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착오

착오 / 올제



하루의 종말이 눈꺼풀을 심판했어 단두대에 올라 깊은 잠의 칼날에 푹 내리 찍혔는데 드라이아이스 같은 플랫폼에 떨어졌어 백색 열차가 회오리처럼 나를 휘감아 삼켰어 창밖 풍경을 슬로비디오로 보려고 했는데 열차는 풍경을 결단코 먹어버렸어


나무도 들판의 풀꽃도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야 첫 만남은 늘 갑작스러운 거지 반대편에 서 있던 둘이 만나는 것은 물과 불처럼 닿을 수 없는 사랑이야 서로를 알아볼 때 속으로만 말해야 하는 거지 사느라 고생 많았다고, 길가에 꼼짝 않고 서 있느라 아팠겠다고, 땅속에 발을 꽁꽁 묶어놓고 고개만 비집고 올라와 웃고 있느라 애썼다고,


입을 벌리지 않고 말을 하고 눈물을 알아듣고 손수건을 꺼내려는데 열차는 급격히 요동치며 구름 속으로 빨려 들어갔어 쿵. 손이 떨어져 나가고 승무원이 나를 흔들어 깨웠어 티켓을 보더니 목적지를 지났대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낯선 소리를 데리고 왔어


-여기는 저승의 지옥역입니다. 우측으로 내려서 추가요금을 지불하시고 이승으로 돌아가세요. 사는 게 지옥이라 혼동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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