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가장 아픈 날, 이 글이 작은 온기가 되기를

첫번째 연재를 마치며

by 안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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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업으로 삼고 산 지 15년이 되었습니다. 수백 명의 내담자를 만나고, 수천 시간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저는 여전히 인간의 마음을 다 알지 못합니다.

초보 상담사 시절, 저는 제가 가진 지식으로 누군가를 완벽하게 '치유'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저는 깨닫습니다. 상담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누군가의 아픔을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아픔을 견디는 시간 동안 곁에 있어 주는 것뿐이라는 사실을요.

지난 19화 동안 제가 철학자들의 말을 빌려 여러분께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들도 결국 그것이었습니다. 심리학 이론이나 철학적 명제가 당신의 여러가지 어려움을 단번에 날려버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당신만 아픈 게 아니다", "그 아픔에는 뜻이 있다"라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마음에도 날씨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계절이 바뀌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겨울이 오면 춥고, 장마가 오면 눅눅합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도 당신의 삶에는 예고 없이 비가 들이치고, 폭설이 내려 길이 막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은 그 날씨를 바꾸는 마법이 아닙니다. 대신 빗속에서 우산을 펴는 법, 눈보라 속에서 체온을 잃지 않는 법을 알려주는 작은 '생존 키트'입니다.

불안이 찾아오면 키에르케고르를 떠올리며 "내가 자유롭구나"라고 생각하시고, 화가 날 때는 스토아학파처럼 "잠깐 멈춤"을 실천해 보십시오. 남들의 시선이 두려울 땐 푸코의 텅 빈 감시탑을 기억하고, 삶이 무의미해 보일 땐 빅터 프랭클처럼 질문을 바꿔보십시오.


당신이라는 우주를 사랑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제가 가장 아끼는 니체의 말을 다시 한번 꺼내어 봅니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당신의 운명을 사랑하십시오. 당신이 겪은 상처, 지우고 싶은 흑역사, 남모를 콤플렉스까지... 그 모든 것이 모여 지금의 당신이라는 고유하고 아름다운 우주를 만들었습니다. 그중 단 하나라도 빠졌다면, 지금의 당신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당신 자신에게 조금 더 다정해지십시오. 남들에게 베푸는 친절의 절반만이라도 자신에게 베풀어 주십시오.


끝이 아닌 쉼표, 그리고 이어질 이야기

글을 적다 보니 마치 모든 연재가 완전히 끝나는 것처럼 썼지만,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만날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과 나누었던 이야기는 곧 한 권의 예쁜 '브런치북'으로 묶어낼 예정입니다.

그리고 이대로 첫 번째 테마를 끝내기는 저 역시 아쉬운 마음이 커서, 잠시 숨을 고른 뒤 10편의 앙코르 연재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앙코르 연재에서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겪지만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또 다른 마음의 풍경들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앙코르 연재 미리보기]

• 1화: 타인의 성공에 배가 아픈 진짜 이유(르네 지라르)

• 2화: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당신에게(폴 틸리히)

• 3화: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마음의 정체(알베르 카뮈)

• 4화: 왜 우리는 돈을 벌면서도 늘 불안할까(게오르그 짐멜)

• 5화: 나를 갉아먹는 '후회'의 늪에서 빠져나오기(스피노자)

• 6화: 몸이 보내는 비명을 무시하지 마라(메를로퐁티)

• 7화: 상처받지 않으려고 마음을 닫아버린 어른들(에리히 프롬)

• 8화: 애쓰지 않고 물 흐르듯 산다는 것(노자/장자)

• 9화: 착한 아이로 늙어가는 어른들의 비애(도스토옙스키)

• 10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하여(한나 아렌트)


이 10편의 앙코르 연재가 끝난 뒤에는,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결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합니다. 그동안의 글이 지친 마음을 다독이는 '따뜻한 위로'였다면, 다음 연재는 세상을 살아가며 '만만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한 방법'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입니다.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단단하게 나를 지켜내는, 조금 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심리 처방전을 들고 돌아오겠습니다.

살다가 문득 마음이 체한 것처럼 답답한 날, 잠 못 이루는 새벽이 찾아오는 날, 이 브런치의 글들을 다시 한번 꺼내 읽어주신다면 저에게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쓴 이 투박한 글들이 당신의 가장 아픈 날, 차가운 손을 녹이는 작은 핫팩 같은 온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금까지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하게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당신께, 15년 차 심리센터장의 이름을 걸고 깊은 존경과 감사를 보냅니다.

부디, 행복하지 않아도 좋으니 무탈하시길. 그리고 가끔은, 미친 듯이 당신의 삶을 사랑하시길.


- 당신의 마음 곁에서, 안태희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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