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일기) 초가을 투명한 햇살이 따가운 것은

by 올제


동네 공원 게이트볼은 매일 아침 운동 삼아 모인 어르신들이 많다.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몇 달 정도만 만나도 그들은 쉽게 친구가 된다.


나이는 필요 없다. 살아온 세월은 다 다르지만 현재 그들은 공원에 나와서 게이트볼을 칠 수 있는 정도의 건강과 맑은 정신이 있다는 공통점만으로 충분히 결속이 된다.


게이트볼을 치다가 모여 앉아 각자 조금씩 싸 온 간식을 꺼내면 이보다 즐거운 소풍이 없다. 뜨끈한 맥심 커피를 종이컵에 태워서 커피 스틱 봉지를 푹 담가 휘휘 저어 드신다.


때마침 한 할머니가 화장실에 가겠다고 일어서 천천히 앞만 보고 걸어가신다. 분명 오전이고 태양이 환하다.


“할머니~~~!”, “저기요, 할머니~~~!!”


할머니는 계속 앞으로 걸어가신다.


그때 쇳소리 같은 절대고음이 뒤통수에 와닿는다.


“할머니~~~!!! 사람이 부르는데 왜 자꾸 씹고 지랄이세요? 우리가 아까부터 불렀잖아요. 씨팔!!!!!”


귀도 잘 안 들리고 아는 사람도 없어서 열심히 화장실을 향하던 할머니가 어린 여학생들의 고함 소리에 그제야 발길을 멈추고 돌아선다.


공원 벤치에 교복을 입은 앳된 여학생 셋이서 담배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다.


순간 할머니가 멈칫 갈등을 하는 눈빛이다.


할머니는 학생들에게 다가가서 공손하게(?) 대답한다.


“에고 학생들, 내가 미안해요. 귀도 잘 안 들리고 나를 부르는 소리인지 미처 몰랐어요!"


가장 세 보이는 학생이 눈을 치켜뜨며 한 번 더 찰지게 말한다.


“사람 말을 씹고 그러면 안 되죠, 할머니? 알았으면 가던 길 가세요옷!!! 재수 없어 증말.”


초가을 따가운 햇살을 쐐기처럼 등에 꽂은 채 게이트볼 친구들에게 돌아온 할머니가 벌벌 떨면서 조금 전 이야기를 하신다.


추임새와 한숨을 섞어가며 열심히 듣고 있던 한 할머니가 크게 격려(?)하신다.


“하이고, 언니~~~ 잘하셨어요. 잘못하면 두드려 맞을 뻔했지 뭐예요. 요샌 젊은 애들한테 함부로 했다가는 맞아 죽어요. 하이고 참.... 하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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