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은 보드게임 디자이너입니다

그 직종이 아직 멸종되지 않았나요?

by 오순이

나는 지금 한 아마추어 보드게임 디자이너에 대해 쓰려고 한다.


보드게임이 뭔지 아예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고, 안다 해도 그런 업종이 멸종되지 않고 남아있는지 궁금한 사람도 있겠다. 보드게임이 뭔가 하면, 게임의 룰을 정하고 게임판과 딱지, 주사위 등의 도구를 사용해서 하는 게임을 말한다. 고전적인 보드게임으로는 장기, 바둑, 체스, 윷놀이 등이 있다.


독일은 보드게임의 성지다. 옛날에 비해 그 인기가 사그라들긴 했지만 동네마다 아직도 존재하는 많은 보드 게이머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게임을 즐기기도 하고, 일 년에 몇 번씩 보드게임 박람회가 열리기도 한다. 백화점에서도 장난감을 판매하는 층에 가면 새로 쏟아져 나온 신상 게임들이 소비자를 기다리고 있다. 컴퓨터 게임만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수요가 아직 있다 보니 당연히 보드게임 디자이너는 멸종되지 않았다.


나의 남편 방만구 씨는 열혈 보드 게이머이자 아마추어 디자이너이다.


그는 보드게임 중에서도 게임 룰이 복잡해서 소수의 마니아 층만이 즐기는 워게임 마니아다. 방만구 씨가 워게임에 관심이 많은 것은 그가 전쟁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수많은 전쟁영화와 서적을 섭렵한 것은 물론이고 유럽에서 전쟁이 치열했던 곳도 시간을 내서 방문한다. 1차대전 살육의 현장인 프랑스의 베르덩,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노르망디를 가보았고, 네덜란드에서 2차 대전의 흔적을 느끼기 위해 Arnheim의 다리에 가본 적도 있다.


22 Longue Battery V.JPG 2013년 여름, 노르망디에서.


전쟁을 소재로 한 워게임은 원래 일반인 게임용이 아니라 전쟁시 시뮬레이션을 위해 군에서 처음으로 만들었다. 프로이센(현재의 독일땅, 1525-1947)의 한 장군이 시뮬레이션 용으로 워게임을 만들어 병사들에게 설명했는데 이것이 워게임의 시초라는 얘기가 전해오고, 미국에서도 CIA 에서 워게임을 만들어 시험했다는 설이 있다. 모두 방만구 씨한테 들은 얘기다. 워게임은 룰이 북잡해 가이드 북만 단편소설 정도의 규모다. 가이드 북을 읽고 게임룰을 설명하는데만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게임도 수두룩 하다. 그러니 엉덩이가 가볍고 인내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워게임은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워게임에서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게임도구는 작은 딱지류이다. 딱지에 총, 칼 등 전쟁연장이 그려져 있고 이것들을 가지고 진격을 하는 모양이다. 어른이 딱지를 가지고 노는 모습은 보드게임과 함께 성장하지 못한 내 눈엔 참 생소하게 보인다. 방만구 씨는 키 184센티미터에 몸무게 100킬로에 육박하고, 수염이 코와 입 주변을 덥수룩하게 덮고 있는 천상 남자 어른이다. 그런데 등치는 산만한 사람이 책상 앞에 웅크리고 앉아 뭔가를 웅얼거리며 손톱만 한 딱지들을 가지고 노는 모습. 선입견인지 몰라도 내 눈엔 참으로 쪼잔해 보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어린이 때부터 오십이 다돼가는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보드게임 덕후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 그가 소장하고 있는 보드게임만 100여 종이 넘고(이사할 때마다 많이 팔았음에도 불구) 다년간 일주일에 한 번씩 보드게임 모임에서 게임을 즐겨왔다.


그의 보드게임 사랑은 만들기로 이어졌다. 수년 전엔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춘추전국'이라는 워게임을 만들었다. 그는 전공이 중국학이라 중국 역사에 관심이 지대하다. 중국 역사 중에서도 전쟁의 정도가 가장 극심했던 춘추전국시대가 워게임 주제로 안성맞춤이라 느꼈던 모양. 시작은 일단 호기롭게 하였으나 달이 갈수록 그 규모가 방대해지고 규칙들도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친구들을 데리고 와 테스트를 해봤는데 총 게임시간이 네 시간 이상 걸리고 게임이 점점 산으로 가자 결국 그는 일 년 넘게 만들어온 '춘추전국' 프로젝트를 접었다.


한동안 잠잠한가 했더니 이번엔 베트남전을 소재로 워게임을 만들었다. 그는 게임 영감을 얻을 셈이었는지 풀 메탈 자켓과 플래툰을 여러 번 보았고 곧바로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보드게임 만들기에 착수했다. 그게 벌써 일 년 전이다. 성격이 워낙에 꼼꼼한 탓에 딱지들을 붙들고 1년을 씨름한 끝에 1주일 전에야 게임 만들기가 끝났다. 보드게임 제목? 모르겠다. 보드게임 룰? 도통 모른다. 나는 그의 게임 만드는 행위에만 관심이 있을 뿐 게임 자체에 관심이 없어서. 심지어 집에서 보드게임에 대해 입도 뻥끗하지 못하게 단속한다. 20년 동안 자행되어온 보드게임에 관한 일방적 컨버세이션에 지쳐서.


구경해보시라. 집에서 붙이고 자르고 해서 만든 그의 보드게임 딱지들을. 하트 2번 총든 병정 보이는가? 그가 직접 그렸다. 인터넷에서 베트콩 사진을 찾아 무단으로 복제하려다 혹시라도 출판사와 계약을 맺게 되면 저작권 논란이 생기지나 않을까 싶어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병정을 스스로 그렸다. 저거 그리는데 며칠 걸린 줄 안다. 꼼꼼한 그는 병정이 들고 있는 총도 대충 그리지 않고 진짜 베트남 전쟁에서 사용되었던 기종으로 그린다. 그는 전쟁 연장 전문가다. 총이라곤 따발총 밖에 모르는 나와 달리, 그는 탱크의 기종에서부터 총의 기종, 군인들의 유니폼까지 첫눈에 다 알아본다. 그러므로 이 딱지의 그림들은 패션에서부터 연장까지 역사적 고증을 거친 것들이다.



눈이 밝은 사람은 보았을 수도 있다. 딱지들의 모서리가 잘려나간 것을. 다 방만구 씨가 깎은 것이다. 왜 깎았는지는 후에 밝히는 걸로 하고.




karten3.jpg 직접 그릴 수 없는 것은 인터넷에서 이미지를 가져다 카드를 만듦.


보드게임이 완성되는 때맞춰 헤센주의 한 소도시 Braunfels에서 보드게임 박람회가 열렸다. 독일에서도 유명한 보드게임 박람회가 여러 곳 있지만 이곳 Braunfelds는 워게임 전문 박람회다. 그래서 세계 워게임 마니아들이 1년에 한 번씩 이 소도시로 몰려든다. 방만구 씨는 1주일 전부터 박람회가 열린다는 사실에 상기되어 보드게임을 수정해나가더니 오늘 아침 수정이 끝난 보드게임을 들고 보무도 당당하게 보드게임 박람회에 갔다. 그가 이 박람회에 간 이유는 여느 때처럼 새로 출시된 보드게임을 사거나 구경하려고 간 것이 아니다. 아마추어 보드게임 디자이너로서의 신고식을 이번 박람회에서 치르려고 간 것이다. 자기의 보드게임을 출판사에 선보임과 동시에 게이머들(소비자)의 피드백을 듣고 싶어서 간 거였다.


그는 출발하기 전 몇 번이고 내게 소규모 박람회 입장료가 60유로인(8만 원선) 것에 불만을 토로했다. 운영진에게 항의 메일을 쓸까 아니면 아예 안 갈까 고민하다가 내가 그까짓 돈은 문제가 안되니 가라고 등을 떠밀어 오늘 아침에 출발하게 된 것이다. 잘하고 있을지, 출판 계약은 맺었을지 궁금해하고 있던 찰나에 다음 사진이 Whats App으로 전송되었다. 아래와 같이 초라하지만 그래도 박람회 한 매점 구석에나마 테이블을 하나 얻어 그의 창조물들을 늘어놓은 모양이다.


정면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시라. 테스트하실 분 구함이라는 문구와 함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박람회에 도착하여 자기는 보드게임을 구경하러 온 사람이 아니라 직접 만든 상품을 프레젠테이션 하기 위해 온 디자이너라고 설명하니 입장료 없이 그냥 들여보내 줬단다. 평생 특혜 받는 삶을 살아온 적 없는 그는 디자이너라는 특혜를 받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외진 곳이긴 했지만 매점에 자기의 게임을 소개할 수 있는 테이블을 얻었다는 사실이 신이나 내게 전화를 했다.


"자리가 좀 외져서 드나드는 사람이 없는 게 좀 흠이긴 해도 내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테스트해줄 사람을 찾아다니는 중이야. 그러던 중에 한 미국 아저씨를 만났는데, 이 분이 하필 미국인 퇴역군인이지 않겠어? 잘됐다 싶어서 테스트 좀 해주겠냐고 했더니 베트남 전쟁은 아주 신물이 나서 게임이고 영화고 아예 보고 싶질 않다고 손사래를 치더라구."


계속해서 호객행위를 하던 중 몇 보드게임 출판업자도 만나 설명을 했고, 게이머들에게도 괜찮은 반응을 얻어냈단다. 계약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첫 술에 배부르랴. 그가 보잘것없는 가내수공업 핸드 메이드 보드 게임을 들고 보무도 당당하게 박람회를 찾았다는 자체가 내게는 너무나 대견하다.


방만구 씨를 보고 있자면 한 사람의 취미생활이 이렇게 인생을 풍족하게 해주는구나 싶다. 나는 20년 동안 살면서 그가 소파에 누워 비비적대거나 우두커니 앉아있는 모습을 단 한차례도 본 적이 없다. 머릿속에는 늘 바쁘게 어떤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그의 다음 프로젝트는 한국전쟁이 될 것이다. 한국전쟁에 대한 책을 읽고 유튜브 비디오를 골라보고, 딱지 디자인을 위해 밤늦도록 그림을 그리는 한편, 어떻게 하면 최대한 간단한 게임 룰로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까 궁리하느라 그의 뇌는 바쁘게 돌아가겠지.


이쯤에서 나는 손톱깎이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우리 집에는 3개의 손톱깎이가 있다. 첫째는 가족들이 사용하는 일반용, 둘째는 방만구 씨의 무좀 걸린 발톱깎이 용, 셋째는 보드게임 딱지의 모서리 깎이 용이다.


그는 대체로 퉁실한 등짝을 보인채로 책상 앞에 앉아 웅얼거리며 보드게임 딱지들을 만들고, 때론 만들어진 손톱만 한 보드게임 딱지들의 모서리를 손톱깎기로 깎아낸다. 모서리를 깎는 이유는 그 부분이 뾰족하면 만질수록 헤지기 때문이다. 모서리를 깎는 작업은 단조롭지만 오랜 시간을 요한다. 모든 딱지들은 네 개의 모서리를 가지고 있고 그런 딱지가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엉덩이가 무거운 방만구 씨는 몇 시간이고 앉아서 모서리 깎이를 불만 없이 해낸다.


아... 모서리 깎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불현듯 나는 출산과정에서 들렸던 그 모서리 깎는 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딱 딱 딱...


그는 내가 미나를 낳을 때도 딱지들을 수북이 챙겨 왔다. 여편네가 진통의 파도를 느끼며 고통에 몸부림 칠 동안 병실 모서리에 태연히 웅크리고 앉아 손톱깎기로 모서리를 깎아댔다.


아마 간호사들이 부인이 진통하고 있는데 남편이란 작자가 벌써 몇 시간째 손톱을 깎아 대는 거야! 하고 오해했을지 모를 일이다. 혹자는 서방 된 입장에서 부인의 진통을 나눠지지는 못할 망정 딱지나 깎고 있다고 방만구 씨를 나무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상관없다. 자기는 자기 일 하고 나는 내 일 하고. 어차피 진통은 나 혼자 겪어야 할 일. 옆에서 설레발치느니 아예 분만실에 들어오질 말거나, 우두커니 앉아있느니 딱지나 깎는 게 더 낫다.


2시간 반 진통 끝에 애가 나오는 바람에 할당된 딱지의 모서리를 다 깎진 못했지만.




테스터를 찾는다는 포스터. 이 핸드폰 번호는 현재 없는 번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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