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이유가 있다

12. 시어머니를 돌보며 엄마와 아빠를 생각하다

by 스토

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신 첫날은 숨쉬기 힘들게 고요했다.

시어머니는 오랜 외지 생활 끝에 집에 돌아와 쉬는 사람처럼 깊고 편한 잠을 오랫동안 주무셨다. 코까지 골며 편히 주무시는 시어머니가 아들 방에 계시다는 생각에 나는 되도록 거실에도 나가 있지 않았다.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해서 어머니를 챙겨드리고 나서, 어머니가 잠에 들면 서재나 안방에 들어가서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침대에서 노트북을 두고 일을 하거나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거실은 시어머니와 나의 완충 작용을 하는 셈이었다.

시어머니를 집에 모시니 시아버지도 우리 집으로 어머니를 보러 오겠다고 했다. 시아버지는 어머니 걱정에 서둘러 오겠다고 했지만 그런 마음조차 반갑지 않았다. 시아버지가 우리 집에 온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모시러 가고 오고 하는 일이었다. 시어머니를 돌보는 것에 시아버지를 돌보는 일까지 해야 할 일이 더 늘었다.




가슴에 통증 패치를 붙인 어머니는 한 걸음도 걸을 수 없었다. 식사도 혼자서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어 하나부터 열까지 도움이 필요했다. 조금이라도 더 드시게 하려면 모든 음식을 잘게 썰어서 숟가락에 담아 떠먹여야 했고, 화장실에 가고 싶은지 수시로 확인해야 했다. 집에서 내가 시어머니를 돌보는 동안 남편도 바빴다. 그간 어머니가 다녔던 병원을 모두 돌아다니며 검사 기록을 챙겼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으면 대리 진료 형태로 의사에게 어머니 증상을 말하고 조언을 구했다. 남편은 어머니의 증세에 알맞은 최상의 병원을 찾으려고 동분서주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시댁에 들러 시아버지를 모시고 우리 집으로 왔다. 나는 시어머니에 이어 시아버지의 식사를 챙기고, 돌아가실 때는 저녁에 드시라고 음식을 챙겨 보냈다. 집안은 고요했지만 해야 할 일은 스물스물 김이 올라오듯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연말이라 남편이 집에 있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모든 일의 주체는 나였다. 어머니와 남편은 부모 자식관계라고는 하지만 성별이 달라 돌보는데 한계가 있었다. 내가 아빠를 돌볼 때도 큰 걸림돌은 그런 문제였다. 나도 아빠도 불편해하며 서로 조심했었다.

어머니는 몸은 아프지만 여전히 꼿꼿하고 싶어 했다. 아들에게 벗은 몸을 보이기 불편해했고, 변기가 달린 의자가 방에 있었지만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려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를 존중하는 마음에 최대한 내가 나서서 했다. 걸음이 불편한 어머니를 돕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어머니의 발밑으로 내 발을 넣어서 발작을 떼게 하는 것이었다. 내 몸과 발이 어머니의 걸음 보조기구 역할을 하는 거였다.

그런 식으로 하루를 보내고 나면 저녁이면 녹초가 되었다. 이제부터는 남편의 시간이었다. 남편은 밤새 어머니의 화장실 문제를 돕기 위해 바닥에 요를 깔고 어머니 옆에서 잤다. 나는 안방에서 그제야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낮에 어머니의 손톱에 검은 때가 낀 것을 보았다. 아픈 어머니에겐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 손톱을 보는데 나는 다시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가 살아계실 때 아빠 손톱을 깎고 손톱 사이를 닦아주는 건 내가 맡아한 일이었다. 엄마도 눈이 어두워 아빠의 손톱을 깎아주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 목욕 서비스를 받곤 했지만, 그들도 아빠의 손톱을 깎아주는 건 자기들 일이 아니라며 난색을 표했다. 깎아드릴 수는 있지만 혹여 다치는 문제가 생길까 꺼려진다고 설명했다. 손톱이 길면 아빠는 언제나 나를 불렀다. 내가 손톱을 깎고 손톱 사이에 낀 먼지를 닦아내고 나면 언니가 면도기로 아빠 면도를 해주었다. 아빠를 돌보는 엄마의 일을 덜어주기 위해 자잘하니 귀찮은 일들은 우리가 하려고 했다. 시어머니의 손톱도 아빠와 다르지 않았는데 난 선뜻 나서지지 않았다. 연명의료를 포기하여 아빠를 떠나보낸 내가 다른 노인을 돌보는 것이 왠지 아빠에게 미안했다. 그것이 시어머니라고 해도 미안한 마음은 같았다. 하루 종일 힘들게 집안일을 하고 나서 겨우 침대에 누워서는 아빠에 대한 미안함으로 쉬이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러다 새벽마다 울음을 울었다. 편히 울 수 없어 우는 울음소리는 짐승 같은 소리를 냈다. 울지 않고 싶었지만 참을 수 없었다. 난 아직 다른 사람 부모 돌볼 정도로 편하지 않다고. 나 좀 그냥 내버려 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며칠 후, 잠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는 ‘어, 내가 잤네’ 했다.

새벽마다 짐승 울음소리를 내며, 슬픔을 억누르며 시간을 보내다 자고 깨고를 반복했는데 눈을 뜨니 5시경이다. 그날은 시어머니가 입원을 하시는 날이었다. 주말 정도만 돌보면 될 줄 알았던 어머니는 우리 집에서 열흘 가까이 계셨다. 원래 입원하기로 했던 병원을 두고 더 나은 곳을 찾겠다며 시댁 형제들은 입원을 계속 미뤘다. 그 사이 검사를 위해 나와 남편은 병원을 전전하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다시 처음에 예정했던 병원으로 가게 된 것이었다. 시어머니는 처음 우리 집에 오실 때에 비하면 걸음도 한결 나아졌고, 식사량도 3-4배는 늘었다. 거실로 나와 텔레비전을 볼 정도로 컨디션도 많이 좋아졌다. 편안한 잠자리에 아무것도 고민할 필요 없이, 안락한 도움을 받으니 몸의 회복속도가 빨랐다. 제일 힘들고 아팠던 때를 지나 그나마 나은 상태에서 입원을 하게 되어 다행이었다.

한편 시어머니를 집에서 돌보다 보니 아빠에게 필요했던 일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리고 엄마가 했을 고생이 어떤 것이었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매일매일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을 엄마가 감당했겠구나.’

‘매일매일 힘이 부쳤겠구나.’

하지만 엄마가 그 힘든 시간을 감당한 것은 남편이라서 그리고 엄마가 혼자 감당해야 자식들이 편하니 그리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삶이 너무 힘들었다는 생각에 미치자 아빠의 떠남에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여겨지기도 했다. 엄마가 슬픔에만 빠져 있지 않기를 바랐다. 엄마는 충분히 할 만큼 하셨으니 조금 홀가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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