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14. 약점 많은 자식

by 스토

그날은 시아버지의 비뇨기과 대리 진료가 있는 날이었다.

거동이 부쩍 불편해진 시어머니는 매주 재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어떤 때는 시어머니보다 시아버지 병원 일이 더 많았다. 시아버지는 당뇨로 정기적인 진료를 받다가 발가락 염증으로 간단한 수술을 받으시고, 그때 발견된 비뇨기과 이상으로 비뇨기관 진료도 보고 있다. 내분비내과에 이어 발가락 치료를 위한 성형외과까지 세 개 과를 돌아가며 진료를 봐야 해서 설명하기도 복잡한 상황이었다. 시누이와 나는 이 복잡한 과정을 나눠서 쫓아다녔다. 시부모의 병환이 깊어지면서 시누이의 몫이 커지고 있었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일이 늘어나니 아무래도 친자식이 나서야 했다. 나는 내가 할 일을 찾아서도 했지만 시누이가 맡기는 일도 했다. 시누이가 맡긴 대로 시아버지 비뇨기과를 대리 진료하기 위해 의사를 만났다.




한껏 드라이한 의사는 눈 한번 맞추지 않고 묻는 말에만 대답을 했다. 의사가 친절하지 않다는 건 시누이한테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는데, 의사의 태도보다 더한 것은 진료 내용이었다. 시아버지 방광에 있는 혹은 암일 확률이 높다고 했다. 암이 전이되면 방광을 드러내고 인공 방광과 오줌 줄을 몸 밖에 달고 평생 살아야 하며, 온몸으로 암이 전이되면 무척 고통스럽게 죽게 될 거란다. 의사는 그 참담하고 무서운 말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전했다.

나는 모든 내용을 차마 남편과 시누이에게 전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고통스럽게 죽게 될 거라고 했던 의사의 말은 뺐다. 그리고 나보다는 시누이가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궁금해하실 시부모님께 설명해 달라고 말했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데 나는 늘 시아버지가 불편했다. 가끔 시어머니에게 함부로 하는 모습을 보일 때면 힘들게 참아내야 할 만큼 내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은 분이었다. 그래서 함께 한 세월에 비해 그리 편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끝이 이런 고통이라니 안타깝고, 안타까웠다.




심란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전화해 보라고 재촉을 하신 것 같았다. 시누이에게 설명해 줄 것을 부탁했지만 하는 수 없이 간단하게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를 해드렸다. 시어머니는 절대 수술은 안된다고 하신다. 시어머니는 다 늙어서 수술하는 것은 고생만 할 뿐 병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계셨다. 나는 친자식이 아니라 맞다고도, 그렇지 않다고도 말하기 어려웠다. 다만 맘 편히 가지시라 위로할 뿐이었다. 그리고 안부를 물을 뿐이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너무 힘들어서 그냥 죽고 싶다고 하신다. 시어머니는 심한 우울감을 느끼고 있는 듯 보였다. 내가 웃으며 왜 그러시냐는 둥 떠들어도 별 반응이 없었다.

얼마 전 나는 시어머니의 냉장고를 정리했다. 요양보호사가 식사 준비를 하니 냉장고는 오래된 식자재며 먹고 남은 음식들이 가득했다. 남의 살림이니 함부로 버릴 수 없어서 그리 되었을 것이다. 나도 시어머니 살림을 정리한다는 게 망설여지긴 했지만 내가 나서지 않으면 누구도 정리하지 않을 상황이라 나섰다. 그러자 어머니는 내가 물건을 많이 버린다며 싫은 소리를 하셨다. 평소라면 하지 않을 말이었다. 당신이 힘이 드니 체면이며, 다른 사람 맘이며 헤아릴 수 없는 상태 같았다. 그런 모습이 불편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데 나는 안다. 그분에게 필요한 것은 나도, 어머니를 돌봐주러 찾아오시는 교회 권사님도, 장로님도 아니라는 거. 오직 가족, 친자식 정도 되어야 위로가 될 것이고, 안정감을 느낄 것이다. 가족은 그런 존재였다.



내게도 아들은 그런 존재다.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는. 주말 아침, 남편과 입대한 아들 면회를 갔다. 늘 그렇듯 아들을 만나면 우리는 주책바가지 부부가 되어 웃고 떠든다. 고생하는 아들을 위로하고, 아들이 아무 걱정 없이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아들과 아침을 먹은 후, 아들이 친구를 만나러 떠나고 우리는 시댁으로 향했다. 남편은 낮에는 요양보호사 일을 하는 교회 권사님 부부가 와계시니 저녁에 가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해가 좋을 때 시어머니를 운동시켜 드리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고생하는 권사님도 가서 쉬시게 하고 말이다. 가는 길에 드실 음식을 사가려는데 아무것도 싫다신다. 어머니는 내게 했던 말을 남편에게도 했다. 죽으려나 보다고.

결국 급하게 병원을 알아보고, 우리는 영양제를 맞기로 했다. 얼마나 힘드신지 싫다는 말없이 나설 준비를 하셨다. 병원에 가는 일은 정말 큰 일이다. 시댁은 2층이라서 늘어선 계단을 내려오고 올라가는 일은 어머니 몸 상태로는 상상하기 힘들다. 건장한 남자가 나서줘야 그나마 일을 꾸밀 수 있다. 일분이면 내려올 계단을 시어머니는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일처럼 내려오셨다. 다음은 차에 타는 거다. 차 문을 열고 몸을 돌려 엉덩이부터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다리를 잡아 한쪽씩 안으로 옮겨주어야 차 타기가 끝난다. 이런 복잡한 과정은 병원에 도착해서도 계속 이어진다.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링거를 맞고, 어머니는 눈빛이 달라졌다. 똘망해졌다. 남편은 희망이 생기는 듯 보였다.

그 순간 난 아빠를 모시고 영양제를 맞으러 갔을 때 일이 떠올랐다. 아빠도 시어머니와 상태가 별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힘들게 병원에 갔는데 의사는 아빠가 고령인 데다 혈압이 너무 높아서 링거를 맞을 수 없다고 했다. 참 더운 여름날이었는데, 헛걸음을 하고 다시 돌아와야 했다. 힘들어서 링거를 맞으러 간 거였는데 맞지도 못하고 더위에 축 처져 더 힘들어진 몸으로 돌아왔었다. 내가 남편처럼 건장했다면 다른 병원을 찾아다는 등 뭐든 척척이지 않았을까? 나는 작고, 힘이 약했던 내가 너무 싫었다. 그건 나의 너무 큰 약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