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의 환생

어느 4월에

목련이 만개했다. 길을 가다 멈춰서 한참을 보다가 '목련은 엉덩이도 이쁘다'고 감탄했다. 키가 2층 건물만큼이나 큰 목련이라 목을 뒤로 젖히고 힘겹게 바라보니 더 애절하게 아름다웠다, 만개한 목련의 무리가 하늘을 향한 시야를 가릴 정도였다.


“목련꽃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라고 하더니 저 나무처럼 큰 목련이면 그늘도 있고 꽃도 있을 테니 편지가 그대로 사랑이 되겠다.


필까 말까 밀당하는 목련의 봉우리는 탐스럽고 사랑스러워 꼭 안아주고 싶다. 눈부시게 만개한 목련은 찬탄을 금치 못해 추앙하게 될 지경이다.


그런데 오늘같이 후드득 부질없이 떨어져 아스팔트를 뒹굴며 지나는 바람에 제 몸을 흥청망청 맡겨 버린 목련이 나는 싫었다.


마치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가버린 청춘 같아서 아프다. 허리 한 번 못 펴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반지하 월세방의 가장 같아서 짠하다. 나이가 들면서 모든 게 허무해지고 부질없다고 끄적이는 내 넋두리 일기장이 찢겨서 날아간 것 같아 부끄럽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시달리며 떨어지는 목련의 낱장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곳은 목련만큼 키가 큰 카페의 2층이다. 마침 나와 목련은 평등한 시선으로 마주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일장춘몽 같은 목련의 일생에 무슨 의미를 그렇게 자꾸 담으려고 했을까?


때마침 창밖에는 길 가던 꼬마가 떨어진 목련을 하나씩 하나씩 깻잎 포개듯 주워 담고 있다. 떨어진 꽃잎보다 작은 그의 손에서 목련은 제대로 만개했다.


목련을 살게 한 꼬마의 허리는 꼬부랑할머니처럼 늙어 있다. 꼬마는 늙음이 두려울 리 없다.


목련 후드득 떨어진 그곳은 꼬마의 놀이터가 되었다. 엄마가 불러도 들리지 않는 해 질 녘 놀이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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