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직장만 보고 달려온 중년에게 도스토옙스키가 건네는 뜻밖의 처방전
상담실 소파에 앉아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중년의 내담자들에게서 의외로 자주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평생을 흠잡을 데 없는 '착한 사람'으로 살아왔다는 점입니다.
"선생님, 저는 평생 부모님 속 한 번 썩인 적 없고, 직장에서도 상사가 시키는 대로 불평 없이 일했어요. 가정에서도 제 욕심은 꾹꾹 누르며 희생했죠. 그런데 요즘은 가슴 한가운데가 뻥 뚫린 것처럼 공허하고, 문득문득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껍데기만 남은 기분이에요. 제 인생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내면의 목소리를 외면해 온, 이른바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안고 늙어가는 어른들의 비애입니다. 가족 외식을 할 때조차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편하게 주장해 본 적이 없고, 주말에 온전히 나만을 위해 돈과 시간을 써본 기억조차 가물가물합니다. 물론 이들이 바보여서 무조건 참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부모에게 인정받기 위해, 조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소중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그것이 그들 나름의 최선이자 생존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눈물겨운 노력과 책임감은 결코 폄하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사회가 정해놓은 모범답안을 충실히 따랐건만, 왜 정작 삶은 무채색으로 변해버린 걸까요? 이 먹먹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거장 표도르 도스토옙스키(Fyodor Dostoevsky)의《지하실의 수기》를 펼쳐봅니다.
소설 속 화자인 '지하 생활자'는 세상과 단절된 채 지하실에 틀어박혀 살아가는 기이한 인물입니다. 그는 당시 유럽을 휩쓸던 이성주의와 공리주의를 상징하는 '수정궁(Crystal Palace)'을 맹렬하게 비판합니다.
수정궁은 모든 것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계산되는 완벽한 사회입니다. 2 더하기 2는 언제나 4가 되는, 오차도 없고 갈등도 없는 안전하고 '착한' 세계죠. 사회는 우리에게 이 수정궁에 들어가라고 강요합니다. "좋은 대학에 가서, 안정적인 직장을 얻고, 무난하게 결혼해서 남들처럼 사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이로운(착한) 길이야"라고 속삭이면서요.
하지만 도스토옙스키의 지하 생활자는 외칩니다. "인간은 이성에 따라 건반을 누르면 소리가 나는 피아노 건반이나 오르간의 부속품이 아니다!" 인간은 오직 이익이나 합리성만을 추구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때로는 자신에게 손해가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심지어 파멸에 이를지라도 기어코 '내 마음대로' 하고야 마는 비합리적이고 모순적인 존재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인간은 왜 기꺼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르는 걸까요? 지하 생활자는 그것이 바로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인 '자유의지(Free Will)'를 증명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나는 누군가 만들어 놓은 공식(2+2=4)대로 움직이는 로봇이 아니라, 내 의지대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살아있는 인간이다!"라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 인간은 때론 2 더하기 2가 5라고 억지를 부리고 일탈을 감행합니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무기력한 내담자들의 마음속에도 바로 이 '지하 생활자'가 웅크리고 있습니다. 평생 부모가, 사회가, 배우자가 눌러대는 피아노 건반으로만 살아왔기에, 정작 '내가 연주하고 싶은 음악'이 무엇인지 잃어버린 것입니다.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원인 모를 분노와 공허함은 병이 아닙니다. 그것은 억눌려 있던 당신의 자유의지가 "이제는 제발 남의 악보 그만 보고, 네 삶을 살아라"며 맹렬하게 지하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입니다.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은 우리 내면에 억압된 어둡고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욕망을 '그림자(Shadow)'라고 불렀습니다. 이 그림자를 억누르고 '착한 페르소나(가면)'만 쓰고 살면, 결국 영혼의 생명력은 고갈되고 맙니다.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내 안의 이기적이고 삐딱한 그림자까지도 나의 일부로 인정하고 껴안아야 합니다.
평생을 착한 아이로 살아오느라 지친 당신에게, 저는 오늘 조심스럽게 일탈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 일탈은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거나 가족을 등지라는 무책임한 파괴를 뜻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내 삶의 운전대를 타인에게서 온전히 나에게로 되가져오는 안전하고 작은 연습입니다. 거창한 반항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주말에는 가족들 눈치 보지 않고 온전히 나만을 위해 하루를 이기적으로 써보는 것, 남들이 뭐라든 나사 하나 빠진 사람처럼 내가 좋아하는 엉뚱한 취미에 몰두해 보는 것, 가끔은 누군가의 부탁에 미움받을 용기를 내어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거절해 보는 것 말이죠.
합리적이고 안전한 수정궁의 유리벽을 깨고 나오십시오. 타인의 눈에 조금은 '나쁜 어른'이나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칠지라도 괜찮습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2+2=4의 정답을 부수고, 당신만의 2+2=5를 당당하게 외치는 순간, 비로소 무채색이었던 당신의 삶에 다시금 뜨거운 생명력이 돌기 시작할 것입니다.
착한 아이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진짜 '나'를 찾아가는 당신의 위대한 반항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