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그 짐멜의 《돈의 철학》으로 짚어보는 불안의 정체
상담실에서 내담자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돈' 때문에 깊은 불안을 호소합니다. "선생님, 남부럽지 않게 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늘 통장 잔고를 보며 불안해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돈을 쓰지도 못하고, 더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립니다."
가난해서가 아닙니다. 번듯한 직장과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 분들도 이 기묘한 불안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는 왜 돈을 벌면 벌수록 삶이 풍요로워지기는커녕 점점 더 쫓기는 기분이 드는 걸까요? 현대인의 이 고질적인 불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독일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의 《돈의 철학》 을 꺼내어 봅니다.
짐멜은 돈이라는 매개체가 인류에게 엄청난 자유를 주었다고 통찰했습니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태어난 핏줄이 모든 것을 결정했지만, 돈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만 있으면 누구나 원하는 것을 누릴 수 있는 폭넓은 '자유'를 얻게 되었죠.
하지만 짐멜은 이 자유의 이면에 숨겨진 무서운 함정을 경고합니다. 본래 돈은 내가 원하는 가치(음식, 집, 여행, 배움 등)를 교환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어느 순간 돈 그 자체가 삶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둔갑해버렸습니다.
목적을 잃어버리고 수단만을 맹목적으로 긁어모으는 삶. 아무리 많은 돈을 쌓아두어도 "이 돈으로 내 삶의 어떤 가치와 기쁨을 살 것인가?"라는 뚜렷한 철학이 없다면, 우리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습니다. 돈을 벌면서도 늘 공허하고 불안한 이유는, 바로 이 텅 빈 목적지에서 피어오르는 감정입니다.
짐멜이 지적한 돈의 또 다른 비극적인 특징은 '모든 가치를 평준화'한다는 것입니다. 돈 앞에서는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도, 누군가의 정직한 땀방울도, 심지어 사람의 인격조차도 '얼마짜리'라는 숫자로 환원되어 버립니다. "저 사람 연봉이 얼마래", "저 아파트가 몇 억이래"라며 세상의 모든 다채로운 가치들을 오직 돈이라는 단일한 잣대로만 평가하게 되죠.
심리학적으로 볼 때, 삶의 가치를 숫자로만 측정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숫자에는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1억을 모으면 10억을 가진 사람이 보이고, 10억을 모으면 100억을 가진 사람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집니다. 돈이라는 잣대 하나만 쥐고 있는 한, 우리는 영원히 누군가와의 비교 속에서 패배감을 맛봐야 하는 경쟁의 굴레에 갇히고 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숨 막히는 물질의 굴레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까요? 심리 상담의 현장에서도, 그리고 짐멜의 철학에서도 그 해답의 방향은 같습니다. 짐멜의 철학을 빌려, 저는 내담자들에게 이렇게 조언합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당신만의 '절대적 가치'를 삶의 중심에 두십시오."
돈은 훌륭한 하인이지만, 끔찍한 주인입니다. 돈을 다시 우리의 충직한 하인으로 길들이려면, 돈이라는 숫자의 지배를 받지 않는 나만의 내밀한 기쁨을 곁에 두어야 합니다.
아침 햇살을 맞으며 정성껏 내리는 핸드드립 커피 한 잔의 여유, 카메라 뷰파인더 너머로 세상의 빛과 그림자를 온전히 포착해 내는 찰나의 몰입, 혹은 조용한 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밀려오는 묵직한 감동 같은 것들 말이죠. 이런 것들은 결코 숫자로 가격을 매길 수 없는, 내 삶을 진정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고유한 가치들입니다.
돈을 버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고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내는 강력한 기반이니까요. 하지만 통장의 잔고가 늘어나는 것만큼이나, 내 영혼의 잔고도 함께 채워지고 있는지 틈틈이 들여다봐야 합니다.
오늘 하루, 숫자로 가득 찬 세상의 요란한 소음에서 잠시 귀를 닫아보십시오. 그리고 내 삶에서 돈을 지불하지 않고도 누릴 수 있는, 그러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의 이름을 하나씩 가만히 불러보는 겁니다. 당신은 돈이라는 수단에 맹목적으로 끌려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그것을 다루며 삶을 음미할 자격이 충분한 훌륭한 주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