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브롱크스 동물원에 사는 코끼리 '해피' 이야기
뉴욕 브롱크스 동물원에는 51살 먹은 중년의 아시아 코끼리 ‘해피’(Happy)가 살고 있다. 태국의 정글에서 태어난 1971년생 해피는 1살 때 단돈 800불에 미국까지 팔려 온 후 무려 50년간 인간의 손에 길러졌다. 지난 6월 14일, 동물보호단체 ‘비인간 권리 프로젝트’(Nonhuman Rights Project)가 이제는 해피를 풀어주어야 할 때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뉴욕주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와 우리의 눈길을 끈다.
사회성이 좋아 야생에서는 여러 마리가 무리 지어 생활하는 코끼리는 지능이 매우 높고 기억력도 뛰어난 동물로 알려져 있다. 해피 역시 ‘거울 자기 인식 테스트’를 통과할 정도로 지능이 높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17년간 다른 코끼리와의 사회적 교류 없이 외톨이로 살아왔다. 태국에서 함께 팔려 온 죽마고우 그럼피(Grumpy)는 2001년 다른 코끼리들의 습격을 받아 죽고, 새롭게 룸메이트가 된 새미(Sammie) 역시 2005년 병사하면서 더 이상 해피와 어울리는 코끼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인간 권리 프로젝트’는 동물원에서 해피를 ‘구금’하는 것은 불법이고 비인간적이라며 뉴욕주 법원에 ‘인신보호 영장’을 신청했던 것이다. ‘인신보호 영장’(writ of habeas corpus)은 과거 전제군주 시절 영국에서 왕이나 영주들이 자신들에게는 ‘투옥시킬 신성한 권리’가 있다며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감옥에 잡아넣자 그에 대한 방어책으로 생긴 제도다.
쉽게 말해, 영장 실질심사가 체포된 사람에 대한 구속 여부를 사전에 법원이 결정하는 것이라면, 인신보호 영장은 이미 구금되어 있는 사람을 사후에 풀어줄 것을 법원이 명령하는 영장이다. 법원에서 구금의 법적 근거가 없다고 결정하면 즉시 방면된다. 국민의 신체 자유권을 보장해주는 중요한 법적 보호장치이기 때문에 연방헌법 제1조 9항 2호에 “내란이나 침략, 공공안전이 요구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신보호 영장의 특권을 정지할 수 없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제도가 ‘테러와의 전쟁’이 한창일 때 주가를 올린 바 있다. 즉, 미국 정부가 테러 용의자들을 재판 없이 쿠바 관타나모 해군기지 수용소에 바로 수감하자 인권 변호사들이 인신보호 영장을 통해 이들의 석방을 요구했던 것. 연방대법원은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관타나모 수용소에도 전쟁에서의 인도적 대우에 관한 기준을 정립한 제네바 조약이 준수되어야 하고, 테러 용의자들 역시 미국 헌법에 따라 인신보호 영장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이 판결에 따라 지난 6월 24일, 재판 없이 15년간 구금되어 있던 아프가니스탄 출신 아사둘라 하룬 굴(Asadullah Haroon Gul)이 석방되었던 것이다.
다시 해피 이야기로 돌아와서, ‘비인간 권리 프로젝트’는 해피가 사람은 아니지만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 달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우리 사회에서 회사나 비영리 단체 등은 사람이 아님에도 법으로 인격체 대우를 받아 법인 자격으로 재산 소유 및 계약서 작성도 할 수 있으며, 심지어 죄를 지으면 처벌까지도 받는 것처럼 해피도 ‘인신보호 영장’을 신청할 권리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디피오리(DiFiore) 뉴욕주 대법원장은 동물의 지능지수를 인격체 구분 잣대로 삼는다면 침팬지, 돌고래와 같은 동물들도 이에 해당한다고 전제하고, 이런 동물들이 모든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면서 5대 2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판결문).
사실 다수의견보다 대법관 2명의 소수의견이 더 이채로운데 이들은, 과거 노예들은 재산 취급을 받았음에도 인신보호 영장이 적용되었다며 해피 역시 즉각 ‘석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자신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해피는 오늘도 관람객 상대로 재롱을 부리며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해피의 남은 여생에 이름처럼 행복한 삶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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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2.8.17. 미주 한국일보 뉴욕판에 실린 칼럼을 브런치 사정에 맞게 수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