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보는 메모

15. 시부모님이 오셨다

by 스토


시부모님이 우리 집에 다녀가셨다.

사실 아빠가 사경을 헤맬 때도 나는 이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당시 복잡한 부동산 정책으로 우리는 반드시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살던 집을 빼고 이사 가는 것이 순서니, 아빠가 돌아가신 순간에도 집 보러 온다는 사람이 있었다. 아픈 시어머니를 우리 집에서 돌볼 때도 집 보러 오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늘 머릿속이 복잡했다. 늘 그리운 아빠 생각에 눈물을 흘리다가도 아픈 시부모를 돌보러 시댁과 병원을 오가고, 이사해야 하니 사는 집을 빼는 일과 이사 갈 집에 살던 사람의 이사까지 챙기고 살펴야 했다. 상황이 이러니 이사 준비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나는 그냥 짐만 제대로 옮겨 놓자 마음먹었다. 이사 가면 가구며 인테리어를 바꾸려던 오랜 계획이 있었지만, 그런 걸 챙길 여유가 없었다.




집 정리는 아직 멀었는데 시부모님이 궁금하시다고 오셨다. 당연히 궁금하셨을 것이다. 그런 맘일 것을 알았지만 정리를 좀 하고 모시려 모른 척하고 있었다. 그러자 시누이가 나서서 부모님을 모시고 오겠다고 했다. 간단하게 짜장면을 시켜 먹자고 했다.

거동이 불편한 시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미리 휠체어를 빌려두었다. 어떤 날은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같은 날 종합병원에 가야 해서 시누이와 내가 모두 출동을 했다. 진료를 마치고 시누이 차에 휠체어 하나, 내 차에 하나씩 싣고 왔다. 그리고 이제 그 휠체어로 한 분씩 태우고 동네 산책을 할 참이었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동네 산책 한 바퀴 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픈 부모님을 모시는 일은 커다란 아기를 돌보는 것과 비슷하다. 아기처럼 보채지 않는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간단하게 먹을 줄 알았던 점심 메뉴는 ‘회’로 바뀌어 남편이 횟집으로 포장을 하러 가고, 나는 정리 안 된 주방에서 급하게 쌀을 찾아 밥을 하려다가 의자에서 떨어져 다치고 말았다. 내 몸 아픈 거야 그나마 간단한데, 문제는 시어머니의 상태였다.

오랜만에 드신 회가 맛있었는지 먹여 드리는 대로 입에 받아 드시더니 다 삼키지 못하고 입에 가득 고여 있었다. 섭식 장애가 있는 시어머니니 상상 못 할 일이 아니었다. 입안 가득한 음식을 빼내고 다시 천천히 음식을 먹여드렸다. 부모님을 챙기느라 남편도 나도 시누이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다시 힘을 내서 우리는 산책을 나갔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다시 낼 힘 있었지만 시어머니에겐 아니었다. 시어머니는 자식들의 장단에 맞춰주느라 애를 쓰는 모양새였다. 산책이랄 것도 없이 서둘러 집으로 들어와 소파에 몸을 뉘었다. 평소보다 푸짐한 점심 식사를 하셨으니 시아버지도 그쯤 되면 한숨 자고 싶었을 것이다.

시누이는 두 분에게 한숨 주무시며 쉬시라고 청했다. 그리고 자기는 일이 있어서 가야 한다고 했다. 두 개의 휠체어는 그대로 두었다가 다음 주에 다시 와서 산책을 할 때 쓰라고 했다. 난 모두 처음 듣는 말이라 당황스러웠다. 깊은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다잡고, 시누이에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사 온 첫 주말이니, 짐 정리를 못한 건 시누이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텐데 너무 몰아붙인다 싶었다.

하지만 시누이는 자기 동생, 그러니까 내 남편과 모두 이야기된 거라고 했다. 문제가 있다면 남편과 나, 둘이 이야기해서 해결하라고 말했다. 아, 이건 또 뭘까 싶었다. 남편을 돌아봤지만 남편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 얼굴을 하고 있다. 아마도 시누이와 남편이 다정한 오누이가 되어 부모님 돌보는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남편은 그 이야기를 나에게 세세하게 전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난 한다고 하는데 뭐가 끝이 없고, 난 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나쁜 사람이 되곤 했다.

친자식과 그들의 부모 사이에 끼여, 난 왜 이리 늘 머리가 아픈 걸까. 가슴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차마 표현할 수는 없었다. 난 다시 가슴을 쓸어내리며 참았다.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내 몸 하나 다스리기 힘들 정도로 아픈데 뭐가 막 많았다. 힘없이 소파에 누워 주무시는 시부모를 보니 다시 아빠 생각이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이러다 나만 미치고 말겠구나 싶었다.




생각은 간단하게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 삶도 간단해진다.

일이 너무 많아서 몸도 마음도 자꾸만 지쳐가는데 이럴 때일수록 간단하게 생각해야 한다.

먼저 시부모님은 평일에는 요양사분들이 계시니 안심.

주말에는 남편이 주가 되어 돌보는 걸로 우선 생각하자.

엄마는 언니가 가까이 있고, 동생과 내가 자주 찾아 봽는 걸로 안심.

이사는 이제 짐은 다 들였고, 붙박이장만 하면 큰 일거리는 사라지는 셈이니 조금만 더 고생하면 된다. 그리고 나머지는 시간 날 때마다 하나씩 맘에 드는 걸로 사서 채우고, 바꾸고 그러면서 버리자.

원고 수정과 강연 일정이 있지만 그건 새벽 시간에 일어나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준비하고 해내면 된다. 혼자서 해내야 하는 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난 오랫동안 많은 일을 아무 문제 없이 해왔으니까.

아들 방을 멋있게 해주고 싶은 맘에 조바심 내지 말고, 그것도 하나둘씩 해나가자.

그 애는 내 아들이고, 늘 여유로운 아이니 나만 괜찮으면 다 괜찮다.




난 이렇게 하나씩 써가면서 나를 안심시켰다. 나에겐 나를 지키는 몇 가지 방법이 있었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는 손바닥으로 연신 가슴을 쓸었다. 그렇게 하면 그립고, 불안한 마음이 다독여지기도 하고, 쓸어내지기도 했다. 아빠를 떠나보내고는 채머리를 흔들곤 했다. 아빠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면 울음이 참아지지 않아 엉엉 소리 내 울었는데, 나는 나를 그 상태까지 가게 하지 않으려고 머리를 흔들어댔다. 그렇게 하고 나면 정말로 생각이 좀 줄어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쫓기고, 그래서 불안할 때면 내 앞의 일을 종이에 적어서 정리했다. 그러면 일의 우선순위가 보여 간단해졌다. 다른 이를 돌보고, 챙기느라 정신없는 하루하루였지만 그렇게 나도 돌봐야 살아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