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많이 사랑했네요, 제가 아빠를
아빠가 떠난 겨울을 지나 봄으로 향하면서 날이 풀리듯이 맘이 조금씩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다 늦은 산책길에 아빠처럼 힘겹게 걸음을 떼는 한 할아버지를 보았다. 갑자기 눈물이 솟구쳤다. 눈물을 참으려 하늘을 보고, 고개를 뒤로 젖혀봐도 눈물은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불시에 일격을 당한 셈이다.
이런 일격은 사실 자주 있었다. 전철을 탔는데 역시 아빠 또래의 할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난 할아버지 옆으로 가서 앉았다. 할아버지는 근처 종합병원을 다녀가시는듯 했다. 큰 약봉지를 내 옆에 두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대로 둔 약봉지를 치웠으면 했을 텐데, 아빠 같은 할아버지라서 아무렇지 않았다. 힘겹게 앉은 할아버지를 보며 전철에서 주책맞게 눈물이 나려 해서 또 참느라 아주 애를 먹었을 뿐이었다.
아빠를 잘 보내고 살아보리라, 명랑하게 살겠다 생각했는데 그건 그냥 겉 다짐이고, 난 아직인가 했다. 아니다, 어떻게 무 자르듯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나. 그런 날도 있고, 아닌 날도 있겠지. 그렇게 그런 식으로 살고 사는 거겠지.
오늘은 아빠 산소에 간다.
아빠를 산에 모시면서 산소 공사를 다시 하기로 했다.
아빠는 ‘화장’이 싫다고 하셨다. 아빠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또렷하게 들려준 이야기는 그게 다였다. 그래서 장례를 할 때도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거라도 또렷하게 일러 준 것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오늘이 공사 시작하는 날이다. 봉분 앞에 잔디를 더 심고, 땅을 고르며 빗물에 흘러내리지 않게 축대도 새로 하기로 했다. 엄마는 가까이에서 언니가 늘 챙기니 이건 내가 해야겠다 싶었다. 엄마에게 아빠에게 간다는 말을 하고, 아빠에게 가기 위해 어제 저녁 황태포와 막걸리를 샀다. 혼자 마트에 들러서 황태를 찾는데 다시 주책맞게 눈물이 났다. 마스크를 하면 그래도 가려지는데 주머니에 넣어두던 마스크가 없어서 나도 내가 곤란했다. 옆구리에 황태와 막걸리를 껴들고 집으로 가는 길 내내 눈물이 났다.
여전히 아빠가 떠나신 것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아 슬프다.
아빠가 여전히, 오랫동안 그랬던 것처럼 집에 계실 것만 같다.
하지만 어디를 가도 아빠의 목소리는 들을 수가 없다.
그저 내 머릿속 기억에만 남았을 뿐이다.
나는 이제 그리 똑똑하지도 또렷하지도 않은 사람이 되었는데 아빠의 기억이 희미해지면 어쩌나.
그러면 다신 못 보는 건가 싶어 다시 슬펐다.
며칠 후면 산소 공사가 끝난다.
산소를 잘 고치고 나면 갈 곳 없을 때 가서 바람 쐬고 오면 좋을 거 같다.
아빠를 소풍처럼 기억하며 살면 될 거 같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지만 그곳에서 만나면 좋겠다.
아빠, 잘 지내고 계세요.
많이 사랑했네요, 제가 아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