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피로가 비에 젖은 꽃잎처럼 찰지게 엉키고 쌓인 오후 시간에는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말도 하기 싫고 움직이기도 싫은데 말도 해야 하고 움직여서 일도 해야 한다.
비에 흠뻑 젖어 떨어진 꽃잎의 축축한 습기가 온몸에 스며들어 함께 찰지게 엉키고 눌려 있을 즈음 책상 옆에 던져둔 스마트폰은 제 이름값을 한다.
나와 함께 한없이 낮아지고 잦아들었는가 했더니, 글쎄 아직 살아있었던 거란다. 습한 기운에 눅눅해지면 제 생명이 사라지는 것임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본능이 이렇게 무섭다. 어떻든 그는 살아 있으니 제 의무를 다할 뿐이고 그렇게 살아 있어 움직여 주니 나에게 움직일 기운을 주는 가 보다.
친구가 퇴근 후 보자고 한다. 밥을 먹자거나 술을 마시자고 한 것은 아니다. 무얼 하자는 것인지는 말이 없다. 아무래도 괜찮다. 아무래도 다 좋다.
오늘 아침부터 하염없이 쏟아져 길가 꽃잎을 눅눅하게 침잠하게 했던 비는 스스로 자기가 올 거라고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냥 오는 것뿐이다.
다만 사람들이 그가 올 거라고, 많이 올 거라고, 때로는 천둥 번개를 동반할 것이라고 떠들어 댈 뿐이다.
온다고 하지 않고 와도 반갑고 갑자기 온다고 하고 바로 이어서 나타나는 이들은 더 반갑다.
그래서 만나면 밥을 먹어도 되고 함께 걸어도 되고 술을 마셔도 되고 차를 마셔도 된다.
“오늘 볼까?” 이것으로 모든 걸 다했다. 특히 움직이기 싫은 지친 하루의 끝에 이런 카톡은 갑자기 말도 하고 싶고 움직이고도 싶은 이상한 결심을 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