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남편, 괜찮아?
이사 후, 집안 정리도 얼추 되어가고,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도 차츰 안정이 되었다.
오랜만에 친정집에 갔는데 가까이 사는 언니가 너무나 엄마를 잘 돌봐주고 있어서 고맙고, 든든했다. 어릴 때 싸우기도 많이 싸웠는데 언니에게 이리 감사하며 살게 될지 몰랐다. 게다가 언니는 돌아가신 아빠 꿈을 꾸었다고 했다. 꿈이라고 해도 아빠 이야기는 반가웠다. 꿈속 아빠는 젊을적 잘생긴 모습이었다고 한다. 언니를 보고 아주 환하게 웃으셨다니 전해 들으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엄마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엘리베이터 복도에서 옆집 할아버지의 힘겨운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가 매주 투석을 하며 힘겹게 지내신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하얀 얼굴에 성악을 전공한 듯 고운 목소리를 가진 할머니는 할아버지 돌보느라 살이 쏙 빠졌다고 했다. 그 모습에 나는 또 다짐 같은 생각을 했다.
그래, 떠날 때 떠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아빠는 좋은 얼굴로 꿈에 보이고, 엄마도 우리도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우리는 서로 그렇게 좋은 얼굴이 되어갈 것이다.
그리고 다시 훗날 좋은 얼굴로 만날 것이다.
아빠와의 인연은 행운이었고, 기쁨이었다.
지나고 나서 그것을 알아 미안하고, 아쉬울 뿐이다.
이제 아쉽고, 미안함은 덜어내고 잘 살아보겠다.
아빠가 원하는 건 그런 거라고 언니가 말했으니까.
오랜만에 나는 약속을 잡았다. 내가 두문불출하는 건 친구들도 알고 있었다. 아빠를 떠나보낸 슬픔에 감정이 불안정했고, 감정을 돌볼 틈 없이 시부모님의 병환으로 바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살다가는 나도 온전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큰맘 먹고 친구와 전시회를 가기로 하고, 언니랑 콘서트를 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 시간을 얻기 위해서는 치러야 할 일이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시댁에 가져서 먹을 음식을 챙기는 거다. 뚜껑만 열만 먹을 수 있게 음식을 담고, 냄비에 데워서 바로 떠드릴 수 있게 국을 챙겼다. 따뜻한 커피 한잔 내려 마시고, 점심시간에 맞춰 남편과 함께 시댁으로 향했다.
전시회는 따로 시간이 정해진 것이 아니니 점심을 챙겨 드시게 하고, 저녁 거리만 남편에게 부탁을 하고 나섰다. 콘서트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점심과 저녁을 모두 남편이 차려 드릴 수 있게 해두고 나섰다. 남편도 그간 나의 고생을 아는지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 부추겼다. 그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다. 막혔던 숨이 쉬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이삿짐을 정리한다든지, 마감에 맞춰 글을 써야 하는 일이 있을 때를 빼고는 늘 남편과 함께 시댁에 갔었다. 내가 주방일을 맡아서 하면, 남편은 청소를 하고, 식사 준비를 해놓으면 남편이 시부모님을 모시고 식사를 했다. 시어머니는 식사 시중을 들어줘야 그나마 식사를 더 하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콘서트를 다녀온 일요일에 일이 터지고 말았다. 밤산책을 나갔는데 남편이 낮에 시댁에서 아버지와 다퉜다고 했다. 왜 그렇게 혼자만 참고 애를 쓰나 싶었는데 그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우리만 보면 병원 가는 이야기를 쏟아내곤 하던 시아버지는 그날도, 그 전날도 마찬가지였다. 급기야 일요일에는 우리 부부 둘이 와서 당신을 데리고 병원에 가라고 했다. 시아버지는 걸음도 잘 걷는 편이라 혼자서 모시고 가도 충분했다. 그런데 병원에 주차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그런 생각을 해낸 것이다. 나는 뭐라 답해야 할지 할 말이 없었다.
내가 공연을 보기 위해 시댁을 나서고 혼자 있던 남편은 계속되는 시아버지의 요구에 화를 내고 말았다고 한다. 시어머니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우리는 모두 예전 같지 않았다. 늘 불안하고, 걱정되니 몸도 마음도 힘이 들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쓰러져 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서로 조심하는 마음이 필요했다. 누구 한 사람만 힘든 것이 아니니 한 사람만 위로받고, 한 사람만 이해해 줄 수 없는 거였다. 결국 보채듯이 이것저것 요구하는 시아버지에게 남편이 싫은 소리를 한 것이다. 그런 남편에게 시아버지는 서운하다며 부모 자식의 연을 끊자고 했단다. 나는 그게 그렇게 쉽게 할 소린가 싶어 화가 났다.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애쓰는 남편을 안타까워하지 않는 시아버지에게 서운했다. 그간 내가 챙겼던 수많은 식사는 시아버지를 챙긴 것과 같았다. 워낙 식성이 좋아서 먹을 것이 있으면 신기하게도 시아버지가 떠오르곤 했다. 그래서 결국 더 챙기는 꼴이 되었는데 그 공도 없이 막말을 들은 기분이었다.
내내 불편해하던 남편은 결국 월요일에 월차를 내고 아침 일찍 시댁으로 갔다.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늦잠을 자지 못하고 나섰다. 시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는지 시동생이 병원을 모시고 간다는데도 맘에 걸려 어쩔 수가 없단다.
다시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상황으로 시아버지도 편치 못할 것을 안다. 하지만 나도 그랬고, 남편도 그랬다. 우리는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 다른 사람을 돌보고, 헤아리는 것은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이지 할만해서일 때가 없다. 그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