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일기) 맥락


연말연시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단체로 숙연해진다. 그래서 대세에 따르기로 한다. 고즈넉한 산사를 찾는다. 산속 깊은 곳이라 차에서 내리자 날이 많이 차다.


남편이 가죽장갑을 건넨다. 손이 따뜻해진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드니 절 마당에 햇살이 노랗게 드리웠다. 추운데 따뜻하다. 파란 온기라고 할까?


분명 살을 에는 듯 칼바람이 부는데 평온하다. 시간적, 공간적 맥락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는 순간이다.


국내 최고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라는 극락전을 보고, 열 걸음 남짓한 대웅전으로 옮겨 간다. 신발을 벗고, 대웅전에 들어가 모자를 벗고 장갑을 벗고 정성껏 절을 올린다.


엄숙한 자세로 절을 마치고 대웅전 밖으로 나와 신발을 신는데 가죽 장갑 하나가 떨어져 있다.


“이게 누구 장갑이니껴?” 안동 아지매의 물음이다. 얼른 주워서 먼지를 털고 왼손에 장갑을 낀다.


그럼 나의 오른손에는 장갑이 왜 없을까? 잃어버린 장갑을 찾아 나의 짧은 족적을 되짚어 절간을 몇 바퀴 다시 돌아본다.


남편은 공간적 맥락을 벗어날 수 없는 탓으로 최대한 숙연한 자세로 어이없는 표정의 눈짓을 보낸다.


나도 대세가 숙연함이기에 가장 느긋한 자세로 조바심을 보여 준다.


신발을 신고 벗고 대웅전을 들고 나기를 여러 번 되풀이하다 결국은 장갑 찾기를 포기한다.


마지막으로 신발을 신고 오른손으로 모자를 한 번 더 꾹 눌러쓴다.


아뿔싸! 모자가 왜 이렇게 불룩한 느낌이지? 나의 머리는 가죽장갑을 인 채로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쉿! 이건 나와 부처님 사이의 비밀이다.


남편은 어디서 장갑을 찾았냐는 눈빛이다. 애먼 대웅전 마룻바닥을 가리키며 당당히 가던 길 간다.


연말연시의 숙연한 시간적 맥락과 절간의 엄숙한 공간적 맥락은 이렇게 사소한 다툼을 막아준다.


새해는 이렇게 조용히 온다. 애초에 내 것이 아니다 생각하면 세상에 뭐 그리 아까울 것도 없다는 깨달음이 나의 정수리에 뜨겁게 내려앉은 연말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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