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에
어느새 프림과 설탕이 빠진
커피 한 잔을 들고
열차에 올랐다
아메리카노를 놓겠다고
눈동자가 또르륵 구르는 사이,
앞 좌석 등받이 낡은 뼈가 말한다
--나는 받침대가 없어!
--나는 KTX가 아니야
그리움의 버튼을 눌러 올라탄
무궁화호 열차는 창밖 전경을
감질 맛 나게 내어 준다
왜관역, 구미역, 김천역, 영동역
꼬박꼬박 쉬었다 간다
열차가 멈출 때마다
일 년씩 후진하는 듯한데
뒤에는 뽀송뽀송
옛날 꽃이
철로 사이사이를 채우고 있다
아무리 아팠어도
세월이 가고 나면
꽃은 아름다운 환생을 하는 가 보다
갑자기 심하게 덜컹거리는
열차의 진동은 창밖 나무들을
초록의 바다로 출렁이게 한다
노안이 왔다고 메말라진 안구는
초록바다의 인공눈물 한 방울을 먹고
시원하게 밝아 온다
그때도 거기 서 있었을 저 나무를
제대로 바라보기까지는
무궁화호만큼 느린 시간이 흘렀다
한때 프림 두 스푼
설탕 세 스푼을 넣은 커피를 끓여
길을 나섰던 그 열찻길,
숭늉 같은 음성이 흘러나온다
'우리 열차 천안, 천안역에 도착합니다
내리시는 문, 오른쪽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