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차마, 보고 싶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시어머니는 치료를 잘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퇴원이 결정되기는 했지만 온전히 좋아져서 퇴원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병은 회복하는데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법이고, 병원은 급한 치료만 끝나면 퇴원을 하라고 한다.
종합병원은 특히 더 그랬다.
내가 보기에 어머니는 우리 집에서 돌볼 때 훨씬 더 회복된 것 같았다.
입원한 어머니를 찾아가니 너무 답답해서 어제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고 하셨다.
노인에게 입원은 만병통치약이 아닌 듯했다. 하지만 계속 어머니를 돌보는 건 자신이 없었다.
사실 반년 전부터 우리 부부는 시부모님을 같은 아파트로 이사하게 하여 돌볼 계획을 세웠었다.
비탈길이 없고, 병원이 가까이 있어서 걸어가도 되는 곳에 집을 마련하여 두 분도 편히 지내고,
우리도 수시로 찾아 돌보려고 했다. 사실 그 정도로 시어머니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오랫동안 살던 동네를 떠나기 싫다고 하셨다. 내 딴에는 큰 맘을 먹은 거였는데 싫다시니 어쩔 수 없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퇴원 후에도 어머니는 밤낮으로 돌봄이 필요했다.
다행히 시아버지가 밤에 옆에서 도울 수 있다고 하여 낮에 요양보호사가 오는 것으로 해결을 했다.
하지만 요양보호사가 오지 않는 주말은 온전히 우리 부부의 몫이었다.
남편은 주말마다 시댁을 청소하고, 시댁에서 나오는 재활용 쓰레기까지 우리 집으로 가져가서 버렸다.
나도 드시는 것이 부실할 것 같아서 주말이면 더 입맛 도는 음식을 해드리려 애를 썼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은 별로 빛을 발하지 못했다. 시어머니는 나날이 기력이 떨어졌다.
평일에는 엄마를 찾아가 만나고, 주말에는 시댁에 매달렸다. 짬짬이 출판사에서 들어오는 일을 하고,
가끔은 지방으로 강연을 다녀오기도 했는데 그 당시 일은 나에게는 돌파구였다. 부모님의 일에서 놓여나 온전히 나로 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일할 때였다. 그리고 또 하나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다. 엄마를 모시고 떠날 여행이었다. 아빠를 떠나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은 여행을 제안했다.
“엄마 아빠 돌보느라 편히 해외여행 한번 가지 못하셨으니 모시고 가자. 내가 해외면허 신청해서 엄마랑 누나들 차로 잘 모시고 다닐게. 엄마 지금이 가장 젊으신 거니 미루지 말자고.”
장례식을 마치고 동생은 그렇게 말했다. 가까운 일본으로 여행지를 정하고 동생은 열심히 일정을 짜고, 숙소를 예약했다. 그리고 운전자의 위치가 우리와 다른 일본에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 일본도로 운전 시뮬레이션까지 하고 있다고 했다.
엄마와 우리 형제만 떠나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충분히 설레는 일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 시어머니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시부모님에게 애를 쓸 때면 떠나보낸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괴로웠는데, 이래도 저래도 걸리는 맘은 항상 따라다녔다. 그 마음을 덜기 위해 나는 여행 가기 전날까지 시어머니를 도맡아서 돌봤다. 남편을 부추겨서 시어머니 목욕까지 해드리고 여행에 나섰다.
공항은 여행객으로 가득했다. 떠나는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행복해 보였다.
나도 그 무리에 끼어 그런 기분을 만끽했다.
천천히 비행기가 떠오르고 우리는 하늘 위에 이르렀다.
창밖으로 늘 쳐다만 보던 하늘이 보였다.
비행기를 처음 탄 게 아니었으니 처음 보는 하늘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그 하늘에서 뭔가를 찾고 있었다.
하늘에 뭔가가 있을 것만 같아서 자꾸만 고개를 빼서 하늘을 보게 되었다.
그건 아빠였다.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하늘나라로 간다고 한다.
관용어처럼 하는 말이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남아있었던 건지.
나는 어처구니없게도 하늘을 나는 비행기 속에서 아빠를 찾았다.
하늘나라로 가신 아빠를 보게 될 것처럼 말이다.
아빠 보고 싶어요.
함께 했던 여행이 언제였더라..
너무 아득하기만 해요.
엄마랑 여행을 가는데 너무 늙으셨어요.
사실 우리도 그렇지요.
그래서 우리 더 빨리 만나겠지요?
비행기를 타고 하늘 높이 올라왔는데 거기에 아무것도 없어서,
구름뿐이어서 맘이 이상해요.
무척 허전하고, 서운한 그런 느낌이에요.
하늘이 그런 모습인 걸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속은 것처럼 원망스런 맘이 들고, 그래서 눈물이 나요.
아빠, 삶은 선택의 연속이에요.
나의 선택으로 달라지는 결과와 관계에 괴로워하는데
어떤 이는 그 선택은 네가 한 것이 아니라 정해져 있었던 거라고 말해요.
운명이라는 거겠지요.
그러니 선택의 결과에 잘난 척도 자책도 말라고 하는데
그게 정말인지 잘 모르겠어서 나는 계속 자책을 하고 있어요.
무척 괴롭지요. 어떤 때는 견디기 힘들 만큼요.
하지만 아빠가 떠나시며 내게 확실히 정해주고 가신 것은 있어요.
절대 삶을 쉽게 포지 않는 거요.
내 삶은 나 혼자의 것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혼자서 정리하고 끊어낼 수 없다는 것.
나는 그런 책임감으로 열심히 살아내고 있어요.
내 앞에 닥친 일을 그때그때 해나가자는 생각으로요.
모두 아빠가 남긴 기억이라고 생각해요.
아빠가 남겨 준 것이 저를 살게 할 거예요.
요즘에는 다른 이의 고통과 슬픔을 덜어내는데 함께하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한편으로는 아빠를 더 돕지 못했다는 자책에 괴로워요.
그래서 삐딱해지곤 하는데
이것도 살아내야 할 삶이니 어쩔 수가 없네요.
이렇게 하루하루 살다가 우리 다시 만나는 거겠지요.
아빠, 고맙고 너무너무 그리워요.
그리움이 맘에 다 차지 않게 하려고 애쓰며 지내고 있어요.
아빠 생각이 차오르면 머리를 흔들어 털어내듯 덜어네요.
그래야 현실을 살 수 있지요.
사랑하는 아빠.
지금 이 말이 다 무슨 소용일까 싶기도 하지만
고맙고, 그립습니다.
그곳에서 진정으로 평안하시기 바라요.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사는데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