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픈 사람은 몸이 아프다고 말한다. 혹은 안 하기도 한다. 그러나 흔히 그 모습이 드러나는 편이라 주변에서 아픔을 인정하고 많은 배려를 한다.
마음이 아픈 사람은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혹은 못 하기도 한다. 그러나 종종 그 모습을 알아채는 사람이 한둘 있는 편이라 그들이 아픔을 알아주고 도와주려고 한다.
하지만 돕는 방법이라는 게 딱히 없다. 배려하려는 의도로 한 행동이 그 대상을 비참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조언이나 따뜻한 말을 열심히 토해내도 그 대상에게는 자욱한 미세먼지 속으로 녹아 사라진다. 따뜻하지 않다. 위안이 되지 않는다. 소리들이 음이 되지 않고 자음과 모음과 낱글자들이 그대로 흩어져 버린다.
이쯤 되면 열심히 돕겠다고 나서던 한두 명의 사람들은 약간은 섭섭하기도 하고 약간은 답답하기도 하고 많이는 걱정이 된다.
그들이 그의 친구라면 더욱 그런 편이다. 무엇보다 함께 한 시간과 경험들이 아득한 먼지가 되어 블랙홀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기도 하다.
가수 윤하의 노래 <사건의 지평선>은 원래 블랙홀 관련 용어로 알고 있다. 그 구간은 블랙홀로 빠져들기 직전의 마지막 구간이며 거기서 조금만 더 이동하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지점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우리는 사건의 지평선에 있는 것 같다. 내부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외부로 나갈 수 없는 초강력한 미지의 공간, 그 속에서 저마다 자신을 누르고 가두고 있는 것 같다.
빛조차 탈출할 수 없으며 언제든 블랙홀이 될 수 있는 반경이라고 하는 사건의 지평선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를 온전히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마음의 힘이 필요한 것 같다.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바깥으로 끊임없이 당기는 힘이 있다면 사건의 지평선에서 우주로 지구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친구가 그렇다면 그의 친구들도 그럴 수 있고, 이 사람이 그렇다면 저 사람도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모두 저마다 엄청난 삶의 의미를 추구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지나는 바람에 한순간 흩뿌려 사라질 한 톨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기가 쉽지 않은 거다.
오늘의 이 시간과 오늘의 이 우주가 어마어마하게 큰 것임을 몸으로 마음으로 받아들일 넓은 품을 갖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