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어떤 불안감이 있다. 때로는 이런 상태가 나를 매우 열심히 사는 사람인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도록 잘 포장해주지만, 그럴 때마다 속은 정말이지 한껏 식은땀을 흘린 것처럼 어딘가 찝찝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은 어쨌거나 '불안감'이라는 요소가 오늘도 나를 살게 하는 힘이 될 때도 있다는 것이다.
처음 이런 감정이 생겨났던 건 20대 중반 정도 무렵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 나는 굉장히 비현실 주의적이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들에 내 능력을 과대평가했었고, SNS에서 심심찮게 보이던 젊은 나이에 성공하여 스포츠카를 구입했다는 사진들을 보고서, 나는 어떤 구체적인 노력들도 하지 않은 채 "서른이 되기 전에 꼭 포르셰를 살 거야"라는 다짐을 하곤 했다. 이런 나를 보며 나와 가까웠던 몇몇 사람들은 내게 낭만적이라고 했다. 이유 없는 자만감에 듣기 좋은 말이 더해지자 나는 스스로가 정말 뭐라도 이뤄낸 사람처럼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스스로를 낭만주의자라고 생각했던 시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잘 될 사람이니까 지금을 즐기자며, 요즘 대세는 'YOLO'니까 오늘을 살자며 흥청망청 돈과 시간을 쓰는 동안 나는 '골로'갈 뻔했다. 실제로 죽을 뻔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한 끼 식사에 1만 원 이상씩 쓰던 내가, 통장에 남아있는 금액을 보고 이 상태라면 한 달 뒤에는 집세 조차도 내지 못할 상황에 마주하자 지금껏 내가 믿고 행동했던 모든 것들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결국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좀 보내줄 수 있냐고 여쭤봤고, 전화기 너머로 당신의 잔소리를 한참이나 듣고 나서야 비로소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 나는 현실주의자가 됐다. 그래도 가끔씩은 "열심히 일해서 좋은 집, 좋은 차를 살 거야"와 같은 다짐을 하고는 하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항상 그만큼 혹은 그 이상의 노력과 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과거와 지금의 차이점인 것 같다.
그래서 언젠가 이루고픈 목표들을 위해 나는 어제도, 오늘도 마냥 열심히 살고 있다. 퇴근 후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집에서 혼자 공부를 하고, 언젠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부족하지만 한 글자씩 글을 써 내려가고, 아직 1편밖에 올린 건 없지만 오늘은 유튜브에 어떤 강의를 올릴지 고민한다. 거실 책상에 앉아 혼자 이런저런 행동들과 고민들로 몇 시간을 보내고 시계를 보면 어느덧 다음날 출근을 위해 잠에 들 시간이 다가온다. 보낸 시간들에 비해 뭐 하나 제대로 해낸 것 없는 시간들이었는지, 이대로 침대 위에서 눕기에 아쉬움이 큰 편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잠에 들기 위해 몸을 눕히고 불을 꺼도 머릿속이 복잡한 탓에 이런 날이면 완전히 수면 상태에 들기 전에 알 수 없는 불쾌감이 들고는 한다. 지금에서야 그 불쾌감의 원인을 생각해보면 그건 아마 "나 잘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이런 불안감에 속이 쓰리거나 편두통으로 인해 머리가 지끈 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글을 쓰고 강의를 촬영해 올리는 일을 하는 걸 아는 몇몇 사람들은 내게 말해준다.
"글 잘 읽고 있어"
"강의 잘 봤어"
"다음 글은 언제 올라와?"
원인 모를 병에는 약도 없다던데, 이런 말들을 들으면 그래도 조금은 몸이 진정되는 느낌이다. 그들은 내게 직접적으로 '너는 잘 될 거야"라고 말해주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그들로부터 내가 만들어내는 어떤 결과물들을 기다려주는 듯한 어떤 기대감을 나는 종종 느끼고는 한다. 이런 순간에 피어오르는 감정들은 내 몸을 기분 좋게 떨리게 만들어 주고, 오늘은 퇴근 후에 설레는 마음으로 또다시 나만의 작업시간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내가 오랫동안 이루고 팠던, 내 머릿속에 그림들로만 존재하는 목표들이 언제쯤 현실세계에서 마주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가끔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혼자 책상에 앉아 작업에 몰두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가끔씩 들려오는 누군가들의 기대와 응원 섞인 말들에 나는 오늘 하루도 애쓰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