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콤마로 야기된 혼란과 워싱턴 D.C. 대 헬러 사건
지난 5월, 뉴욕 버펄로에 위치한 슈퍼마켓과 텍사스 유발디 초등학교에서 연달아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으로 온 미국이 충격에 빠졌다. 6월 25일에 바이든 대통령이 초당적 합의로 의회를 통과한 총기규제법에 서명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는가 했지만, 법안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 시카고 인근 하이랜드파크 독립기념일 퍼레이드에서 대형 총기사건이 발생해 7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중상을 입으며 온 미국을 다시 침통하게 만들었다.
전미총기협회의 이야기를 듣거나 미국 독립전쟁이나 서부 개척시대 시절의 영화나 소설들을 보고 듣다 보면 마치 수정 헌법 2조가 조지 워싱턴 때부터 개인의 무기 소유 및 휴대를 보장해주었던 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이지만 사실은 불과 14년 전 처음 “해석된” 권리다.
A well regulated Militia, being necessary to the security of a free State, the right of the people to keep and bear Arms, shall not be infringed
수정 헌법 2조는 “A well regulated Militia, being necessary to the security of a free State, the right of the people to keep and bear Arms, shall not be infringed”라는 짧은 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잘 아는 “국민의 무기를 소유하고 휴대할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라는 문장 앞에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라는 구절이 있는데 세 번이나 사용된 콤마 때문에 법 조항의 해석이 쉽지 않다. 도대체 “침해될 수 없다”라는 술부의 주어가 “잘 규율된 민병대”인지 “국민의 무기를 소유하고 휴대할 권리”인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장의 주체를 “민병대”로 보게 되면 총기를 보유할 권리는 주의 안보를 위해 민병대에 속한 시민에게만 부여된 권리로 볼 수 있고, “국민의 권리”에 무게를 두고 해석하게 되면 폭압적인 정부에 맞서 민병대를 꾸릴 수 있도록 국민들은 무기를 소지할 권리를 갖는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국 건국 이후 200여 년간 수정 헌법 2조는 민병대에 속한 시민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이 법학자들 간의 다수 학설이었는데 국가 형태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군대가 민병대를 대체하자 이 권리 또한 점차 희미해져 갔던 것이다. 그러다가 이 조항은 2008년 결정된 워싱턴 DC 대 헬러 사건으로 일대 전환점을 맞게 된다.
워싱턴의 카토 인스티튜트의 변호사 로버트 레비는 총과는 별 상관없는 사람이었지만 평소 권총과 엽총 등 워싱턴의 총기류 규제법이 수정 헌법 2조에 명시된 권리에 위배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헌법에 보장된 자유를 국가권력이 침해하여서는 안된다고 믿는 열혈 자유당원이었던 그는 이 문제를 제기할 만한 적당한 소송원고 당사자를 물색하던 중 중년의 백인 남성 딕 헬러와 만나게 된다.
당시 헬러는 연방대법원 별관에서 무장 경비원으로 일하던 사람이었는데 낮에는 권총을 휴대하다 워싱턴 법 상 총을 개인적으로 휴대할 수 없어 매일 퇴근 시에는 총기와 탄환을 반납해야만 했다. 그는 레비 변호사가 원고를 찾아다니던 시점에 마침 총기 소유 신청을 했다가 거부당하고 자신의 사건을 맡아 줄 변호사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절묘한 타이밍에 양측의 이해가 딱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헬러의 소송은 워싱턴 지방 법원에서는 기각이 되고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연방대법원은 5대 4로 결국 국민의 권리에 무게를 둔 쪽으로 기울어졌는데 다수 판결문은 뉴욕 퀸즈 출신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에게 맡겨졌다.
사냥 마니아로 널리 알려진 스칼리아 대법관은 헌법 도입부의 민병대에 관한 내용은 “국민의 권리”에 대한 서문에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총기 소지권은 민병대의 권리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 신변보호나 동물 사냥 등 목적으로도 총을 소지할 수 있으며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절실한 때인 집에 있을 때조차 권총과 엽총 등 총기 소지를 규제하는 워싱턴의 법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렇게 해석함으로써 비로소 개인의 총기 소지권이 권리로 정당화된 것이다.
헬러 판결에 이어 연방대법원은 지난 6월 23일 “총기 소유를 허가받은 일반인이 집 밖에서 권총을 소지하려면 총기 소지가 자기 방어를 위해 필요하다는 적정한 이유를 소명하고 사전 면허를 받아야 한다”는 뉴욕주법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판결문). 이 법은 20세기 초 뉴욕시에서 마피아 조직 등의 총기 난사 사건이 잇따르자 제정된 것이다. 현재 연방대법원에는 보수성향 판사가 6명이나 포진하고 있어 앞으로 당분간 미국인들의 총기소유권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글은 2019.8.28. 미주 한국일보 뉴욕판에 실린 칼럼을 브런치 사정에 맞게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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