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by 올제

태어나 보니 나라를 잃은 것도, 나라를 다시 찾은 것도, 남북이 전쟁을 치른 것도, 남북이 갈라진 것도 이미 끝난 시대였다. 어렸을 적부터 반공교육의 영향을 톡톡히 받았다. 새마을운동에도 부지불식중 동원되었던 것같다. 사실은 무엇이 반공교육인지 무엇이 독재인지도 모른 채 동네 골목 어귀에서 해가 다 지도록 고무줄 뛰기에 여념이 없었다. 사실은 가난에 찌들려 일 년에 한 번꼴로 이사를 다니며 엄마의 한숨소리에 잠이 드는 것이 오랜 습관이었다. 사실은 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장마철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물을 양동이에 받치며 어쩔 수 없이 영어 단어를 외우고 어쩔 수 없이 수학문제를 풀었던 것같다. 단순히 내 개인의 삶이 고달파서 미래가 두려워서 그때 그때 눈앞에 놓인 문제의 해결에 급급했던 삶이었다.



생각해 보니 숱한 목숨을 앗아간 군사독재정권이 장기집권의 막을 내린 날에도 나라 전체의 통곡에 힘입어 초등 5학년짜리 일기장에다 대통령을 잃은 슬픔을 기록해 두었다. 생각해 보니 이 땅의 한 도시 전체가 피비린내 나는 참사에 포효했을 때에도 마치 다른 세상인 듯 아주 평화롭게 하굣길 군것질에 한창 신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미안했다. 나이가 들고 세상이 바뀌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서야 근현대사의 역동기를 최전선에서 겪고 쓰러지고 투쟁했던 많은 분들의 눈물과 피와 땀을 그저 간접적으로만 느끼고 감사하고 미안해 해서 더 미안했다.



너무 어려서, 언론의 경계가 삼엄해서, 빈민촌의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서민의 자식은 몰랐어도 되었다고 하기에는 참으로 아프기만 한 역사의 장면들이다. 하물며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나라 잃은 낯설고 외로운 땅에서 생의 처음을 맞은 윤동주의 삶은 어떠했을 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도저히 생각해 보기가 어려운 난제다. 그가 쓴 '쉽게 쓰여진 시'가 떠오를 만큼 나는 이렇게 '쉽게 살았어도 되는가'하는 뒤늦은 감회에 젖는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감히 기도할 자격조차 없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저 멀리 북간도에서 조국도 없이 태어난 윤동주! 그는 처음부터 조국을 위해 젊음을 바칠 운명이었을까 하고 물어 본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 태어나 믿음이 신실하고 사랑과 정의를 갈구하는 가족 분위기가 어린 동주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의 외삼촌 김약연이 독립운동에의 강한 의지를 갖고 설립한 명동소학교와 평양 숭실중학교, 연희전문을 거치면서 조국에 대한 그의 그리움과 사랑은 석류알처럼 조금씩 조금씩 영글어 갔을 것이다. 이와같은 그의 성장배경이 그의 인생철학과 문학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모든 것 위에는 동주 자신의 의지와 인성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그가 의학 대신 문학을 선택할 리가 없고, 도일 유학을 위해 창씨개명을 하고 돌아와 괴로운 밤을 지새웠을 리가 없고, 이국땅의 차가운 형무소에서 정체모를 주사를 맞고 죽어가면서도 나라의 독립을 노래했을 리가 없다.



결국 어떤 시대에 태어났건 어떤 환경에서 자랐건 한 인간의 삶의 경로와 지향점은 그 자신의 선택에 달린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사촌 송몽규의 영향을 받은 것도 시인 정지용의 영향을 받은 것도 동주 자신에게 이미 그들과 같은 애국심과 시정신이 내재되어 있은 탓일 거다. 그들이 동주에게서 그것을 끌어내었든 동주가 스스로 그러하였든 결과적으로 그는 그의 길을 걸은 것이다.



지난 해 여름 나는 갑작스레 암 선고를 받고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1기라고 하지만 처음 겪는 입장에서는 '암'이라는 용어 자체가 이미 패닉을 야기한다. 스물 아홉의 동주가 조국을 위해 자신의 펜대를 굽히지 않고 꿋꿋이 죽음의 공포를 견디어 낸 것을 이제와 생각해 보았다. 그로부터 스무 해나 더 살고도 오직 나 개인의 삶이 끝나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만으로 밤을 지새웠던 나의 마흔 아홉이 부끄러워지는 거다. 조국의 광복을 코앞에 두고 스물 아홉의 청년 동주를 이국땅에서 잃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심정은 상상조차 하기가 힘들다. 그들은, 그리고 동주는 무엇으로 살았을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톨스토이가 그의 작품 속 인물 미하엘의 입을 빌어 말한 바 있다. 나는 이 말을 사랑한다. 4차산업혁명 운운하여도 눈물을 흘리는 로봇이 태어나도 나는 인간의 사랑보다 큰 양식은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다. 다만 그 사랑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에 따라 사람의 크기가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인간 윤동주는 그런 면에서 참으로 큰 사람이라 할 것이다. 하나뿐인 푸른 청춘을 마음껏 누리며 개인의 안위과 행복을 좇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음에 둔 여인과 불같은 사랑에 빠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조국의 독립을 간절히 원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투쟁하였다. 총을 들지 않았으나 그보다 더 강력한 무기로 우리 민족의 혼을 일깨운 것이다. 이보다 더 영롱하고 고귀한 사랑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한' 적이 있을까?



시인 윤동주의 말을 빌어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인간 윤동주의 말을 빌어 다짐해 본다. 참으로 고귀한 모든 생명이 있는 것을, 모든 죽어가는 존재를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의 길을 걸어가야겠다.'



민족시인 정지용이 청년 윤동주에게 영향을 주었듯이, 세상에 나와 소시민으로 평범하게 살다간 내가 이 세상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먼지같이 작은 선한 영향을 줄 수 있기를 기도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해답을 영원히 젊은 시인 윤동주에게서 얻는 사월의 밤이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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