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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하는 밤: AI시대의 손끝 예술

by 응삼

카드 명세서를 보려 휴대폰을 들었다 바로 내려놓는다. 이 털실 값이면 아이들 기모 셋업을 하나 더 사줄 텐데... 입지도 않을 옷을 만들겠다고 결제했다. 검열관이 몰려온다. '이렇게 비효율적인 취미를 왜 계속하지?'

발터 그로피우스의 말이 떠오른다. "예술과 기술의 새로운 통합." 1923년 바우하우스가 꿈꾸었던 그 이상을 되뇌며 뜨개바늘을 든다. 하지만 머릿속 차가운 목소리는 이미 채점을 시작했다.


'시간 대비 생산성 제로.'

'재료비 대비 효율성 마이너스.'

이렇게 한가하게 앉아있어도 될까.

실수로 한 코를 놓쳤다. 삐뚤빼뚤한 내 편물이 눈에 밟힌다. 완벽하게 찍어낸 공장제품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보세요, 또 실수예요. 기계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아요." 내 안의 냉정한 검열자가 한숨을 내쉰다.


이런 생산성 없는 일을 왜 하고 있을까. 1800년대 초 영국에서 기계를 부수었던 방직공들처럼, 나도 시대를 거스르고 있는 걸까. AI가 모든 걸 대체한다는데, 이렇게 손으로 만드는 일에 집착하는 게 옳은 걸까.


그때 '바늘이야기'의 김대리 작가가 올린 영상이 떠오른다. 뜨개질로 성공한 그녀의 상점에서 정작 완제품은 안 팔리는데, 만들기 키트는 날개 돋친 듯 팔린다고 했다. 사람들은 결과물이 아니라 만드는 과정을 원했다.


조셉 캠벨의 『신화의 힘』에서는 인간은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취하고, 그 마음 깊숙이 근원적 결함과 트라우마가 자리 잡는다고. 종교와 철학, 예술이 그것을 치유한다고.


손으로 하는 예술은 여기저기 숨어있다. 누군가의 김장에서, 누군가의 식탁에서. 그 서툰 움직임들이 우리를 살아있게 한다.


도서관 '아티스트웨이' 워크숍에서 질문을 만났다. 내 안의 예술가는 누구인가? 예술이란 뭘까? 일상 예술가는 무엇일까? 그러다 또 검열자가 찾아온다. 이걸로 돈을 벌 수는 있는 건가?


기술이 발달하면서 일상의 의식들이 사라진다. 관혼상제도, 계절의 노동도 집 밖에서 기계가 대신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더 불안해진다.


문득 깨닫는다. 바우하우스가 꿈꾸었던 것처럼, 우리도 AI와 예술의 새로운 조화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AI가 대체하는 게 아니라, 인간다움을 더 빛나게 하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AI 어시스턴트 Claude와 이야기하며 생각을 다듬는다. 기술은 위협이 아닌 동반자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새로운 바우하우스가 되지 않을까.

일상 생활 예술가 전시회(마포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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