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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응삼 Oct 11. 2024

[소설] 피터팬 아저씨

Chapter 2 지애비 닮아서

 "지애비 닮아서..."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억울하다. 태어나 사진으로도 접해 보지도 못 한 아빠를 닮았다니... 도대체 어떤 부분이 어떻게 닮았다는 건지 당최 나는 머릿속에 그릴 수가 없다. 코가 닮았나? 입이 닮았나? 귀가 닮았나? 알 수 도 없는 생물학적 아버지의 흔적을 그려 보았지만 다시 희뿌연 안개만 자욱이 끼어 멍해질 뿐이었다.


  " 밥 먹어라~" 무표정한 엄마가 상이라기에는 작고 가장자리가 불룩 올라와 있어 쟁반이라기에는 크기가 큰 저녁상을 내려놓으며 나를 부른다.

 상과 쟁반 사이 3/4 쯤으로 정의 내리고픈 그 나무판자 위에는 저녁 반찬들이 차려져 있다. 반찬 그릇들을 다 담기에는 좁은 면적이라 접시를 수평하게 내려놓으면 다른 반찬 그릇들이 올라가 기울어지곤 한다. 맞지 않는 균형을 잡으려 한 두 번 애를 쓰다 반찬들을 둘러본다. 밥공기 2개와 두 그릇의 나물 반찬, 하얀 동치미, 반숙 계란 프라이 3개가 담긴 접시 그리고 김. 계란 프라이에 숟가락이 먼저 가고 싶지만 왜 둘이 먹는데 세 개가 올려져 있는지 엄마가 말해주기까지 동치미 무를 아삭 씹으며 시간을 벌어야겠다.

 "얼갈이배추도 먹어!" 젓가락 가득 집어서 밥그릇에  올려 주며 엄마가 말했다. 나는 대꾸할 생각도 못하고 물컹물컹한 야채 덩어리를 입안에 넣는 상상을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표정이 일그러졌었나 보다.

 " 지애비 닮아서... 야채도 싫어하고 골고루 먹어야 키가 크지!"

 " 키 크려면 계란 프라이를 먹으면 되지, 고기 많이 먹고 우유 많이 마시면 되는데... 학교에서는 골고루 다 잘 먹어 고기도 많이 주고 3번씩 받아서 잘 먹고 온단 말이야. 집에는 고기반찬도 없잖아" 남들 다 있는 아버지가 없는 것도 서러운데 내 아버지를 저렇게 낮춰 부르며 흠을 잡는 내 엄마가 싫어 나지막이 반박해 본다.

" 계란 프라이 많이 먹어~ " 라며 계란 프라이 접시를 내 앞으로 바꿔 놔 준다. 계란 프라이를 내 앞에 놔주는 것을 보아 좋은 타이밍이란 판단이 들었다.

"엄마! 나 태권도 다니고 싶어. 저녁 먹고 바로 5시 반부 가면 딱 맞아. 집에 혼자 있기 싫어. 민식이가 그러는데, 태권도 포인트 모으면 장난감도 살 수 있대." 라며 운을 띄웠다.

"너 미친 거 아니냐?"

그다음에는 어떤 이유도 설명도 못 들었지만, 그 한 문장으로 내가 태권도에 다닐 수는 없겠구나 정도는 눈치를 챘다.


" 남편 복 없는 년은 자식 복도 없다더니...." 싱크대 개수대에 잔뜩 쌓여있는 설거지통 앞에 서있는 엄마가 수세미 대신 프라이팬 뒤집게를 잡고 잔뜩 성이 난 채 그릇들을 쑤셔 대며 혼잣말을 했다. 나는 무엇이 잘 못 된 건지 모른 채 피하고 싶지만 작은 원룸에 피할 곳도 없어 한쪽 구석에 가서 책에 얼굴을 파묻는다. 표정을 가리기에도 좋고 손에 닿는 거리에 있어 제일 빠르게 숨을 수 있는 곳 그리고 직감적으로 티브이 리모컨보다는 엄마의 화를 돋우지 않을 좋은 도피처이기 때문이다.  

 " 엄마 식당 다녀올게~"라고 말하는 엄마의 얼굴에 반쯤 열린 현관문 사이에서 붉은 노을이 비췄다.

"다녀오세요." 엄마가 문을 닫으면 나는 나가 현관문을 잠갔다. 지난밤에 혼자 있기가 왜인지 무서워 현관 자물쇠의 안전락까지 걸고 내가 깜박 잠이 들어 엄마가 열쇠로 아무리 열어도 문이 열리지 않아 한참이나 나를 부르며 밖에서 덜덜 떨었다고 했다. 이번에는 하나만 잠그고 돌아와 티브이를 켰다. 돌리고 돌리고 돌려도 눈길이 가는 채널이 없다. 종착점은 내 고향 6시에 멈췄다. 이 시장 저 시장 구경, 누더기 한복을 입고 엿 파는 아저씨, 할아버지 흉보는 할머니등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이란 곳이 오떤데 있어. 저기 물 흐르제 공기좋제 허염 좋은 디가 오떤데가 있어. 울이 할아버지가 서울서 보증서가지고  쫄오올딱 망해가지고 여기 왔는데 국수만 삶아 먹고살은 겨... 시방 지금 얼마나 건강해 내가... 국밥 100그릇만 팔아 내가 딱! 우리 아들이 더 하면 엄마 힘들다고 못하게 혀. 여기 인공 관절 넣었는 디, 한 개도 안 아파 비 와도~ " 랩 같은 속사포 사연에 할아버지는 불편한 듯 나무뿌리 같은 손으로 할머니의 옷소매를 잡아당기지만 할머니는 뿌리치며 역정을 낸다.

"왜? 당신 김 씨한테 홀딱 속아가지고 민사장 보증 섰어 안 섰어?" 두 분이 나란히 앉아 파티션이 쳐져있던 것도 아닌데 어색하게 할아버지 쪽으로는 머리카락 한 올도 움직이지 않던 할머니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쏘아붙인다.

" 네~물 맑고 공기 좋은 청주 소식이었습니다. 국밥 100그릇을 만드셔도 끄떡없는 건강하신 이정년 할머니십니다.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아나운서가 노부부의 언쟁의 시작을 자연스럽게 스튜디오로 받아와 넘어간다.


어떤 이유로 아빠는 없는 걸까? 아빠가 곁에 있었다면 이정년할머니의 랩 같은 한을 엄마도 아빠에게 힘껏 쏘아대면서 잘 사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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