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포고처럼 묵직한 짐

11. 좀 심했다

by 스토


한번 길에서 넘어진 시어머니는 그 후로도 크고 작게 넘어지곤 했다.

그때마다 급한 전화를 받고 시댁으로 달려갔다.

거센 바람이 부는 날, 콩나물이라도 사서 저녁거리를 챙기려 집을 나섰던 어머니는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휘청이고 말았다. 이때 처음으로 들고 나선 지팡이를 놓칠까 싶어 더 꽉 움켜쥐다가 온몸으로 땅을 지탱하고 말았다. 어머니는 나중에서야 그때 지팡이를 놓아버렸으면 얼굴까지 다치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이마에 멍이 자욱하고, 그 멍이 눈부위까지 덮쳐 있는 모습은 처참했다. 정형외과에 이어 안과에 갔다. 남편과 내가 모시고 갔지만 내가 열심히 어머니를 챙길 때면 남편은 그저 지켜볼 뿐이다. 가뜩이나 뭘 해야 할지 몰라서 허둥대는 사람이니 내가 나서서 해줄 때는 구경만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의사는 내가 딸이고, 남편이 사위인 줄 알았다. 늘 그랬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다니면 나를 딸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




그렇게 크고 작은 사고가 있었지만 시어머니는 그래도 건재했다. 그런데 갑자기 응급실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형외과에서도 골절이 된 곳은 없다고 했는데 이래저래 몸이 축나면서 모르는 새 골절이 된 모양이었다. 골절된 뼈가 어딘가를 눌러서 통증이 심해진 것이었다.

시어머니가 응급실에 간 날은 주말에, 연말이었다. 세상은 캐럴과 트리로 반짝였지만 아픈이들에겐 그 모든 것이 더 번잡스러울 뿐이었다. 그 번잡함 속에 응급실은 가득 찼고, 입원실도 한 자리 나지 않았다. 골절로 인한 통증에 한 걸음도 걷기 힘든 어머니는 당신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주말이면 요양보호사도 오지 않을 뿐 아니라 어머니는 24시간 돌봄이 필요했다. 그래서 남편과 시누이가 우리 집으로 모시고 온다는 거였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온다는 말에 나는 비어 있던 아들 방부터 정리했다. 아들이 입대한 후 정리할 것 없을 만큼 이미 깔끔했지만 한 번 더 이불이며 베개를 정리해서 시어머니 맞을 준비를 했다. 몸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기운은 하나도 없었다. 시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건 그 순간 어느 때보다 두려운 일이었다. 아빠를 떠나보내고 몇 주가 지났지만 난 아직도 노인들을 보는 것이 힘들었다. 아빠 생각이 간절해서 눈물이 잘 참아지지 않았다. 온몸에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찰랑이는 슬픔을 억누르며 지내던 시기였다. 그러니 내 몸도 마음처럼 온전하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가슴에 마약성분의 통증 억제 패치를 붙이고 있었다. 통증에 시달려 지친 얼굴이었지만 나를 보고 잠깐 미소를 지어주셨다. 평소 어머니 성품에 웬만해서는 우리 집에 오실 분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걸 따지고 생각할 여력이 없는 것이었다. 시어머니를 침대에 눕히고, 남편과 시누이는 시댁으로 가서 어머니 짐을 챙겨 오겠다고 나섰다.

한참 후에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다. 시누이는 시댁에서 짐만 챙겨주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남편이 차에서 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시누이는 정말 엄청나게 많은 짐을 싸서 보냈다. 걸을 때 필요한 워커에 변기가 달린 의자, 휠체어, 기저귀와 패드, 겨울을 보내고 남을 옷가지와 헤어드라이어, 탁상 스탠드에 모자까지 2개나 챙겨서 보냈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다음날 바로 우리 집으로 쿠팡에 주문하여 가습기를 보내고 침대 방수 매트를 보냈다.

난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었다. 이런 면에서 시누이는 참 생각 없는 사람이다. 사람의 마음을 감정을 생각 없이 건들곤 한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내가 할 일이면, 내가 해야 할 상황이면 할 텐데 자기만 맞는 듯했다. 단 며칠일 터였다. 사람이 아픈데 그걸 못할까. 시누이가 보낸 물건은 ‘우리 엄마 한시도 불편하지 않게 돌봐드려야 해’ 같은 느낌이 들어 불쾌했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를 돌볼 수 있는 건 시누이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나에겐 시어머니지만 자기한테는 엄마였다.




사실 난 그동안 나름대로 며느리 자식 노릇에 열심이었다. 늘 그랬듯이 나 하나만 가만히 있으면 모두가 편하다. 시부모가 편한 건 말할 것도 없고, 남편에 시누이, 시동생 모두 편하다. 나만 참으면 모두 편하니 이건 아주 효율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좀 아닌 거 같았다.

아빠를 떠나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내게 그들이 그러는 건 좀 심한 느낌이었다.

자기 동생이, 누나가 큰일을 겪고 힘들어할 때 다시 무거운 짐을 지울 수 있을까?

아마도 그에게 있는 일을 덜어주려 애썼을 것이다. 이건 우리가 맡아할 테니 넌 마음 추스르며 쉬어라 했을 것이다. 너 괜찮겠냐, 이렇게 되어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당연한 듯 그러는 건 좀 그랬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딱한 사정을 생각하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이건 모두 그냥 털어놓는 나의 넋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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