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잘 떠나보낼 수 있을까
겨울은 아빠와 시부모님의 생신이 있는 계절이었다.
장례를 치르고 얼마 되지 않아 시부모님 생신이었다.
남편은 나 편한 대로 하라고 했지만 그냥 모른척할 수는 없었다.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를 부축하여 예약한 식당으로 갔다. 그리고 옆에 앉아 식사를 도와드렸다.
나름 애를 썼는데 그러고 나니 난 다시 힘이 들었다.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시부모님을 뵙고,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아빠 생각이 더 간절했고, 감정이 심하게 흔들렸다.
다시 새벽이 두려울 정도로 힘이 들었고
난 이 감정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엄마에게 가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만에 엄마 집에 들어서니 엄마는 아빠가 너 왔다고 웃는다는 농담을 했다.
‘그래, 아빠가 나를 좋아하지’ 하며 아빠 영정에 절을 하는데 눈물이 흘렀다.
아빠가 나를, 나를...
나는 좋아하는 아빠가, 나를 좋아하는 아빠가 돌아가셔서 몹시 서럽고 슬펐다.
그런 아빠가 그리웠다.
엄마에게 뭔가 자꾸 묻고 싶었다.
우린 괜찮은 건지. 아빠는 괜찮은 건지. 그냥 엄마는 알고 있을 것만 같았다.
엄마는 아빠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니까.
엄마랑 마주 앉아 차를 마시다가 아빠 얘기를 슬쩍 꺼냈다.
“엄마, 아빠는 오래 사신 거지?”
“그럼, 원 없이 살다가 갔지. 이달이 아빠 생일이니까.”
“그런 거지? 아빠는 돌아가실 때 고생도 덜한 편이야, 그치?”
“그럼, 그 정도면 고생 안 한 거지. 잘 살다 가셨어.”
난 엄마의 그 말이 좋았다.
그러면서도 자꾸만 더 확인을 하고 싶은 걸 엄마의 마음을 혹여라도 다치게 할까 싶어 참았다.
그리고 언니와 단둘이 있는 시간에도 아빠에 대한 걸 자꾸 물었다.
나는 아빠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아빠가 괜찮았는지 자꾸 걱정이 되어 묻고 싶었다.
아빠가 속 시원히 이야기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거 같았다.
그런데 그건 불가능하고, 나 혼자만 아빠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엄마가 11월에 담은 김치라며 꺼내 주었다. 아빠가 김치 썰기 귀찮으니 아예 썰어서 담으래서 썰어 담았다는 김치였다. 엄마가 아무렇지 않게 그 말을 하는데 우리는 모두 아차 싶은 감정이 들었다.
너무나 자연스런 아빠의 말들이 이제는 사라져 버린 것이 믿을 수 없이 괴로웠다. 난 요즘 자꾸 고개를 가로젓는다. 채머리를 흔든다. 있을 수 없는 일인 양, 믿지 못할 일인 양. 그래도 아무 소용이 없는데도.
그렇게 그렇게 괴롭다가 난 오후 들어 생각을 하나 정리했다.
"엄마, 아빠는 좋은 사람이라서 엄마를 더 고생시킬 수 없었던 거야.
엄마 평생 고생했는데 계속 그렇게 할 수는 없어서 아빠가 엄마 좀 쉬라고 그리 떠나신 거야.
그러니 엄마, 이제는 고생하지 말고 편하게, 좋은 거 보고, 먹으며 살아.
아빠는 엄마 그러라고 하고 가신 거야. 알았지?"
내 말에 엄마는 특별히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언니는 그러자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아빠는 엄마에게 편히 쉬는 시간을 선물해주고 싶었을지 모른다. 자기 때문에 엄마가 너무 고생을 하니까.
나는 내가 편한 대로 생각을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아빠를 그렇게 기억하려고 한다.
아빠는 우리 얘기를 잘 들어주시던 분이니까 분명 그런 생각도 하셨을 거다.
난 아빠를 아주 많이 닮았다. 많이 닮은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빠랑 가장 비슷할지 모른다.
난 그런 아빠를 분명히 만날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