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의 <수상록>과 노년의 지혜
상담실을 찾는 중년 이후의 내담자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단어는 '상실'입니다.
"예전엔 밤을 새워도 끄떡없었는데...", "이제 회사에서도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아요.", "거울 보기가 싫습니다. 웬 낯선 노인이 서 있는 것 같아서요."
현대 사회는 유독 젊음을 숭배합니다. '안티에이징(Anti-aging)'이라는 말이 보여주듯, 우리는 나이 드는 과정을 질병처럼 대하곤 합니다.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싸워 이겨야 할 대상처럼 말이죠. 하지만 오랜 시간 사람들의 삶을 지켜보며 제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흐르는 시간을 억지로 거스르려 애쓰는 것만큼 사람을 추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는 것을요.
여기, 자신의 늙어가는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심지어 유머러스하게 기록한 한 남자가 있습니다. 16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입니다.
몽테뉴의 <수상록(Essais)>은 인류 역사상 가장 솔직한 '일기장'입니다. 그는 거창한 진리가 아니라 자신의 신장 결석, 빠지는 치아, 감퇴하는 기억력, 변덕스러운 성격에 대해 썼습니다.
그는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거나 감추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 책의 주제는 바로 나 자신이다"라고 선언하며, 주름진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듯 글로 남겼습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건강한 노년의 첫 번째 조건은 '자기 수용'입니다. 젊은 날의 탱탱한 피부와 체력을 그리워하며 현재를 한탄하는 것은, 이미 지나간 계절을 붙들고 우는 것과 같습니다.
나이 듦을 인정하십시오. 돋보기가 필요한 눈, 조금 느려진 걸음걸이를 "내가 약해졌다"고 해석하지 말고, "내 몸이 긴 세월을 버텨내느라 애썼구나"라고 격려해주십시오. 자신의 쇠락마저 껴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노욕(老慾)이 아닌 품위를 갖게 됩니다.
몽테뉴는 "철학이란 곧 죽음을 연습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죽음을 입에 올리는 것을 불길해하는 현대인들과 달리, 그는 삶의 곳곳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음을 직시했습니다. 이것은 세상을 비관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끝'이 있다는 것을 기억함으로써 '지금 이 순간'을 더 밀도있게 살려는 지혜입니다.
우아하게 나이 드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죽음'과 친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내일 당장 떠나도 후회 없을 만큼 오늘을 충실히 즐깁니다. 반면 죽음을 애써 외면하는 사람들은 영원히 살 것처럼 돈과 명예에 집착하다가, 막상 죽음이 닥치면 공포에 질려 발버둥 칩니다.
나이 듦은 비극적인 종말을 향해 가는 과정이 아닙니다. 잘 익은 과일이 나무에서 떨어지듯,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가장 평화로운 리허설입니다.
몽테뉴가 남긴 조언 중 중년 이후의 삶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아리에르부티크(Arrière-boutique)', 즉 '상점 뒤의 작은 방'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 우리는 가족, 직장, 사회라는 '상점(앞방)'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물건을 파느라 정신없이 살았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반드시 상점 뒤에 나만의 은밀한 '뒷방'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 뒷방은 배우자도, 자식도, 친구도 들어올 수 없는 온전한 나만의 공간입니다. 이곳은 굳이 문을 닫고 들어가는 물리적인 방 한 칸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른 아침 조용히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며 사색에 잠기는 시간일 수도 있고, 카메라 뷰파인더 너머로 온전히 빛과 시선에 몰입하는 찰나일 수도 있으며, 타인의 평가에서 벗어나 내 마음의 중심을 잡는 심리적인 독립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타인의 칭찬이나 역할에 기대지 않고, 오직 나 자신과 대화하며 즐거움을 찾아야 합니다.
"은퇴하고 나니 할 일이 없어서 미치겠어요", "자식들이 연락을 안 하니 외로워 죽겠습니다"라고 호소하는 분들은 이 '뒷방'이 없는 분들입니다.
진정한 노년의 자유는 '관계로부터의 독립'에서 옵니다. 혼자서 책을 읽고, 산책하고, 사색하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충만한 상태. 그 고독의 능력이 당신을 그 누구보다 매력적인 어른으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포도는 늙어서 쪼글쪼글해지면 건포도가 되지만, 와인이 되면 향기로운 술이 됩니다. 당신의 노년은 건포도입니까, 와인입니까?
나이 듦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잃어버린 것은 '젊음'이라는 껍데기뿐이고, 그 안에는 15년, 아니 수십 년의 경험과 지혜가 단단한 씨앗처럼 여물어 있습니다.
이제 세상의 속도에 맞추려 헐떡이는 것을 멈추고, 몽테뉴처럼 자신의 뒷방에 앉아 당신이라는 책의 마지막 챕터를 여유롭게 집필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