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시어머니가 쓰러지셨다
남편과 함께 집에 돌아오는 늦은 밤 시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바빠?’
10시가 넘은 휴일 밤, 갑자기 바쁘냐는 질문은 어딘가 어색하다.
그 말의 의미는 우리가 어머니 댁에 가봤으면 하는 거였다.
하지만 군에 간 아들 귀대시키고 집에 들어가는 중이라는 말에
시동생은 그냥 자기가 내일 엄마를 살펴보겠다고 한다.
나도 몸이 안 좋아서 달리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날은 일찌감치 입대한 아들이 외출을 나와서 아침을 먹이고,
낮에는 시댁에 가서 점심 식사 살뜰히 챙겨 드시게 해 드리고 온 날이었다.
시어머니는 점점 거동이 불편해지셨다. 처음에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며 뇌경색을 의심했다.
그래서 종합병원에 다니며 온갖 검사를 해봤다. 특별한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검사 결과와 달리 나날이 몸에 기운이 빠져서 예전처럼 생활하기 힘들어졌다.
언제부터라고 말하기 애매하게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를 돌보는 일이 늘어나고 있었다.
이곳저곳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할 일이 늘어났고, 정기적으로 용하다는 침술사에게 침을 맞으러 다녔다.
모두 자식들이 모시고 가야 가능한 일들이었다.
게다가 살림이 힘들어졌으니 먹을 것을 챙겨야 했고, 주말마다 남편은 시댁 청소를 맡아서 했다.
그것이 가끔 벅차기도 했지만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게을리할 수가 없었다.
우리 아빠가 아플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회사에 가야 하고, 시동생도 가게를 하고 있어서 시누이와 내가 나눠서 병원에 모시고 다녔다. 아빠 49재를 지내고도 바로 시댁으로 가서 식사를 챙겨드려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해야 할 일은 줄지 않았다.
밤이고, 아침이고 이렇게 다시 전화가 왔고, 전화해야 할 일이 생겼다.
아마 점점 더 늘어날 거였다.
우리에게 전화하는 시동생의 맘을 모르지 않는다.
‘엄마가 아픈데 얼마나 애가 탈까. 어떻게든 엄마를 아프지 않게 해주고 싶겠지.
엄마 걱정에 쉬이 잠이 오지 않을 거야. 나도 지금 그러니까.’
그런데 이게 아무리 몸부림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었다.
삶은 그래, 참 잔인했다.
그리고 그런 삶의 속살은 바로 며칠 후 드러났다.
시어머니가 심한 통증으로 응급실에 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회사에 있던 남편이 달려가고, 시누이가 병원으로 갔다.
어머니는 통증에 거의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라고 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입원실이 없다며 집으로 돌아갔다가 주말을 보내고 다시 내원하라고만 했다.
결국 남편은 시누이와 함께 아픈 시어머니를 모시고 우리 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아빠 장례식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엄마를 혼자 둘 수 없어 친정에 가던 길이었지만
시어머니가 오신다는 말에 차를 돌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시댁이 아닌 우리 집에서 시어머니 병구완이 시작되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