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일기) 하얀 씨앗

씨앗 모양의 생크림을 관찰함

by 올제

유가제빵소에는 노을빵과 복숭아빵이 대표 메뉴다. 유가읍의 노을을 닮은 노을빵은 동그랗고 납작하다. 노을을 묘사하기보다는 상상했다고 할 것이다.


복숭아빵은 실제의 복숭아를 쏙 빼닮았다. ‘에둘러 말하기’보다 직접적으로 정확히 구체화한 모습이다.


노을과 복숭아, 복숭아와 노을 중에 갈등하다가 복숭아빵을 선택한다. 아무래도 직접적인 묘사가 쉽게 와닿았나 보다.


유리 진열대에 복숭아빵이 화려하게 피어 있다. 오늘 태어났는데 오늘이 한창때이고 오늘 죽을 예정이다.


고운 빛깔은 그야말로 도화살(桃花殺)로 사람들의 미소를 부른다. 감탄이라는 칼로 베이고 탐미의 포크에 찔려 죽는다.


붉은 살을 베어 내니 하얀 생크림이 동그랗게 웅크리고 있다. 씨앗의 자리에 백색의 한이 맺혀 있다. 눈사람처럼 녹아버릴 태세다.


붉은 문이 열린다. 포크에 앉아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기차같이 생긴 뼈로 이어진 문이 아래위로 닫히는 순간 내부의 뜨거운 열기로 순식간에 녹아내린다.


끈적이는 무색의 액체와 뒤섞여 목구멍이라는 좀 더 좁은 동굴 속으로 흘러간다.


이 세계는 갑갑하고 껄끄럽고 숨이 막힌다.


다시는 심을 수 없는 씨앗의 해체, 흔적도 없는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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