테 말했다.


여보, 오늘 만두 만들건데 빈한테 오라고 해서 같이 먹을까?


잠깐만, 내가 한 번 왓쯔 엡 보내볼게.


어떻게? 온대?


지금 베로나에 있대.


지난 주말엔 뒤셀도르프에 있다더니 또 언제 베로나엘... 코로나 때문에 난린데 거기는 또 왜 갔대?


나야 모르지.





나는 살아가면서 저 사람을 친구로 해야지 해서 공을 들여 친구를 사귀고 사귄 친구들을 관리하는 타입이 못된다. 나는 혼밥 혼술 혼등을 좋아하고 외로움을 타지 않는 편이라 그런지 내쪽에서 능동적으로 연락해서 친구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친구관계에서 수동적으로 찍힘을 당하는 편인데, 그나마 그렇게 연락이 오는 친구들 중에서도 내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 대부분 떨어져 나가기 일쑤라 친구가 별로 없다. 그런 내가 빈을 20년 이상 만나오고 있는 이유가 뭔지 생각해봤다.


사생활에 대해 별로 참견하지 않는 가벼운 관계.


나는 빈을 자주 만나는 편이지만 빈이 이케아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그저 부동산 관련 일이라고만 알고 있다) 얼마를 버는지 잘 모른다. 우리는 서로의 근황 정도는 알고 지내지만 만나면 돈 얘기, 자산 얘기(나는 자산이 없음), 자식 얘기(빈은 자식이 없음), 남편 욕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우리의 주된 화제는 사생활과는 그다지 관계없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음식이다. 태국 카레와 인도 카레의 다른 점, 아프리카의 감자 맛 나는 구황작물, 중국 노점 음식 랭피의 첨가물 등. 나는 빈의 남편 케빈이 무슨 일을 하는지 조차 모른다. 아, 그러고 보니 심지어 빈이 몇 살인지 케빈이 몇 살인지도 모르는구나. 그저 나보다 5살정도 어리겠거니 하고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의 관계는 아주 가볍다. 오면 오나, 가면 가나하고 서로 간에 간섭이 없다. 빈이 최근 10년 사이 살이 꽤 쪘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반대로 애를 낳고 나서 흙빛으로 변한 나의 얼굴색이나 반백이 된 나의 머리카락에 대해서도 빈은 관리 좀 하라거나 염색 좀 하라는 등의 흔한 타박을 하지 않았다. 부담없이 가벼운 관계다.


가벼운 관계는 손님치레를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빈네 가보면 집이 정리정돈되어있다거나 손님 접대용으로 거하게 음식을 차려놓는 일이 없다. 살던 집에 먹던 밥에 숟가락 하나 올려두는 걸로 손님맞이 끝이다. 손님이 왔는데 책꽂이에 먼지 쌓인 것도 털질 않는다. 나였다면 손님이 온다면 종일 닦고 쓸고 했을 텐데 빈한테는 그런 것이 없다. 그런데 그것이 지저분하다거나 성의가 없어 보이지 않는다. 사는 모습이 다 그렇지 뭐. 나도 빈을 우리 집에 초대하면 대접받은 대로 청소도 안 하고 음식도 대충 우리 먹는 대로 숟가락만 올려서 대접하면 되니까 갑자기 들이닥쳐도 부담이 없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생각이 난다. 20년 전에. 방만구 씨와 내가 대학 기숙사에 살 때, 거실 없이 작은 방 두 칸에 작은 부엌이 딸린 28평방미터 기숙사에서였다. 지금은 빈의 남편이 된 케빈이 운전해서 빈, 올리, 토마스와 슬리핑 백을 싣고 우리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나는 설마 얘들이 이렇게 비좁은 기숙사에서 자고 갈까 싶었는데 진짜 자고 갔다. 요가매트와 침낭을 가져와서 바닥에 누워서 자고 갔다. 학생 기숙사의 카펫 깔린 바닥이란 것은 몇 년 묵은 썩은 오물의 집합소다. 그런 데서 6명이 2박 3일 동안 잤다. 요리는 주로 캐빈이 했는데, 그는 입에서 군내 날 정도로 얘기도 안 하고 앉았다가도 밥때만 되면 그렇게 요리를 도맡아 놓고 했다. 식당집 아들답게 남의 집 주방에서도 척척 물건도 잘 찾고 메뉴도 잘 골랐다. 묵묵히 요리하는 케빈을 보며 쟤는 무슨 죄로 여기까지 끌려와서 하꼬방같은 남의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을까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케빈은 나와 비슷한 부류라 빈만 아니라면 우리 같은 이런 인연을 오래 붙들고 있을 사람이 못된다.


케빈이 어떤 사람이냐면, 게임을 하다 문득 창밖을 봤는데 저 어슴푸레하게 빛나는 해가 지는 해인지 뜨는 해인지 분간을 못하는 사람, 좀 전에 본 것 같은 달이 어제 뜬 달이었는지 오늘 뜬 달이었는지 아리까리한 사람,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이 익숙한 방콕족. 그런 케빈이 빈 같은 여자를 만나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걸 보면 운명이란 게 있을 것도 같다. 그는 우리 집에 와서도 소파 한 구석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든지 묻는 말에 간간히 대답만 할 뿐이다. 넷이서 수다를 떨다가 빈이 나가버리면 나, 방만구, 케빈 이렇게 셋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뻘쭘해진다.


만나도 만나도 어쩌면 저렇게 다른 사람 둘이 만났는지 이해가 안 된다.


나는 빈과 케빈이 20년째 별 탈 없이 같이 사는 게 수수게끼같아 한 번 상상해보았다. 아닌 것 같아보이지만 사실 빈은 많은 사람과 만나고 싶어하고 또 인연 맺은 모든 사람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그래서 인맥관리를 잘하는 여자하고 결혼한 건 아닐까 하고.


너 혹시 강의실에서 늘 퍼질러 자던 그 머리 큰 터키 애 연락처 알고 있니?


세닷 말하는 거야? 알지. 걔 학교 관두고 옷가게 점원으로 취직했다가 잉골슈타트 아웃렛 명품 매장 매니저 됐잖아. 최근에 소파 버릴 거라고, 누구 좀 가져갈 사람 없냐고 묻길래 내가 미리암하고 연결해줬지.


생선가게 딸 미리암? 아직 연락하니?


그럼. 걔는 싱글마마에 롱 타임 실업급여 수급자야. 사는 게 빠듯한지 아기 분유도 이베이에서 유통기한 임박한 50프로 세일하는 걸 사다 먹인대. 우리 가르다 호수로 여름휴가 같이 가기로 했어. 비용은 내가 내고.


미쳤니? 휴가를? 남편인 나는 어쩌고? 뜬금없이 젖먹이 데리고 휴가 가서 어쩌려고 그래?


뭐 어때, 내 주변 젖먹이들이 커서 얘가 마지막 남은 젖먹이 이야. 내가 또 언제 젖먹이랑 휴가를 보내겠니.


혹시 우리 고모부 연락돼?


당신 고모부 요즘 에리테리아 여자랑 같이 살아. 그 여자가 브레멘에서 아프리카 식당을 하는데 당신 고모부가 그집 단골이었다나봐. 요즘 둘이서 같이 장사하나 보던데? 우리 언제 한 번 고모부 여자친구랑 에리테리아 놀러갈까?


거기 아직 내전중일걸?


이상은 내가 상상해본 인맥의 부자 빈과 인맥의 빈자 케빈의 대화였다.




혹시 당신, 지금 누군가 찾는 사람이 있는가? 그러면 빈한테 한 번 연락을 해보시라. 당신이 찾는 그 사람 근황을 몇 다리 건너 빈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빈이 러시아에서 살 때 동료와 함께 찍은 사진. 진짜 이케아 카탈로그 아니고 이케아 표지모델 앱으로 찍은 사진이라고 함. 빈이 사진 올려도 된다고 허락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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