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가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 걸었다. 사과의 고장이었다는 도시에서 사과는 마트에서만 자라고 길은 막창과 매운찜갈비 내음으로 타들어갔다. 살아 숨쉬는 것들의 내장이거나 혹은 뼈와 살의 살벌한 연애이거나, 사는 이야기가 불판 혹은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서 세월처럼 쪼글쪼글 졸아들며 익어간다. 강풍에 낙엽 흐드러진 가열찬 십일월의 거리를 따라 걸어도 트로트의 곡조는 간드러지지 않았다. 우리 딸이 트로트의 맛을 알 나이가 되었구나, 전국노래자랑을 같이 보다 엄마가 말했다. TV속 관람석 군데 군데 어디쯤에선가 무대뽀 댄서들이 초겨울 가로수처럼 제맘대로 흔들렸다. 삶을 애달파 하며 소주와 막걸리들이 보란 듯이 술내음을 퍼뜨렸다. 한참을 무디어진 이 나간 도자기 술잔과 쿰쿰한 묵은지 김치가 깔아놓은 흙길을 걷는다. 낡은 일기장에 누워 있는 내 옛 이야기가, 휴대폰 캘린더에 입력된 매일매일 처리해야 할 내 일정들이 갑갑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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