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철의 <피로사회>와 자기 착취
상담실을 찾아와 "선생님, 너무 우울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라고 호소하는 분들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게으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들보다 훨씬 치열하고 성실하게 삶을 일궈온 '모범생'에 가깝다는 사실입니다.
"남들은 멀쩡하게 잘 사는데 왜 저만 이렇게 나약할까요?"
스스로를 자책하며 눈물을 흘리는 그들에게, 저는 15년간의 임상 경험과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통찰을 담아 이렇게 말해주곤 합니다. "당신이 나약해서가 아닙니다. 너무 오랫동안, 너무 과하게 '긍정'했기 때문입니다."
한병철 교수는 그의 저서 <피로사회>에서 현대 사회를 '성과 사회(Achievement Society)'라고 규정합니다. 과거의 사회가 "해야 한다 / 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규율로 통제되었다면, 지금의 사회는 "할 수 있다(Yes, We Can)"라는 긍정의 구호가 지배합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자랍니다. 얼핏 자유로워 보이지만, 이 긍정성은 사실 끔찍한 저주를 품고 있습니다. '할 수 있다'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실패의 원인은 오직 하나, '나의 노력 부족'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채찍질합니다. 더 좋은 스펙, 더 높은 연봉, 더 완벽한 부모, 더 멋진 외모... 끝없는 '더(More)'를 외치며 우리는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아붙입니다.
이 지점에서 한병철 교수는 '자기 착취'라는 섬뜩한 개념을 제시합니다. 현대인에게는 채찍을 든 주인이 따로 없습니다. 내가 나 자신의 노예이자 감독관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타인이 시키지 않아도 밤새워 일하고, 주말에도 자기 계발을 멈추지 않으며, 쉴 때조차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습득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립니다. 이것이 타인이 시킨 일이라면 반항이라도 할 텐데, '나를 위한 일'이라는 명목으로 행해지기에 우리는 멈추는 법을 잊어버립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착취하며 영혼까지 태워버린 결과, 찾아오는 것이 바로 '번아웃(Burnout)'과 '우울'입니다.
상담학적 관점에서 볼 때, 우울은 일종의 '강제된 휴식'입니다.
우리의 무의식은 알고 있습니다. 이대로 계속 달리다가는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요. 하지만 의식(이성)은 "안 돼, 멈추면 뒤처져! 더 노력해야 해!"라며 브레이크를 밟지 않습니다.
결국 영혼은 최후의 수단을 씁니다. 몸과 마음의 전원을 강제로 내려버리는 것입니다. 의욕을 없애고, 몸을 무겁게 만들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듭니다. 즉, 우울은 고장이 아니라, "제발 그만 좀 해! 여기서 더 가면 위험해!"라고 외치는 영혼의 처절한 '비상 정지 신호'인 셈입니다.
그러니 지금 우울하다면, 그것을 자신의 나약함 탓으로 돌리지 마십시오. 그것은 당신이 그동안 당신의 능력을 초과해서 최선을 다해 살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피로사회>의 해법은 역설적이게도 '깊은 심심함'과 '무위(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회복에 있습니다. 성과를 내지 않아도 되는 시간, 목적 없이 멍하니 있는 시간, 남들보다 뒤처져도 괜찮다는 허용이 필요합니다.
상담의 목표는 당신을 다시 "할 수 있는 상태"로 빨리 복귀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은 못 하겠다", "이건 내 능력을 벗어난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부정의 용기'를 찾아주는 것입니다.
우울이 찾아왔나요? 그렇다면 감사하십시오. 폭주하던 당신의 기관차를 멈춰 세워준, 아주 고마운 신호등이니까요. 지금은 파란불이 아니라 빨간불입니다. 그냥 멈춰 서서 쉬십시오. 그래도 큰일 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