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 그 두번째 : 사람이 자본주의를 만들다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사실 자본주의 사회와는 참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데요. 돈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20대에는 그랬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관심이 없었기보다 관심이 없을 수 밖에 없었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돈에 대해서 배워본 적도 없고, 돈이 무엇인지 체험을 해본 적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죠. 우리는 학교에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원론적인 이야기만 들을 뿐, 실제 삶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이 점이 참 불만입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데, 왜 학교에서는 자본주의가 뭔지 제대로 알려주지를 않을까요? 수요와 공급 같은 원론적인 이야기 말고, 예를 들면 은행에서 투자 상품을 만들어내는 원리, 어른들이 주식을 하다 실패하는 이유, 보험을 들 때 조심해야 될 것들 등에 대해서 말입니다.(이런 걸 알려줬으면 최소한 졸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저는 이과 출신이라 학교에서 원론적인 이야기조차도 못 들어 봤습니다.)
자본주의를 만들어낸 것은 인간입니다. 인간이 돈을 만들고, 회사도 만들고, 일도 하고, 소비도 합니다. 생산 주체도 인간이고 소비 주체도 인간인 것이죠. 그러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 이해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인간 이해를 왜 해야 하나고요? 돈을 벌기 위해섭니다. 돈을 벌려면 인간을 이해해야 합니다.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스스로 돈을 인쇄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돈을 주기 때문입니다. 왜 남의 돈 벌기가 어렵다고들 하죠? 정말 명언입니다. 다른 사람 주머니에 있는 돈을 나에게로 옮기려면 돈 그 자체보다는 그 돈을 쥐고 있는 타인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진로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며 이미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제 강의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십니다. 이미 취직을 하신 분들이기 때문이겠죠. 진로 강의 같은 것은 아직 취직을 못했거나 자기 꿈을 이제 생각하는 단계에 있는 청소년, 대학생들에게나 필요한 강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 강의를 듣다 보면 그들의 눈빛이 점점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하는 진로 강의는 심리 검사 좀 해서 자기 재능 찾고, 자기에게 잘 맞는 직업과 연결하는 정도의 강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진로를 인간관계로 풀어 설명합니다. 그래서 듣다 보면 직장인들은 이 강의가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강의를 다 듣고 나면 제가 상담을 하곤 합니다.(아이러니하게도 진로를 준비하는 사람보다 이미 직업을 가지신 분들이 질문을 다 많이 하십니다.)
직장인들의 고민을 듣다 보니 제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이 책을 보고 계신 분들 중에 직장인이시면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을 하기가 왜 힘드신가요? 정말 많은 직장인들이 저에게 일을 하면서 겪는 고충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치 누구의 직장이 가장 힘든가를 겨루는 대회라도 열린 것마냥, 점점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얼굴이 벌개지면서 자신의 직장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재능’ 혹은 ‘자신의 적성’ 등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회사를 다니기 힘든 이유는 비율상 열에 아홉은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유치하게 이야기하면 결국 ‘쟤 때문에 회사 다니기 싫어요’인 것이죠.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나랑 같이 면접을 봤는데, 두 세달 지나니까 사라진 입사 동기도 있고, 분명히 처음 디자인한 시안을 보고 마음에 안 든다고 했는데 안 버리고 갖고 있다가 여섯 번째 수정 때 다시 가지고 가면 내가 원했던 게 이런 거라고, 내 말대로 고치니까 얼마나 좋냐고 말하는 회사 부장님도 있습니다. 다른 부분은 정말 좋고 잘 대해주시는데, 점심만 먹으면 순대국 말고는 다른 걸 먹을 생각을 안 하시는 사장님도 있고, 나에게는 세상 친절한데 자기 회사로 돌아가면 여포로 변해 자기 직원들을 쥐 잡듯 하는 거래처 사장님도 있는 것이죠.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됩니다. 그 중에는 나와 잘 맞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죠.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회사라는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 때문입니다. 특히 취업을 처음 했을 경우에 이 충격이 대단히 큽니다. 회사를 취업하기 전, 우리가 맺게 되는 인간관계는 보통은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며 친밀해지기 위해 맺게 됩니다. 그러나 회사는 다르죠. 회사는 이윤 창출이라는 확고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회사에서 맺는 인간관계는 친밀감을 위해 맺어 왔던 기존의 방식과는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소위 말하는 ‘비즈니스적인 관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건강하게 지키는 방법에 대해 잘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회사에서 맺는 인간관계를 겪게 되면 회사는 그야말로 생지옥처럼 느껴집니다. 회사 사람들이 모두 내 마음에 어떻게든 상처를 입히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들로 보일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받게 되는 상처의 절반은 바로 이 회사라는 공동체의 특수성에서 나옵니다.(절반은 그냥 직장 내 사람들의 부적절한 언행에서 나오고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은 관계 문제로 스트레스를 크게 받습니다. 이 상태가 심각해지면 나중에는 인간관계 자체에 회의감을 가집니다. 사람을 안 만나는 게 편하고, 컴퓨터로 대화하는 게 편하고, 처음 보는 사람과 만나 서로 알아가고 대화를 하는 것을 매우 피곤해 하는 것이죠. 나는 정중하게 나의 의견을 피력했는데, 상대방은 내 의견은 안 듣고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며 서운해 합니다.
더 어려운 문제는 회사의 인간관계가 친구와의 인간관계와는 다르다 보니, 이런 식으로 관계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도대체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감이 잘 안 온다는 것입니다. 직장 상사가 내 친구였다면 시원하게 서로 욕하고 싸우다가도 술 한잔 하고 화해하면 그만인데, 아니면 극단적으로 그냥 연락을 안하고 안 만나면 그만인데, 직장 상사는 그럴 수조차 없습니다. 부서를 옮기거나 둘 중 하나가 회사를 그만 두지 않는 이상 죽으나 사나 만나야 하죠. 이를 어떡해야 한단 말입니까? 저와 직장을 가지고 상담하는 분들은 대부분 이런 문제를 들고 저를 찾아오십니다.
개인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사정이 좀 나을까요? 저는 오히려 더 심각한 것 같습니다. 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어필해야 하는데,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잘 할 수 있을지를 잘 모르는 것이죠. 회사를 다니는 분들은 규모가 어느 정도 된다면 마케팅을 담당하는 분들이 따로 있으니 그분들만 고민을 하면 되는데, 자기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이것도 자기 스스로 고민해야 합니다. 사업을 진행하며 고객은 물론이고 나의 사업을 도울 파트너들, 직원들까지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는데, 일일이 이 부분을 신경 쓴다는 것이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닙니다. 이런 고민들로 인해 밤잠을 설치는 분들을 참 많이 보았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은 결국 모두 인간 이해에서 오는 문제들입니다. 일을 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본주의는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모든 필요한 것을 자급자족 할 수 있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제도입니다. 돈은 교환 수단으로서 가치를 지니는데, 인간이 스스로 모든 것을 자급할 수 있는 존재였다면 돈도 필요 없었겠지요. 교환을 할 필요가 처음부터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못합니다. 누구는 옷을 잘 만들고, 누구는 농사를 지을 줄 압니다. 그런데 옷을 만드는 사람에게도 쌀이 필요하고,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도 옷은 필요한 거거든요. 자본주의는 이러한 단점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서로를 보완하기 위한 방편으로 만들어진 제도인 것입니다.
결국 돈을 번다는 것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 되는 겁니다. 아무리 혼자서 컴퓨터 화면만 보고 재택 근무를 하는 분이라고 할지라도, 그 일로 돈을 버는 이상 결국 그 분도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관계를 맺는 누군가가 그에게 돈을 주겠지요.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고, 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인간 이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야 일을 하면서 나를 지킬 수 있고, 타인도 해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돈은 버는데 고객에게 욕을 먹지도 않고, 고객은 만족하는데 나는 그만큼 돈을 못 버는 일도 피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가진 것이 무엇이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협상하고, 타협하고, 더 나은 절충안을 찾아내는 모든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건강한 인간 이해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위 말하는 ‘악마’도 ‘호구’도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독서를 통해 인간 이해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돈에 의해서 움직이지만, 잊지 마세요. 돈은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인격체가 아닙니다. 돈을 만들고, 쥐고 흔드는 존재는 여전히 인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