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일기) 백화점 탈출

주말 오후의 소회

by 올제


지하철을 타고 백화점으로 갑니다. 환희에 눈먼 피라미드를 타러 갑니다. 어느 영화에서는 '나는 지하철 타면 나는 그 냄새가 너무 싫어'라고 습관처럼 반복하는 배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익숙한 지하철의 공기는 자못 상쾌하기도 합니다. 휴일이라서 그런가요? 사람들은 마치 지상의 놀이공원에라도 가는 듯 들떠 있기도 합니다. 사실 나도 살짝은 그러합니다, 휴일 지하철 시원한 한 칸을 차지하고 백화점에 즐비한 유혹들에 끌려가는 중이니까요. 백화점에 가면 조명이 나를 쏘면서 거짓 웃음으로 환영해 줍니다. 환영받는 사람은 언제나 대가를 지불하고 싶어 집니다.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주장해 보아도 유효기간은 길지 못합니다.


백화점에서 가장 복잡한 화장실은 지하 식품관에 있습니다. 나는 그곳에 휴대전화를 두고 나와 지하를 뱅뱅 돌다가 불현듯 생각이 났습니다. 가장 여유 있게 걸어야 할 곳에서 가장 정신없이 달려 지하 화장실에 이릅니다. 아까 그 길디 긴 줄을 서 있던 지하의 사람들이 휴대전화의 거처를 알려줍니다. 누군가가 주워서 다른 지하층의 안전실에 맡겨두었답니다. 복잡한 지하세계를 굽이굽이 헤매다 'staff only' 구역에 이르렀습니다. 지금까지 추울 지경이었던 냉방의 기운은 그곳에서 사라집니다.


잃어버린 휴대전화를 찾은 안도감으로 되돌아 나오는 나의 눈에 걸려 자꾸만 생각나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갖은 메이크업을 하고 깔끔한 옷을 입은 그녀들, 의자가 없는지 여기저기 지친 몸을 기대어 혹자는 새우잠을, 혹자는 커피를 청하고 있습니다. 나는 마치 지하의 사람이 아닌 것처럼 유유히 'staff only' 구역을 빠져나옵니다. 다시금 세상은 눈부시고 차가운 기운이 굉장히 반겨주는 듯합니다.


백화점은 인생 같습니다. 한날한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기온을 느끼고 서로 다른 생을 살아갑니다. 진열대에 놓인 화려한 물건들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언제쯤 선택될지 몰라 매일매일을 뜨거운 조명 아래에서 애써 웃고 있습니다. 백화점에서 나와서 평지를 좀 걸어야 하겠습니다. 백화점에서 어디에 속해 있는지 따지고 살피지 말아야겠습니다. 바깥에 나오니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바깥세상이 참 좋습니다. 엘리베이터도 없고 마네킹도 없고 조명도 없습니다. 다만 발걸음과 숨소리와 태양이 흘러갈 뿐입니다.


그런데 이 순간 영화 "기생충"의 장면들이 스크린 같은 파란 하늘에 휙휙 스쳐 갑니다. 영화의 대사들이 불쑥불쑥 하늘에 떠올랐다가 사라집니다.



아, 그것은 영화가 아니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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